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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끼 Feb 12. 2024

감정이 태도가 되지 말아야 할까?

뇌과학으로 보는 우리의 감정


감정은 기본적으로, 기린의 긴 목이나 북극곰의 털 색깔과 다를 게 없는 생존전략이다.

<인스타 브레인>. 안데르스 한센     





#1. 감정적인 인간


“감정적으로 굴지 마.”, “감정이 행동이나 태도가 되어서는 안 돼.”

 타인과의 관계에서, 특히 업무적인 관계에서 ‘감정적이다’는 평가는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감정적이라는 평가는, 이성적인 행동을 하지 못하는 ‘무능력’의 한 형태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너는 너무 감정적이야.”는 말을 들었을 때, 불편하거나 울컥하는 감정이 든다면 정상이다. 아마도 나를 깔보는 언어를 내뱉는 상대를 위협으로 인식했거나, 조직에서 ‘감정적인 인간’이라는 이유로 배척당할 것을 위협으로 인식한 뇌가 어떤 호르몬을 분비해 ‘불편’과 ‘울컥’하는 감정을 올라오도록 만든 것일 테니 말이다. 그런 감정이 만들어진 결과, 우리는 소심하게 몸을 사리거나, 우울해져서 밤에 ‘나는 왜 이렇게 감정을 제대로 참지 못할까’라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책하거나, 당장 그 사람에게 화를 내며 반박할 수도 있다. 즉, 감정이 행동으로 이어진다.

 

 나는 주로 전자였다. 꾹꾹 참아보려는 불편한 감정이 틈을 비집고 표정과 말투에서 새어 나왔다. 집에 돌아오면 나의 미성숙한 감정 컨트롤에 대해 자책했다. ‘나는 대체 왜 이렇게 무능력하지. 내일은 아무렇지 않게 잘 웃자.’ 나는 두근거리는 심장과, 뒤틀리는 위장을 달래며 이불을 끌어올리곤 했다. 그리고 마지막엔 늘 이렇게 생각했다.

 ‘가기 싫어. 일어나고 싶지 않아. 다시 눈을 뜨지 않으면 좋겠어.’          


 실제로 감정적인 행동은 종종 일을 그르치게 만든다. 사내 연애를 하다가 헤어진 직장 동료 때문에 안 좋아진 분위기, 중요한 프로젝트를 담당하던 중 우울감에 빠져 프로젝트를 망친 사원, 제 스트레스를 그대로 부하 직원들에게 티 내는 팀장. 그렇기에 감정적으로 굴지 말라는 말은 능력 있는 사회인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으로 타당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이 그토록 부르짖는다는 건, 여전히 수많은 사람이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인간’이라는 반증일 것이다.



          

#2. 감정의 목적 생존할 수 있도록 행동하라


 직장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감정이 울컥 올라와서는 안 되는데, 대체 우리는 왜 이러는 걸까. <인스타 브레인>의 저자 안데르스 한센은 감정이 진화의 결과 만들어진 생존전략이라고 말한다.



오늘의 잡학지식. 삼끼



 가령,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은 내가 지금 세상의 어떤 것(혹은 나를 둘러싼 세상 자체)을 ‘위험’하다고 인식한다는 것이고, 뇌는 살아남기 위해 호르몬을 분비해 ‘감정’을 만든다. 왜? ‘행동’하게 만들기 위해서. 우울한 감정을 만들어서 위험한 세상에서 회피하게 만든다. 불안한 감정을 만들어서 감각을 민감하게 만든다. 저자에 따르면, ‘가장 강하고 현명하고 스트레스에 강한 사람이 항상 살아남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위험을 피하고 굶어 죽지 않게 하는 것이 생존에 중요했기에 우울과 불안은 생존을 도와주는 전락이었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그렇게도 ‘감정이 행동이 되어서는 안 돼.’라고 외치지만, 애초에 감정의 목표는 ‘행동’하게 만들기 위함인 것이다. 살아남기 위한 진화의 결과로 말이다.


       




#3. 세상은 생각만큼 위험하진 않아!


 물론 감정 내키는 대로 행동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스트레스로 불안해진 감정을 팀원에게 푸는 팀장은 최악이다. 365일 우울한 감정을 그대로 태도로 나타내는 사람 옆에 남는 동료는 없을 것이다.

     

 다만, 감정은 애초에 행동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결과이니, 감정-행동의 연결고리를 애써 끊어내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감정’ 자체에 집중해 보자는 것이다. 세상을 위험투성이로 인식하는 나의 뇌와 감정을 다독여 보자. 과거 사자에 쫓기던 위험만큼 현대의 위험은 바로 목숨과 직결되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은 언제나 교과서적이며 단순한 법이다. 잘 먹고, 잘 자고, 세상 속에서 잘 움직이면 된다. 그렇게 세상이 사자에 쫓기는 순간만큼 위험하지 않다는 걸 계속해서 나의 뇌에 알려주면 된다.

           

 나는 나의 세상을 돌아보았다. 내가 어떻게 잠들고, 무엇을 먹고 있는지. 내가 있는 공간은 어떤지. 내 세상에 빛이 들어온 게 언제 적인지.

 매일은 하지 못해도, 쉬는 날 한 끼라도 제대로 그릇에 반찬을 담아 밥을 먹었다. 점심시간에 햇볕을 쬐며 10분이라도 걸어 근처 도서관에 가서 책의 냄새를 맡았다. 도저히 변할 수 없을 것 같은, 내게 가장 큰 위험이 되는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그만두고 나서도 생각보다 세상에 큰일이 나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까 위험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른 세상은 생각지도 못한 우연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4. 좋은 감정이 태도와 행동이 되도록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어요.”, “그냥 꾸준히 하다 보니 어느새 성공했어요.”는 말처럼 교과서적인 것만큼 어려운 게 없다. 그러나 수만 년 진화의 결과로 생성된 생존 시스템을 바꾸려는 것보다는 훨씬 시도해 볼 만한 일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호모 사피엔스는 행복한 감정을 오래 유지하도록 진화하지 못했다. <인스타 브레인>의 언급처럼 ‘불안과 우울감은 기쁨이나 평온한 감정보다 우리의 생존에 더 중요한 감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매일 감정대로 행동하지 않게 참는 건 한계가 있다. 대신 우울해지는 감정을 받아들이고, 충분히 굶어 죽지 않고, 맹수에게 목이 달아날 일 없이 잘 살 수 있는 세상의 안전지대를 계속해서 인식해 나가는 게 훨씬 나은 방법이지 않을까. 

 좋은 감정이 태도와 행동이 되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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