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작 그만. 숨부터 제대로 쉬고 갑니다.
이 문에 들어서는 자여, 모든 희망을 버려라.
<단테 지옥 제3곡. 지옥문의 현판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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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 강습 첫날. 20대부터 70대까지 마치 물을 보는 고양이처럼 쭈뼛거렸다. 아직 수영복을 입은 제 모습이 어색하지만, 이 새로운 긴장감이 기분 나쁘지 않다.
- 개헤엄만 쳐봤는데 앞으로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
형광 물안경을 쓴 할머니의 말에 모두 기다렸다는 듯이 ‘저도요’를 외치며 제대로 헤엄을 칠 수 있을지 염려했다.
그러나 시작 3분 만에 모두 깨닫는다. 알싸한 소독 향이 나는 수영장 물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면서, 아, 3분 전 그건 참 쓸데 없는 고민이었구나. 원래 고민이라는 게 대부분 쓸 데가 없긴 하지만. 그래도 수영을 배운다니까 당연히 헤엄치는 걸 배울 줄 알았지.
이제 막 수영을 시작하는 학생들이 배우는 건 발차기도, 팔 동작도, 심지어 가만히 물에 둥둥 떠 있기도 아니었다. 가장 먼저 배우는 건 그저 ‘숨 쉬는 방법’이었다. 일명 「음파 호흡법」. 이렇게 말하니 무슨 소림사 만화에 나올 무술 비기 같은데, 현실은 ‘음-(물속에서 보글보글 날숨) 파-흡-(고개를 들며 물 밖에서 들숨)’ 이다.
숨쉬기라고 만만히 보았다간 큰 코 다친다. 수영장 문에 처음 들어서는 자여, 모든 착각을 버릴지니. 그렇지 않으면 공기 대신 물을 듬뿍 마시고, 가슴까지 오는 물 높이에서 꼬르륵거리며 온 팔과 다리를 연체동물처럼 버둥대며 물 밖으로 간신히 나오게 될 것이다.
몇 번이고 물을 먹으며 다시 안면을 수면 그대로 수평으로 집어 넣었다. 수경을 썼는데도 습관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숨을 내쉬라는데, 무서워서 들이쉬지도 내뱉지도 못하고 감은 눈 사이로 상념이 둥둥 떠다녔다.
숨쉬기가 이렇게 어려웠나? 숨쉬기만큼 단순한 동작이 있을까? 아니, 애초에 동작이라고 부를 수나 있나?
학창 시절 체조에서 ‘숨쉬기 운동’은 ‘쉬는 시간’과 동일한 의미였다. 외부의 공기를 몸 안에 들이마시고, 다시 내 몸 안의 공기를 바깥으로 내보내는 것. 아무 힘도 의식도 들일 필요가 없는 자연스러운 신체 활동.
더는 숨을 참기가 힘들다.
내뱉으려는데, 참은 숨이 어려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버둥거리며 들며 고개가 채 나오기도 전에 생존본능으로 들이쉬었다.
만만히 보던 숨쉬기가 그 어떤 활동보다 어려운 동작임을 몰랐다.
「음파」라는 깔끔한 두 음운의 명칭을 가진 호흡법은 내가 하면 「음- 보글... 보그르륵 뽀글르륵! 컥, 파! 허흡, 헉 헉」호흡법이 되기 일쑤였다.
아직 수업은 30분 넘게 남았다. 살기 위해 신경을 집중해야 했다.
폐부 안의 공기를 어느 정도 빠르기로 내뱉어야 하는지, 물 밖에서 어느 정도의 각도로 고개를 돌려야 숨을 마실 수 있는지, 그 속도감과 리듬감을 의식했다. 얼마나 힘 있게 신체를 지탱해야 하는지, 혹은 얼마나 힘을 빼야 하는지를 떠올리며 숨쉬기와 근육의 수축과 팽창의 관계를 애써가며, 더듬더듬 찾아갔다.
이렇게까지 ‘숨을 쉰다’라는 행위에 온 감각을 집중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제야 나는 한 번도 ‘제대로’ 숨쉬기를 배워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하긴, 당연할지도. 살기 위해서는 숨을 쉬어야 하고, 이미 살아 있다는 건 숨을 쉴 줄 안다는 뜻이니까. 당연히 알고 있는 걸 굳이 다시 살펴볼 필요는 없었다. 새로운 걸 배우기에도 충분히 정신이 쏙 빠지는 하루하루였는걸.
소파와 바닥 사이에서 늘어진 채 숨만 쉬던 나를 구박하는 부모님에게는지지 않고 답하기나 했지.
- 숨 쉬는 건 안 귀찮냐?
- 숨을 안 쉬는 게 더 귀찮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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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위안이 됐던 건, 다들 거기서 거기라는 점이었다. 혼자만 못하면 서럽지만, 다 함께 못하면 동료애가 샘솟는 법이다.
70대 분홍 꽃무늬 수모를 쓴 할머니도, 새까만 민무늬 수영복을 입은 20대도 예외는 없다. (세대 통합의 아름다운 현장을 보고 싶다면 수영 강습에 등록하면 된다. 생존을 위해 20대부터 70대까지의 세대 공감과 통합의 장을 볼 수 있으니.) 70년이고 20년이고 뭍에서는 잘만 숨 쉬고 살아왔던 인간들이었는데, 몇십 년의 세월은 다 부질없는 거품이 되어 물 안에서 보글보글 흩어졌다. 인어공주의 물방울처럼.
괜찮다. 말했듯이, 이 수영장 안의 인어공주는 한 명이 아니니까. 수많은 초보 인어들의 든든한 동료애가 있으니까. 수영장 초급반에서 왜 숨 하나 제대로 못 쉬냐고 비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연히’ 할 줄 아는 일도, 당연히 ‘잘해야 하는’ 일도 없었고, 왜 못하냐고 구박하거나 반대로 자책해도 되는 일 따위는 더더욱 없었다.
되려 세 번의 반복을 성공적으로 ‘숨 쉬어 낸’ 사람 옆으로는 눈을 반짝이는 숨쉬기 실패자들이 모여들었다. “어떻게 그렇게 숨을 잘 쉬어요? 물 안 들어가요?” 숨 잘 쉬는 사람은 벌써 초급반의 물개, 수달, 인플루언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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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혈관에 흐르는 게 피인지, 수영장 물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수영장 물을 듬뿍 마시고 나서야 수업이 끝나고 밖으로 나왔다. 오전 11시다.
마음껏 숨을 들이쉬는 감각이 이토록 시원할 줄이야. 회사에 있을 때면 벌써 퇴근하고 싶다고 제 몸을 비틀었을 위와 폐가 신선한 오전 공기를 마음껏 음미한다. 이게 평일 오전의 공기란 말이지. 베시시 웃으며 전처럼 마구잡이로 들이마시지 않고 의식해 본다. 마치 물 속에 있는다, 생각하면서,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쉬고. 음- 파-.
다음 수업 시간. 강사님은 팔동작을 설명해 준 뒤, 일단 지난 시간 배웠던 호흡 먼저 다시 해보자며 우리의 안면을 다시 수면으로 담갔다. 방금 전 강사가 시범으로 보여 준 팔동작이 떠올라 날갯죽지가 움찔거렸다. 해보고 싶다. 나만 그런 건 아니었는지, 물살을 따라 몇 몇 사람이 첨벙이는 게 느껴졌다.
그 순간, 강사의 목소리가 공기를 타고, 물 속을 타고 웅웅거리며 퍼졌다.
- 아니, 숨 쉬는 것도 제대로 못 하면서 무슨. 거기 앞으로 나가시려는 분, 팔 저으시려는 분, 다들 동작 그만. 숨부터 제대로 쉬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