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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끼 Mar 05. 2024

단기-비숙련-계약직


 비숙련직의 큰 장점은 엄청나게 다양한 기술과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같은 일을 한다는 점이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 패트릭 브링리


         




 퇴사를 하고 2개월 조금 못 되게 스파 브랜드의 옷 가게에서 일했다. 딱 그 정도면 곧 만기가 되는 적금에 넣어야 할 돈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모집 글을 보고 간단하게 문자로 지원했다. 설명에 나온 대로 이름, 성별, 나이, 근무 가능일과 시간을 적어 보냈다. 그날 저녁, 몇 월 며칠 몇 시까지 어디에 있는 창고로 출근하라는 답장이 왔다. 면접은 필요 없었다. 당연히 특별히 어떤 자격증이나 경력도 필요치 않다. 하긴, 박스를 열고, 옷을 개고, 바닥과 거울을 닦는 일에 특별한 자격증은 필요하지 않을 테니까.

     

 소위 ‘연령 무관’, ‘성별 무관’이 적힌 인력 모집 글에서 뽑는 근무의 특징이다. 거기에 ‘친구와 함께 지원 가능’이라는 문구까지 쓰여 있다면, 확실하다. 법적으로 허용되는 나이와, 신체적 정신적 능력이 있다면, ‘누구나 언제든’ 할 수 있는 일. 비숙련직이다.

 내가 들어간 것은 ‘비숙련직’에서 ‘비숙련 계약직’, 거기에 ‘단기 비숙련 계약직’까지 더해진, 소위 ‘단기 아르바이트’였다.



           





 매장 규모가 제법 큰, 새로 오픈하는 가게인지라, 제법 많은 인력을 뽑았다. 사전에 안내받은 ‘상의, 하의는 되도록 무늬가 없는 검정 옷, 하의는 청바지까지는 허용’대로 까만 옷을 입은 ‘단기 비숙련 계약직’이 서른 명이 넘었다.


 2주만 하는 사람도 있었고, 나처럼 두 달 가까이하는 사람도 있었다. 당연히 우리를 위한 별도의 유니폼이나 작업복은 없었다. 우리는 각자의 옷장에서 최대한 그림자 같은 옷들을 입고 출근했다. 검정 옷에 검정 면바지, 혹은 청바지를 입은 우리의 옷은 언뜻 비슷해 보였지만, 참 미묘하게 달라서 은근히 손님들은 우리를 직원으로 잘 구분하지 못했다.

 미묘하게 다른, 사복 유니폼(?)을 입은 우리는, 정식 유니폼은 아니었음에도 또 미묘하게 유대감이 형성되었다. 옷이 걸린 벽들 사이사이를 누비며, 검정 우리는 자주 마주쳤다. 스치듯 귀에 짧게 소곤거리며 장난을 치거나, 괜히 구석에 앉아 산더미처럼 쌓인 옷을 개고 있는 동료를 발견하면 옆에 자리를 잡고 함께 개었다. 그러다 근무지를 이탈하지 말라는 정직원에 의해 뿔뿔이 흩어지곤 했다.


    

 매일 아침 우리는 코로듀이 와이드 팬츠에 캐주얼한 점퍼를 입고 있거나, 혹은 속옷만 입고 있는 마네킹 앞 바닥에 앉아 서로의 근무지를 확인했다.

     

 “오늘 어디 쪽 일해?” 동갑인 걸 안 뒤로 말을 놓은 동료 ‘성’에게 물었다.

 “운동복이랑 키즈존.”

 “나 여성복 라인인데 자주 만나겠네.”

 “오후에는 창고야.”

 “저런… 오늘 새로 주문한 것들 온다는 것 같던데.”

 “아무래도 점장이 나 싫어하는 게 틀림없다니까.”

 그냥 네가 키가 커서 그런 것 같다며 어깨를 으쓱하는 내게 ‘성’은 설명을 덧붙였다.

 “어제도 컴퓨터로 뭐 작업하는 게 안 되는지 계속 욕하길래 뒤에서 보고 있었는데, 보면 뭐 아냐고 나가라고 소리치더라니까.”

 ‘성’은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7년을 일한 숙련자였다.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저런, 해결해 줄 전문가를 못 알아봤네.”

     

 이따금 누군가는 비숙련자인 우리를, 그 어디에서도 숙련자였던 때가 없던 것처럼 바라보았다. 검정 옷 안에 쌓여온 삶이 있음을 잊는 듯했다.

 그렇다고 그게 억울하지는 않았다. 도리어 참 편하게 느껴졌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단순한 일을 하는 우리에게, 누구도 무언가 큰 걸 바라지 않았으니까.


     





 단기 계약직의 비숙련자인 우리는 가끔 창고 바닥에 아무것도 깔지 않고 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그 덕분에 서로의 간단한 면들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공공기관에서 3년을 넘게 일했고, 누군가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7년을 일했으며, 누군가는 수학과를 졸업한 선생님이었고, 누군가는 경영학과를 나와 중견기업에 다니던 이었으며, 누군가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으며, 누군가는 공장만 열 군데는 다녀본 이었으며, 누군가는 올해 초 화학과 나온 졸업생이었다. 

    

 “저는 취업전선에 바로 안 뛰어들고 워홀(워킹 홀리데이) 다녀오려고요.” 나보다 6살 어린 화학과 졸업생인 ‘최’가 말했다.

 가끔 우리는 서로 묻지 않았는데도 마치 혼잣말하듯이 자신에 대해 말하곤 했다. 바닥에 앉아 이야기가 끊기면 멍- 하니 허공을 바라보다가 누군가 중얼중얼 말을 꺼내는 것이다.


 “좋지. 캐나다? 호주?”

 “아이슬란드요.”


 ‘최’는 그 비용을 모으기 위해 이 일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이슬란드. ‘최’는 아이슬란드로 가는 이유를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왜 그녀가 그곳에 가려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떠올린 걸 아는지 ‘최’는 배시시 웃었다.

 하늘의 빛나는 길. 오로라.

 하늘의 길을 본다고 우리의 길을 알 수 있는 게 아닌데도, 우리는 가끔 길을 찾으려고 엉뚱한 자연을 찾아 떠난다. 설령 볼 수 없대도 말이다.


 “낭만적이네.”


          





 단기 계약 비숙련직 일이 끝나고, 우리는 당연하게도 서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 더는 이어질 인연이 아니라는 걸 자연스럽게 알았기에 나눌 수 있던 대화들을 떠올린다. 어떤 일을 했고, 어떤 마음으로 그만두었고,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등등.

 일이 끝나면 드라마 서편제에 나왔던 섬에 가겠다던 경영학과를 나온 퇴사자는 섬에 갔을까? 낭만적인 화학과 졸업생은 아이슬란드에 갔을까? 애인도 없으면서 벌써 아이들과 보낼 시간이 없는 삶은 싫다던 개발자였던 사람은 결혼했을까?

 알 수 없다. 나도 그때는 템플스테이나 할 거라고 해놓고는 벌레가 싫어서 가지 않았으니까.


 그냥 그때, 그 당시의 지금에서 하고 싶은 일들을 남발한 공수표들이다. 하기 싫어지면 언제든 하지 않을 수 있는 다짐들. 어차피 헤어질 사이이기에 말할 수 있던 바람들. 하지만 그랬기에 다양한 삶의 흔적과 꿈을 마음껏 들을 수 있었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에 나온 한 대사에 눈이 멈추었다.

 “있잖아, 정말 나쁘지 않은 직업이야. 발은 좀 아프지만 그것 말고는 아무 데도 아프지 않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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