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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끼 Dec 16. 2023

책이라는 이유만으로 괜찮을까

아포리즘에 대하여 2


책은 읽을 것을 사는 게 아니라, 산 것 중에 읽는 거예요.

/<알쓸신잡> 방송 중






 앞의 글에서는 아포리즘 자체에 대한 생각을 적었다. 이번에는 그중, 다른 분야로 확장해 사유하고, 내 행동을 바꾸게 된 이야기를 적어 볼까 한다.

     

 ‘책은 읽은 것을 사는 게 아니라, 산 것 중에 읽는 것이다.’

 책을 읽고 사는 걸 즐기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은 접했을 아포리즘이다. 나 역시 이 말을 핑계 삼아 무분별하게 책을 샀고, 그러다 안 읽는 건 중고로 팔거나 버리곤 했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나름 출판 산업에 기여하는 행위라고 합리화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사는 속도를 읽는 속도가 따라가지 못하게 되었고, ‘나중에 읽어야지.’라고 꽂아둔 책은 새로 들어오는 책들에게 속절없이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나는 이전에도 이렇게 소비의 합리화에 곧 잘 쓰던 말이 있었다. ‘하늘 아래 같은 색조는 없다.’

 대학교 시절, 나는 색조 화장품을 ‘소비’하는 데 미쳐있었다. 이상한 색, 비슷한 색, 티도 나지 않는 색 등의 아이섀도와 네일 등을 보기에 영롱하다는 이유만으로 사들였다. 그건 마치 실질적인 유용성은 전혀 없는, 까마귀가 반짝이는 보석을 모으는 행위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그 영롱함 앞에 나는 속절없이 ‘하늘 아래 같은 색조는 없어!’를 외치며 모았다. 쌓이고 쌓여 하나의 반짝임이 다른 반짝임을 가리고, 더는 둘 곳이 없어 서로를 밀치고, 유통기한이 지나 버리면서까지 말이다.

 몇 년 동안, 몇 번이고 그렇게 수많은 색조 화장품을 버렸다. 와르르- 플라스틱 케이스들이 서로 맞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쓰레기통 안으로 사라졌다. 몇 번을 반복하고, 다른 세상을 알고 나서야 뒤늦게 이 말을 싫어하게 됐다. 여성의 코르셋을 강화하는 데 일조하는 마케팅 언어라는 점과, 쓰지 않는 화장품을 전시품 모으듯 모아 나중에는 수많은 플라스틱과 화학 첨가물을 쓰레기로 내버리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랬다.


     




 그런데, 책은 대상이 사회적으로 좋은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괜찮은 게 맞나?

 ‘옷은 입을 것을 사는 게 아니라, 산 것 중에 입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재미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책은 다른 산업품에 비해 분해되는 과정에서 환경을 덜 해칠 것이다. 엄청난 플라스틱과 비닐 사이에서 책 쓰레기는 아주 미비할 것이다. 하지만 책을 만들기 위해 나무를 베고, 잉크를 사용하고, 버려지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다.


 더는 책장에 반듯한 모양으로 책을 꽂을 수 없게 되어, 숨 막히게 구겨 넣어야 할 정도로 책의 양을 내가 가진 부동산이 감당할 수 없는 시기가 오면, 마치 화장품을 버리던 때처럼 책들을 모아 버렸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화장품을 버릴 때처럼 온전히 이 말을 버리고 싶지도 않다. ‘내 행동이 맞는가’와, ‘그래도 소비해야 출판 산업에 기여하는 건 맞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대립했고, 그 사이에 ‘갖고 싶다’는 지극히 개인적 욕망이 기웃거렸다. 균형점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요즘의 나는 무조건 새 책을 바로 구매하지 않는다. 대신 신간이 나오면 매주 내가 신청할 수 있는 최대한의 권수를 지역 도서관에 신청하고, 읽은 것 중 정말 두고두고 가지고 있을 것들을 구매하려고 노력한다. 소비와 확장된 효용성을 그나마 균형 맞춘 방법이다. 물론, 아직도 속절없이 책의 구매 버튼을 누르는 때도 많지만 적어도 읽을 수 있는 양의 범위 내에서 구매하려고 노력 중이다.


 이렇듯 한 문장에 대한 생각이 다른 분야로 이어지고, 또 내 행동을 바꾸게도 한다. 장문은 장문대로의 깊이의 매력이, 단문은 단문대로의 유쾌함과 솔직함이 있다. 가볍고 피식 웃게 되는 말 안에서 수많은 사유까지 확장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아포리즘은 역시 매력적이다. 결국, 장문이든 단문이든 무엇이든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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