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거나 '해도' 괜찮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세요. 이런 류의 조언만큼 나 같은 성취 중독자에게 어려운 말이 없다.」
<왜 힘들지? 취직했는데> / 원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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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가 되었다는 말을 처음 들은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뉘었다.
- 어서 빨리 다른 데 취업해야지. 조금만 쉬다가 알아봐.
- 고생했어.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으니까 푹 쉬어.
전자의 반응이야 ‘나를 취업시켜 줄 게 아니면 조용히 하라’는 마음으로 가볍게 무시하면 됐다. 문제는 후자였다. 그들의 말은 선의와 다정함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감사하게 받아야만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웃으면서도, 목구멍이 쓰렸다. 그들의 목소리는 어쩐지 패잔병을 대하는 듯한 안쓰러운 토닥임 같아서, 나는 ‘쉬어야 할 상처 많은 인간’이 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옛날 예능에서 까나리 액젓을 머금은 채, 들키지 않기 위해 애써 미소 짓는 개그맨의 얼굴이 떠올랐다. “으응, 그래야지. 고마워.”라고 말하던 내 표정도 비슷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선의를 불편하게 받는 나를 자책했다.
‘이것도 저것도 싫다면 대체 너는 무슨 말을 듣길 원하는 거야? 주변에 찡찡대기만 할 거야? 왜 좋은 마음으로 해주는 위로를 삐딱하게 받아들여?’
하지만 아무리 돌이켜도 불편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취직도, 휴식도 내가 바라던 삶이 아니라는 건 알겠는데, 뭐가 있긴 있는데, 뭔지 몰라 돌아 버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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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편한 마음의 근원을 원지수 저자의 <왜 힘들지? 취직했는데>를 읽다 불현듯 깨달았다. 나는 모든 순간의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성취 중독자구나.
‘지금까지 충분히 애썼으니 쉬어가도 괜찮아.’,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해도 괜찮아.’
세상 너그럽던 그 말에 삐딱하게 반문하고 싶다.
- 정말로? 언제까지 아무것도 안 해도 삶이 괜찮은 거야?
쉬어도 된다고 정말 평생 놀고먹어도 괜찮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그것이 일평생 지속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걸 당신도 나도 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모든 시간의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을 자기애가 내게는 없다. 그런 사랑의 유효기간은 ‘잠시’에 불과하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라’는 위로의 말임과 동시에 유효기간이 끝나면 생산적인 일을 다시 시작하라는 은근한 다그침으로 다가왔다.
휴식과 안식을 강조하는 건 딱 그만큼 반대의 치열한 삶을 선명하게 인식시키니까. 쉼은 쉼이 없는 시간이 있어야 성립되기에, 쉼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부담감과 자책감을 심어준다. 자꾸 쉬지 않아야 할 시간을 떠올리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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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에는, 돈과 사회적 성과라는 결과물을 내는 활동이 아닌 건 ‘아무것도 안 하는 것’으로 치부하는 인식이 전제된 말이다. (대표적인 예시로 책이나 읽고 지내는 것)
백수는 ‘쉬는 사람’으로 치부되는 이유도 그래서일 것이다. (오해다. 백수야말로 정말 쉼 없이 바쁜 존재다.)
물론 처음 일을 그만둘 때는 쉼이 필요했기 때문도 분명히 있었다. 실제로 정말 휴식을 취하고 다시 취업하고자 하는 백수도 있을 것이다. 내게 위로를 해주었던 사람들도 선의를 가득 담아 전한 마음이었을 거다.
그러나 나는 나로 살고 싶다는 욕구와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먹고 살 걱정을 동시에 하는 성취 중독자 청년 백수라서, 아무것도 안 하는 인생으로 백수의 시간을 정의하고 싶지 않다.
아무것도 안 해도 되고 싶지 않다. 말장난이라도 좋다. 사회에서 말하는 생산적인 것이든 아니든, 성과가 나든 안 나든, 의미가 있든 없든 좋다. 어떤 것일지라도 ‘안 하는’게 아니라 ‘하는’ 방향으로 삶을 여기고 싶다.
그게 숨을 쉬는 것이든, 밥을 잘 챙겨내는 것이든, 잊어버린 숙면을 되찾는 것이든. 아무 결과물을 내지 못하는 취미 활동이든. 남들이 무시하는 일이든. 그리고 책이나 읽고 지내는 것이든. 모두 ‘하는’ 살아있는 활동이다.
그제야 내가 듣고 싶던 말을 깨닫는다.
- 아무거나 해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