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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끼 Nov 04. 2023

다정한 위로에 대한 불편함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다'는 말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세요. 이런 류의 조언만큼 나 같은 성취 중독자에게 어려운 말이 없다.'


<왜 힘들지? 취직했는데> / 원지수






#1.

 백수가 되었다는 말에 주변 반응은 두 가지였다. “어서 빨리 다른 데 취업해야지.” 그리고 “고생했어.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으니까 푹 쉬어.


 전자의 반응이야 ‘나를 취업시켜 줄 게 아니면 조용히 하라’는 마음으로 가볍게 무시하면 됐다.

 문제는 후자였다. 그들의 말은 선의와 다정함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감사하게 받아야만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웃으면서도, 목구멍이 쓰렸다. 그들의 목소리는 어쩐지 패잔병을 대하는 듯한 안쓰러운 토닥임 같아서, 나는 ‘쉬어야 할 상처 많은 인간’이 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옛날 예능에서 까나리 액젓을 머금은 채, 들키지 않기 위해 애써 미소 짓는 개그맨의 얼굴이 떠올랐다. “고마워.”라고 말하면서도 나 역시 그런 표정을 지었을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선의를 불편하게 받는 나를 자책했다. ‘이것도 저것도 싫다면 대체 너는 무슨 말을 듣길 원하는 거야? 주변에 찡찡대기만 할 거야? 왜 좋은 마음으로 해주는 위로를 삐딱하게 받아들여?’

 그럼에도 불편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취직도, 휴식도 내가 바라던 삶이 아니라는 건 알겠는데, 내 안에 뭐가 있긴 있는데, 이게 뭔지 몰라 돌아 버릴 것 같았다.     


 답답한 마음을 묵혀둔 채, 책이나 읽으며 한참이 지내서야 선명하게 알게 되었다. 내가 백수가 된 이유도, 선의의 말에 반박하고 싶던 까닭도 말이다.          







#2.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선의와 다정한 말에 대한 불편함

   


 ‘지금까지 충분히 애썼으니 쉬어가도 괜찮아.’,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해도 괜찮아.’     


 괜찮다면서도 그것이 일평생 지속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걸 상대도 나도 알고 있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평생을 살 수는 없다. 모든 시간의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 유효기간은 ‘잠시’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건 위로의 말임과 동시에 유효기간이 끝나면 생산적인 일을 다시 시작하라는 은근한 다그침이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여기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은, 돈이라는 결과물을 내는/혹은 그런 결과물을 내기 위한 도움이 되는 경제활동이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라는 시각이 전제되어 있다. (대표적인 예시로 책이나 읽고 지내는 거라던가?) 그래서 백수는 대체로 무엇을 하든 ‘쉬고 있는 사람’으로 치부된다. 짧은 유효기간 동안은 괜찮을지라도, 결국 이런 전제는 부담감과 자책감을 심어주기 마련이다.


 결국, ‘당신이 백수가 된 이유는 상처가 많고 지쳤기 때문일 테니, 당분간 돈을 벌지 않는 ’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로 푹 쉬다가, 휴식이 끝나면 다시 결과를 내는 활동을 하라’는 운명을 내포한 말인 셈이. 그래서 나는 그토록 그 위로가 불편했.          






#3.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처음 일을 그만 둘 때는 쉬어야만 했기 때문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며칠 후부터 바란 것은 ‘알고 싶다’는 갈망이었다. 더는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은데, 무언가 크게 어긋난 궤도를 돌고 있다는 게 느껴지는 데,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알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그래, 장황하게 말했지만, 진부한 ‘진로고민’이다. 서른이 넘어서 말이지.

     


 진로고민 하는 사람에게 “푹 쉬어. 아무것도 안 해도 돼.”라는 조언이 위안이 될 리가 없다. 내가 바랐던 말은 “어떤 결과가 나도 상관 없이 뭐든 ‘해도’ 돼.” 였다. 나는 진로고민과 먹고 살 걱정을 동시에 하는 성취 중독자 30대였다. 이미 세 군데의 회사를 다니며, 이전과 같은 진로고민과 결정으로는 더는 나아갈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다른 방향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나는 책이나 읽고 지내는 백수로서, 삶의 방향성을 찾기 위한 체험과 경험, 고민의 시간을 단순히 휴식으로 치부하는 데 소심하게 반기를 든다.

 성인이 되어 보내는 진로 탐색, 자아 성찰의 시기가 단순히 휴식의 시간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면 한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시간을 분명히 건강한 일을 하고 있다고 받아들이고, 진로고민을 하는 백수들이 마음껏 이것저것 해 볼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4.


 물론 정말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취업을 하고자 하는 백수도 있을 것이다. 내게 위로를 해주었던 사람들도 선의를 가득 담아 전한 마음이었을 거다. 일단 나부터도 내가 원하는 바를 명확히 알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어찌 되었든 당시의 내게 필요한 말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가 아니었다. 서른이 넘어 진로고민을 하는 백수에게 필요한 말은 이것이었다.     


“뭐가 됐든, 하고 싶은 거 다 해봐도 괜찮아.”






<왜 힘들지? 취직했는데>/원지수 필사 첫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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