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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온아빠 Apr 30. 2024

복싱 초보 구온아빠 episode 5.

(빌드업 3단계)

3월 초. 


집 앞 복싱장을 지나가며, 결심했다.


'더 이상 미루지 말자. 도전하자.'


매력 관장과 상담하며,

'다른 곳에도 가 볼까? 2 군데 더 있던데.'

'아니다. 여기로 하자. 느낌이 좋아.'

'한 번만 더 생각해 볼까?'

'그놈의 생각, 너 생각병 아냐! 그냥 결재해'


내면의 갈등. 난 결재를 선택했다.


한 달여 시간이 지난 지금.

아주 만족스럽게 운동하며,

체력을 키워 가고 있다.



일주일 중 가장 행복감이 큰 금요일.


체육관에 도착하니,

20대 여성 두 분이 매력 관장과 상담하고 있다.

'까르르, 까르르.'

운동할 생각에 기분 좋은 그녀들.

곧 환불 생각날지도?

하지만 매력 관장은 노련해 무리한 운동은 지도하지 않는다. 


맞춤형 교육! 근데 왜 나한테는?

편한 마음으로 운동할 수 있겠군.


새로운 회원이 왔으니, 내겐 신경 못 쓸 거 아냐?

다행이네. 


복싱장에 가기 전,

나는 빡센 운동을 저지하기 위한 비겁한 빌드업에 대해 고민했다. 

총 3가지가 있다. 


첫째.

귀여운 척.

루틴 운동을 마치고, 

1 대 1 지도가 시작되기 전에 멘트 투척!


"관장님. 저는 집에 돌아가겠습니다. 오늘 너무 지치네요. 헤헤헤(최대한 귀엽게 웃어야 한다)"


안 통한다면, 통한 적 없다.

왜?

안 귀엽게 생겼다. 실패. 


둘째.

슬픈 척.

진중한 얼굴로 사각 링 계단에 걸터앉는다.

이때 중요한 건, 말 걸기 어려울 정도로 깊은 고민에 빠진 얼굴이어야 한다.


'메소오드,  메소오드'


안 통한다면, 통한 적 없다.

분위기가 갑자기 잡힐 리 있나.  


셋째.

바쁜 척. 

"관장님. 나 오늘 바쁘네. 빡세게 하고 싶은데 말이야. (너스레로 기초 빌드업) 

"약속이 있네요. 아쉽네. 가 볼게요."


너무 비겁하기에, 최후의 보루로 남겨뒀다.

사용한 적 없어.


넷째.

내려놓기.

그냥 시키는 대로 하는 거지 뭐. 

내 몸 마음대로 하세요. 마음대로.



마이크 타이슨

"누구나 처맞기 전에는, 그럴싸한 계획이 있다."


그렇다.

사실 내 모든 계획은, 

매력 관장 미소와 한 마디면 물거품이 된다. 


"헤헤헤, 시좌악악악악악악악"


매력 관장은

신규 회원 지도에 정신없이 바쁜 중에도,

따가운 시선을 내게 간간이 던졌다.


애써 눈 맞춤 안 하며, 

홀로 뛰고, 치고, 

최대한 열심히 하는 모습 보여줬지만. 


끝내 그는 내게 한 마디 던졌다.

"형님, 링 위에 올라가 계세욧!"


미트 끼고, 링 위에 올라온 매력 관장.

"시좌아아아아아악!"


'원투, 원투, 스텝, 스텝!, 원투원, 투원투, 어퍼, 어퍼, 어퍼, 양훅, 양훅, 좋아졌어요. 원투, 원투, 어퍼, 어퍼, 원원투, 원원투 좋아요. 형님!'


초딩 다루 듯 날 다루는 관장.

왜 기분 좋은 거냐? 왜? 

일찍 결혼했으면, 아들뻘 아냐? 


2세트를 끝냈다.


"형님! 이제 맞으면 될 것 같아요!"

"네에에에?"

"회피 훈련이요. 이제 맞을 준비되셨어요. 헤헤"

"아, 맞을 준비? 하하하하하하"


묘하다. 묘해.


복싱은 많이 맞아봐야 실력이 좋아진다고 한다.

두려움이 없어진 상태.

문제에 처하면 용기 내서 부딪혀 이겨 내야 하는 삶의 지혜가 이곳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아, 그럼 새로 온 분들한테 매 맞는 건가요?"

"네, 그렇네요. 우선 여성분들하고 스파링 하시면서 수비만 하시고 익숙해지면 남성 분하고 하시죠."


살아오며, 

누군가에게 일방적인 매 맞아본 기억이 없다.

물론 때린 적도 없어.

나 평화주의자야. 


구온 엄마가 가끔 왼 발차기로 엉덩이를 걷어차기는 하지만. (그녀는 왼 발이 강하다)

실력이 좋아졌다니 기분 좋아야 하는 건가?

아니면 20대 여성분들께 맞아야 하니 기분이 나빠야 하는 건가?


누가 좀 알려 주실래요?

20대 여성 이웃분들?


구온 아빠에게 핵주먹 날리며 스트레스 풀러 오실래요? 

무료입니다. ^^


진짜 오시는 건 아니죠?


샌드백이 좋아진다.


'강박증 새겨 놓고, 오른손 훅 한방.'

'공황장애 새겨 놓고, 어퍼 컷 한방.'

'과거 상처 새겨 놓고, 스트레이트 연타.'

'못된 인간 새겨 놓고, 마구잡이 주먹.'


속이 약간은 시원해지는구나.


복싱에 중독되었나 봐.  


- to be continu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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