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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끼 Feb 28. 2024

밥 먹어! - 잠깐만!

삶을 끊어주는 알람

한순간 아이들을 현실로 데리고 오는 것은 엄마의 목소리.

특히나 “밥 먹어라”는 아이들 생활의 기준점이죠. 

<이수지의 그림책> . 이수지





#1.

 어린 시절, 집에 꼭 세 번 울리는 대화가 있었다.

 “밥 먹어!”

 “잠깐만!”

    

 조금만 더 하면 게임 보스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상하게 엄마가 밥 먹으라는 타이밍은 기가 막히게 절묘했다. 10분만 더 자고 싶은데. 밥 안 먹어도 되니까 그냥 자고 싶은데. 나는 밥보다 잠을 택하고 싶었지만, 엄마는 그걸 허용하지 않았다.

 아, 그냥 나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게임 한 판만 더 하고라든가.




    


#2.

 고등학생 때는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밥 먹어!”라는 외침 대신 식사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나 때는 야간 학습이 의무였기에 (‘자율’이라는 말은 형식적일 뿐이었다.) 점심과 저녁 식사를 모두 학교에서 해결해야 했다. 종이 울리기 1분 전부터 친구들과 전투 자세에 들어갔다. 필기구는 진즉 필통에 넣었다. 신발을 동여매고, 한쪽 다리를 책상 밖으로 뺀다. 빨리 끝내달라는 무언의 외침을 담아 선생님에게 강렬한 눈빛을 보냈다. 그리고 종이 울림과 동시에, 학교에 물소 떼가 달려가는 듯한, 웅장한 진동이 일었다. 포식자였던 선생님은 노쇠한 사자가 되어 그 물소 떼 사이에서 종잇장처럼 나부꼈다.


 밥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는 오전 수업이, 다시 오후 수업이 끝났다는 공식적인 선언이었다. 아무리 엄한 선생님이라도 식사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에는 수업도, 잔소리도, 숙제 검사도 이어가지 못했다. 마치 엄마에게 혼나는 와중에 찾아온 할머니와 같은 존재랄까? 그건 일종의 절대적인 기준점이었다.





   

  

#3.

 직장에 다닐 즈음, “밥 먹자.”는 말은 절대적인 언령의 권위를 잃었다.


 아침밥 대신 커피를 한 모금에 털어 넣었다. 야근 후에 돌아오면 11시였다. 냉장고 앞에 앉아 아무거나 꺼내 입에 쑤셔넣고 잠드는 날이 많았다. 주말에는 늦잠을 잤고, 점심에야 눈을 떴다. 더 이상 ‘밥 먹어!’라며 내 시간의 경계선을 지어주는 부름은 없었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밥 먹어!” 대신에 “밥 먹을래요?”가 되었고, “잠깐만!” 대신에 “먼저 드세요.”라는 선택지가 생겼다.

 업무가 많은 시기에는 점심을 거른 채, 오전에 하던 일을 이어 나간다. 정신을 차리면 서너 시라 밥을 먹기 애매하다. 서랍에 넣어 둔 과자를 먹는다. 그러고 나면 또 저녁 시간이 애매해졌다.

 “그냥 저는 저녁 안 먹고, 차라리 빨리 야근 끝내고 집에 가서 먹을게요.”

 빨리 퇴근하고 싶다는데 누가 저녁을 함께 먹자고 붙잡을 수 있겠는가.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내 삶의 흐름을 끊어 줄 마법의 주문이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







         

#4.

 “이러다 나 죽으면 내 몸에서 과자만 나오는 거 아닐까?” 덤덤히 과자를 까먹으며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친구는 역시 덤덤히 답했다.

 “무슨 소리야. 커피가 비중이 더 높을걸.”

     

 어릴 적 원했던 대로, 나 먹고 싶을 때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과자로 떼울수도 있게 되었다. 아무도 내가 하던 일을 ‘밥 먹어야 한다’는 이유로 끊지 못한다.

 분명 그런 것 같은데, 왜 난 ‘삼시세끼 제대로 먹으며 살고 싶다’고 바라고 있지? 제대로 그릇에 담긴 밥상에 앉아 먹은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누가 나를 위해 따뜻한 나물에 밥 한 끼 차려줬으면 좋겠어.”

 내 칭얼거림에 친구는 차분하게 나를 토닥이며 위로했다.

 “돈을 내고 백반 집에 가면 돼...”


 그래, 이제는 아무도 나의 삶에 기준점을 만들어 준다거나, 강제로라도 쉬도록 하지 않는다. 애써 식사를 챙겨주지도 않는다. 스스로 부단히 노력해야 식사 시간을 규칙적으로, 제 때에 챙길 수 있다. 귀찮음을 수십 번 이겨내고서야 불을 켜고 기름을 두르고, 재료를 손질해, 제대로 된 접시에 끼니를 담아 식탁에 앉을 수 있다. 어쩌면 진짜 어른이 된다는 건 다른 어떤 것보다, 밥을 제대로 챙겨 먹는 존재 아닐까. 물론, 나는 어른은 되지 못했다. 그렇다고 친구의 말처럼 백반집에 가지도 않았다. 조그마한 월급에 점심값은 포함되지 않았다.]




#5.

 백수가 되고 부모님이 계신 집에 기어들어 왔다.


 외지도 떨어진 회사 때문에 자취를 했던 거라 더는 자취를 이어갈 이유가 없었다. 아직 직장인의 DNA가 남아있어 6시가 되면 눈이 떠졌다. 씻고 나와 거실 한 가운데 이동식 책상을 펼치고 책을 읽었다. 10시쯤 다시 꾸벅꾸벅 졸음이 왔고, 그대로 다시 잠이 들었다. 다시 눈을 뜨면, 공짜로 얻은 또 하나의 하루를 맞이하는 기분이었다. 냉장고를 연다. 세상에, 야채가 있다. 반찬통이 있고, 밥이 있다. 굴소스, 참기름, 후추같은 양념장이 있다!

 통, 통, 통. 양파를 썬다. 썩, 썩, 썩. 양배추도 썬다. 당근은 썰기 귀찮아서 보통 생략한다. 뒤에서는 전자레인지에서 밥 돌아가는 소리가 난다. 굴 소스나, 마파 두부 소스를 넣으면 별다른 고기를 넣지 않아도 맛이 좋지만, 기분 좋은 날에는 냉동 새우나 다진 고기를 넣기도 한다. 음식 맛을 스무 배는 올려준다는 고소한 참기름을 두르고, 김가루까지 뿌리는 사치를 누린다. 따끈한 볶음밥 앞에, 냉장고에 있던 배추김치며 깻잎무침이며 멸치볶음이며를 꺼낸다. 한 상이다. 슴슴하고, 달짝지근하고, 짭조름하다.

     

 학창 시절, 점심과 저녁 시간에 그토록 친구들과 성난 소떼처럼 달려 나갔던 게 단순히 밥을 먹고 싶다는 욕망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합법적으로, 정말이지 어쩔 수 없이, 공부를 그만두어야만 하는 시간. 생활의 기준점이었기 때문이다. 그 까마득했던 기준점이 백수가 되자, 다시 멈추었던 그려지기 시작했다. 오전과 오후를 나누고, 오늘과 내일을 나누는. 하루의 시작을 알리고, 마무리를 덮어주는.


 백수가 되어 시간이 많아진 나는 5시쯤 가족들의 식사를 차리기 시작했다. 퇴근하고 돌아왔을 때, 제대로 그릇에 담긴 한 상의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아, 그리고 백수는 집안일을 해야 덜 구박받는다. 밥하기, 빨래 널기, 방 닦기 같은. 백수 생활 필수 지침 세 번째 쯤일 정도로 중요하다.)

 애호박과 버섯에, 두부도 듬뿍 넣는다. 강된장에 물을 많이 풀어 된장국을 끓이면 그냥 된장국보다 진한 국물을 맛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청양고추로 칼칼한 맛까지. 나는 뿌듯하게 국자로 맛을 본다. 단전에서부터 크, 소리가 절로 난다.



 퇴근한 가족들에게 어서 먹이고 싶다. 그들이 옷을 갈아입자마자 외친다.

 “밥 먹어!”

 지금이 제일 따뜻해서 맛있는데. 지금 먹어야 하는데! 가족들은 내 속도 모르고 심드렁하게 대답한다.

 “아, 잠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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