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드업 3단계)
3월 초.
집 앞 복싱장을 지나가며, 결심했다.
'더 이상 미루지 말자. 도전하자.'
매력 관장과 상담하며,
'다른 곳에도 가 볼까? 2 군데 더 있던데.'
'아니다. 여기로 하자. 느낌이 좋아.'
'한 번만 더 생각해 볼까?'
'그놈의 생각, 너 생각병 아냐! 그냥 결재해'
내면의 갈등. 난 결재를 선택했다.
한 달여 시간이 지난 지금.
아주 만족스럽게 운동하며,
체력을 키워 가고 있다.
일주일 중 가장 행복감이 큰 금요일.
체육관에 도착하니,
20대 여성 두 분이 매력 관장과 상담하고 있다.
'까르르, 까르르.'
운동할 생각에 기분 좋은 그녀들.
곧 환불 생각날지도?
하지만 매력 관장은 노련해 무리한 운동은 지도하지 않는다.
맞춤형 교육! 근데 왜 나한테는?
편한 마음으로 운동할 수 있겠군.
새로운 회원이 왔으니, 내겐 신경 못 쓸 거 아냐?
다행이네.
복싱장에 가기 전,
나는 빡센 운동을 저지하기 위한 비겁한 빌드업에 대해 고민했다.
총 3가지가 있다.
첫째.
귀여운 척.
루틴 운동을 마치고,
1 대 1 지도가 시작되기 전에 멘트 투척!
"관장님. 저는 집에 돌아가겠습니다. 오늘 너무 지치네요. 헤헤헤(최대한 귀엽게 웃어야 한다)"
안 통한다면, 통한 적 없다.
왜?
안 귀엽게 생겼다. 실패.
둘째.
슬픈 척.
진중한 얼굴로 사각 링 계단에 걸터앉는다.
이때 중요한 건, 말 걸기 어려울 정도로 깊은 고민에 빠진 얼굴이어야 한다.
'메소오드, 메소오드'
안 통한다면, 통한 적 없다.
분위기가 갑자기 잡힐 리 있나.
셋째.
바쁜 척.
"관장님. 나 오늘 바쁘네. 빡세게 하고 싶은데 말이야. (너스레로 기초 빌드업)
"약속이 있네요. 아쉽네. 가 볼게요."
너무 비겁하기에, 최후의 보루로 남겨뒀다.
사용한 적 없어.
넷째.
내려놓기.
그냥 시키는 대로 하는 거지 뭐.
내 몸 마음대로 하세요. 마음대로.
마이크 타이슨
"누구나 처맞기 전에는, 그럴싸한 계획이 있다."
그렇다.
사실 내 모든 계획은,
매력 관장 미소와 한 마디면 물거품이 된다.
"헤헤헤, 시좌악악악악악악악"
매력 관장은
신규 회원 지도에 정신없이 바쁜 중에도,
따가운 시선을 내게 간간이 던졌다.
애써 눈 맞춤 안 하며,
홀로 뛰고, 치고,
최대한 열심히 하는 모습 보여줬지만.
끝내 그는 내게 한 마디 던졌다.
"형님, 링 위에 올라가 계세욧!"
미트 끼고, 링 위에 올라온 매력 관장.
"시좌아아아아아악!"
'원투, 원투, 스텝, 스텝!, 원투원, 투원투, 어퍼, 어퍼, 어퍼, 양훅, 양훅, 좋아졌어요. 원투, 원투, 어퍼, 어퍼, 원원투, 원원투 좋아요. 형님!'
초딩 다루 듯 날 다루는 관장.
왜 기분 좋은 거냐? 왜?
일찍 결혼했으면, 아들뻘 아냐?
2세트를 끝냈다.
"형님! 이제 맞으면 될 것 같아요!"
"네에에에?"
"회피 훈련이요. 이제 맞을 준비되셨어요. 헤헤"
"아, 맞을 준비? 하하하하하하"
묘하다. 묘해.
복싱은 많이 맞아봐야 실력이 좋아진다고 한다.
두려움이 없어진 상태.
문제에 처하면 용기 내서 부딪혀 이겨 내야 하는 삶의 지혜가 이곳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아, 그럼 새로 온 분들한테 매 맞는 건가요?"
"네, 그렇네요. 우선 여성분들하고 스파링 하시면서 수비만 하시고 익숙해지면 남성 분하고 하시죠."
살아오며,
누군가에게 일방적인 매 맞아본 기억이 없다.
물론 때린 적도 없어.
나 평화주의자야.
구온 엄마가 가끔 왼 발차기로 엉덩이를 걷어차기는 하지만. (그녀는 왼 발이 강하다)
실력이 좋아졌다니 기분 좋아야 하는 건가?
아니면 20대 여성분들께 맞아야 하니 기분이 나빠야 하는 건가?
누가 좀 알려 주실래요?
20대 여성 이웃분들?
구온 아빠에게 핵주먹 날리며 스트레스 풀러 오실래요?
무료입니다. ^^
진짜 오시는 건 아니죠?
샌드백이 좋아진다.
'강박증 새겨 놓고, 오른손 훅 한방.'
'공황장애 새겨 놓고, 어퍼 컷 한방.'
'과거 상처 새겨 놓고, 스트레이트 연타.'
'못된 인간 새겨 놓고, 마구잡이 주먹.'
속이 약간은 시원해지는구나.
복싱에 중독되었나 봐.
- to be continu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