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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끼 Mar 18. 2024

역마살 낀 멍게

성실한 불성실함



 멍게는 알에서 태어난다. 알에서 막 태어난 멍게는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과 다르다. 0.15cm 정도의 올챙이 같은 모습인데, 이때 멍게는 뇌를 지니고 있다. 뇌와 지느러미를 가진 ‘유생기’의 멍게는 바다를 떠돌아다니다가, 안착할 바위를 찾아 자리를 잡는다. 떠돌지 않는 멍게는 자신의 뇌를 갉아먹기 시작한다. 더는 생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뇌는 영양분만 축낼 뿐이다. 멍게는 뇌가 없게 된다.



출처 : 두피디아 (두산 백과사전)

          



 어느 한 분야에서 꾸준히 1만 시간을 노력한다면 전문가가 된다는 ‘1만 시간의 법칙.’

 교황 율리우스 3세의 영묘를 40년 동안 제작한 미켈란젤로.

 “무슨 생각하면서 훈련해요?”라는 질문에 “그냥 하는 거죠.”라고 대답한 김연아.

     

 매일 하는 것을 그저 하는, 작지만 단단한 반복에서 오는 성실함의 힘은 그 무엇보다 강력하다. 수많은 역사 속 천재들의 습작이 대부분 졸작이라는 점을 보면, 어쩌면 영감이 번쩍 떠오르는 재능보다 꾸준함과 성실함이야말로 최고의 재능일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나는 번뜩이는 천재성의 재능도, 성실함의 재능도 타고나지 못했다. 아니, 재능은커녕, 머리조차 무척 안 좋은 열등생에 가깝다. 어릴 때, 남들은 30분이면 다 암기하고 나가 놀 때, 나는 3시간은 끙끙거리며 붙잡고 있어야 했다. 다른 아이들이 뛰어나가 노는 걸 보며 스스로 ‘해삼! 말미잘! 멍게!’라며 머리를 쥐어뜯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멍게는 단순히 멍청한 놈이 아닌, ‘뇌가 없는 놈’이라는 뜻이니 제법 살벌한 욕인 셈이다. 절대 욕설로 사용하지 말도록 하자.)



    




 성실함도, 영특함도 부족하니 차라리 가만히 있으며 편안함을 느끼는 성미면 좋으련만, 더욱 안타깝게도 천성에 역마살마저 낀 게 분명하다. 

 나는 뭐라도 해야 안정감을 느낀다. 취미든, 공부든, 일이든. 말하자면 ‘투 두 리스트 (To Do List)’에 뭐라도 적고 끝마치면서 밑줄을 죽- 그어야 속이 후련한 셈이다. 한 가지 일을 꾸준히도 못 하면서, 아무 일이 없는 건 또 못 견디는 모순.


 한 가지를 오래 파지 못하는 불성실함과 뭐라도 해야 마음이 편해지는 성격은, 아이러니하게도 끝없이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기묘한 성실함을 만들었다. 곧 잘 그만두어 불성실하게 성실했고, 참 성실하게도 꾸준히 불성실한 셈이다.    

 한참 다이어리 꾸미기에 시간과 돈을 몽땅 쏟았다가, 공무원 시험을 공부하다가, 한 달 글쓰기 모임에 다니다가, 자기 계발을 해야 한다며 당장 필요도 없는 자격증을 땄다가, 매일 아침 30분씩 필사했다가, 이모티콘을 만들어 보겠다며 아이패드를 사고 일주일 정도 만지작거리다 구석에 처박아 두었다가, 온갖 공모전에 접수했다가, 수영을 배우며 삼 개월 수영 예찬론자가 되었다가,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다가, 영어 회화 공부하겠다며 유료 앱을 결제했다가, 도서관에서 그림책 관련 수업을 듣고 그림책에 빠졌다가- 하는 식이다.

 물론 이 사이사이 이틀 정도만 하고 관둔 수많은 기웃거림이 있다. 다만, 하루 사귄 애인을 ‘사귄 사이다’라고 말하기엔 조금 애매하듯이 기웃거렸다고조차 말하기 애매할 정도로 불성실한 흔적들이다.


     



 이런 천성을 물리적인 세계에서도 알아봤는지, 나는 어쩐지 한 곳에 머물지 못했다. 대학에 다니면서도 어쩌다 보니 집에서 통학, 학교 기숙사, 친구와 자취, 혼자 자취를 다 거치며 여기저기 전전했다. 직장은 세 군데를 다닐 때마다, 이상하게 가장 먼 구석 외지의 부서로 발령받았다. 부모님은 “너는 역마살이 있나 보다”라고 했는데, 이놈의 역마살은 물리적인 운명과 내 천성 모두에 적용됐다.

     

 이렇게 역마살의 불성실함이 얼마쯤 꾸준히 반복됐을까. 성실히 쌓인 불성실함이 이상한 순환을 만들기 시작했다.

     

 조금 집적대다 방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아이패드가 있어서 1년 후, 도서관의 그림책 양성 과정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아마추어라고는 하나 그림책 한 권을 만들어 보는 경험을 했다. 몇 개월 후, 도서관에 근무하며 그때 배웠던 그림책 작가와 작품을 도서관 해설할 때나 도서 배치를 할 때 얹을 수 있게 되었다. 언젠가 아이패드 드로잉이 재미없다는 마음을 잊을 즈음이면, 다시 먼지 쌓인 그 납작한 기계를 잡고 새로운 무언가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동안 부디 고장 나지 않길 바란다. 뭐, 똑똑한 인재들이 모인 세계적 기업이 만든 거니까, 멍게 같은 나의 역마살 순환기보다 기계 수명이 더 길지 않을까?)

     

 5년 전쯤, 한 달 다녔던 글쓰기 모임과, 3년 전쯤 외지로 발령 난 역마살 덕분에 매일 점심시간에 근처 작은 도서관에 다닐 수 있었던 것, 그러다 심심해서 시작한 필사가 쌓여 지금 다시 글을 쓸 마음을 만들었다. 

 만약 제법 오랜 시간 글을 꾸준히 쓰려고 했다면, 질림과 계속된 실패에 진즉 포기하고 다시는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간중간 여기저기 흘러 다닌 덕분에, 오히려 어느 순간 다시 돌아올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 기웃거렸던 많은 경험이 다시 글을 쓰려고 자판기에 손을 얹었을 때, 또 다른 동력이 되었다. 그 힘은, 마치 처음인 척하는 설레는 동력이기도, 소재라는 실체를 가진 경험이기도 했다.


           




 안착한 멍게는 뇌가 없다. 하지만 만약 멍게가 계속 떠돌아다닌다면, 뇌 역시 계속 남아있지 않지 않을까. 비록 고도의 사고를 하는 똑똑한 멍게는 아닐지라도 말이다.


 나는 여전히 머리가 좋지 않다. 하던 것을 오래 하는 성실함도 없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나는 꼭 멍게 같다. 하지만, 아무리 이런 나라도 ‘뇌가 없는 놈’이라는 그냥 멍게 같다는 욕설은 영 마뜩잖다. 그러니 멍게는 멍게더라도, 생각 없이 사는 안착한 멍게보다 여기저기 기웃대는 역마살 낀 멍게라도 되어보자, 다짐한다.

 혹시 모르지 않을까. 역마살이 낀 채 여기저기 바다의 흐름에 흘러 다니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보물섬에 도착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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