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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는,

by 단어

새해예요. 오늘의 1월 1일은 생각보다 덤덤한 마음으로 맞이했어요. 원래 12월 31일은 모든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거든요. 올해의 마지막 2시야! 마지막 5시야!라고 호들갑을 떨면서요. 그러다 오후 11시가 되면 자꾸만 시계를 보는 거예요. 흘끗흘끗 신경 안 쓰는척하면서 올해의 마지막 날이 몇 분이나 남았는지 자꾸 확인해요. 그런데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아직 올해를 떠나보내기에 나는 준비가 되지 않았고, 실감도 나지 않았거든요. 고작 59분에서 1분 지났을 뿐인데 새해가 되었다는 게 기분이 이상했어요. 1분 전의 나와 1분 후의 나는 그대로고, 내 옆의 사람도 그대로고, 2024년이 되어도 나는 여전히 나이고.


핸드폰의 시계가 00:00를 가리키면 하나씩 알람이 울려요. 여기저기서 서로의 행복을 빌어줘요. 너무 흔한 말이지만 듣지 않으면 섭섭한 말.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말. 우리는 복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복을 받을 수 있는지 모르지만 일단 서로의 복을 신경 써줘요. 새해에는 복 많이 받으라고. 아프지 말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새해를 맞이하자고. 나는 모든 새해 인사에 하나하나씩 구체적으로 답해주고 싶어요. 네가 나에게 해준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말이 너무 반갑고 고마워서 나는 이미 받을 복을 다 받은 것 같아. 우리 올해는 덜 울고 더 웃자. 너에게 올해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말할 수 있어서 참 기뻐. 우리가 언제까지 새해 안부를 물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올해의 나는 너에게 이 말을 할 수 있어서 좋아.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말이 아무 힘없는 그저 안부 인사일 수도 있어. 이 말을 들었다고 해서 우리가 복을 더 받게 될지 아닐지 아무도 몰라. 하지만 우리는 매년 서로의 새해 복을 빌어주지. 문자로 전화로 인사로.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말하지. 나는 이런 불확실한 행동을 반복하는 우리에게서 희망을 봐.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우리. 알 수 없으나 서로의 복을 비는 우리. 세상이 너무 싫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살고 싶은 우리. 네가 있어서 내가 있어. 올해도 우리 같이 잘살아 보자. 어김없이 널 응원해.

나는 이 긴 말들을 썼다 지웠다 해요. 결국 고민하다 그냥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말속에 저 긴 말을 숨겨놔요. 아직은 용기가 없거든요.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것도 모두에게 저 말을 보낼 수 없어서 일지도 몰라요. 말하지 않으면 모르니까요. 꼭 말해야만 아는 것도 있으니까요.


나는 조금 촌스러운 사람이에요. 아무리 세련된 척 흉내를 내봐도 타고난 촌스러움은 숨길 수가 없나 봐요. 떠나가는 모든 것에 미련을 가득 남기고, 쿨하지 못하고, 쉽게 웃고 쉽게 울고. 예전에는 그 촌스러움이 싫었어요. 나도 쟤처럼 되고 싶은데. 나는 왜 그렇지 못할까. 나는 왜 아무리 노력해도 그 사람이 될 수 없는 걸까. 그런데 있잖아요, 그 촌스러움이 나를 만드는 거 있죠. 그 촌스러움이 없으면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닌 거예요. 그래서 그냥 인정하기로 했어요. 내 촌스러움을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그래서 이제는 그냥 말해요. 좋으면 좋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행복하면 행복하다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가치를 매기지 않기로 했어요. 꼭 멋있고 예쁜 것들만 좋아해야 하나요. 그냥 내가 좋으면 좋은 거잖아요. 나 조차도 매 순간 멋있고 예쁠 수 없는데 어떻게 빛나는 것들만 좋아하나요. 나의 촌스러움을 사랑하면서 더 너그러운 사람이 되고 싶어요. 당신의 촌스러움도 당신의 매력으로, 조금 귀여운 구석으로 보고 싶어요. 그렇게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더 넓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내가 받은 것들에 대해 생각해요.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나의 노력으로는 얻을 수 없는 복들을 지금까지 참 많이도 받고 살았어요. 그런데도 자꾸 더 받고 싶어 해요. 더 채우고 싶어 해요. 어리석고 교만한 나의 모습이에요. 나는 내가 쓰는 글처럼 살지 못해요. 희망적이기보단 두려워하고, 당신을 사랑하기보다는 나를 사랑하고, 주기보다는 받는 게 더 좋고, 너보다 나를 더 먼저 생각해요. 하지만 나는 오늘도 적어요. 희망을 사랑을 우리를. 자꾸자꾸 쓰다 보면 그런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렇게 살기 위해 한 번이라도 더 노력하게 되잖아요.

새해네요. 나는 여전히 나고, 촌스럽고, 내 옆의 사람도 풍경도 그대로예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어요. 나는 올해에도 계속 사랑을 말할 거예요. 여전히 그렇게 살 거예요. 그리고 나는 다짐해요. 새해에는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지. 더 사랑해야지. 더 넓어져야지. 그렇게 매년 다짐하며 지금까지 왔어요. 올해는 다짐하기보다는 기도해요. 당신이 더 행복하기를. 더 따듯하기를. 그래서 더 살기를. 그렇게 서로의 희망이 되어 주기를.

내년에도 1월 1일이 되면 우리는 어김없이 서로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말할 거예요. 매년 듣는 말이 매번 반가웠으면 좋겠어요.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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