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분업화된 '소리 공장'

말소리튜닝 26

by 신미이

우리 입은 '소리 공장'입니다.

성대 진동음이 목을 타고 올라와 입에서 변형되어야 서로 다른 자음과 모음 소리가 만들어집니다. 자음과 모음의 소리가 만들어지는 방식, 즉 조음방법은 다릅니다. 모음은 성대 진동음이 지나는 소릿길의 모양을 바꿔서 서로 다른 음가를 만드는 반면, 자음은 성대 진동음이 지나는 소릿길을 순간적으로 막았다 열면서 소리를 냅니다.

'순간적으로 막았다 연다'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1번 양순음 'ㅁㅂㅍㅃ'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므브프쁘' 소리를 낼 때 입모양을 관찰해 보세요. 두 입술이 붙었다가 떨어지면서 소리가 납니다. 즉 성대진동음을 막았다가 열어야만 자음 'ㅁㅂㅍㅃ'소리를 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2번 치조음 'ㄷㅌㄸㄴㄹㅅㅆ'도 성대 진동음이 지나는 소릿길을 혀가 완전히 또는 부분적으로 막았다가 열면서 나는 소리입니다. 혀가 완전히 막았다 열면서 나는 소리는 'ㄷㅌㄸㄴ'이고 부분적으로 막았다 열면서 나는 소리는 'ㄹㅅㅆ'입니다. 앞에 설명한 바 있습니다. 이해가 안 가면 다시 읽고 오셔도 됩니다.

3번 경구개음 'ㅅㅊㅉ'은 약간 다른데요. 혀가 소릿길을 완전히 막지는 않지만 소릿길을 아주 좁게 만듭니다. 성대 진동음이 좁아진 소릿길을 통과하면서 나는 소리입니다. 비유를 해보겠습니다. 나란히 맞붙어 있는 두 고층 빌딩 사이로 바람이 지나갑니다. 그때 강한 빌딩풍이 생기지요. 빌딩풍이 생기는 것처럼 성대 진동음도 혀와 입천장 사이의 좁은 틈을 지날 때 강해집니다. 이 같은 소릿길의 빌딩풍으로 인해 경구개음 'ㅅㅊㅉ'이 만들어진다고 보시면 됩니다.


4번 연구개음을 설명하려다 보니 서설이 길어졌습니다.


연구개음은 'ㄱㅋㄲㅇ' 4개입니다. 연구개라고 불리는 입천장 안쪽 부드러운 곳에서 만들어지는 소리입니다.

입을 꾹 다물였을 때 이 연구개와 맞닿는 혀는 뒷부분입니다. 이를 '후설'이라고 합니다. 후설이 연구개에 붙었다 떨어지면서 소리가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잘 느끼지 못합니다. 눈으로 안 보이고, 혀로 느끼기도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연구개음 중 먼저 'ㄱㅋㄲ'부터 살펴보겠습니다.

'ㄱㅋㄲ'은 후설이 연구개와 완전히 붙었다가 떨어지면서 소리가 납니다. 성대 진동음이 지나는 소릿길이 연구개 부분에서 막혔다 열리면서 소리가 만들어지는 겁니다. 순간적으로 막혔던 길이 뻥 뚫리면서 'ㄱㅋㄲ' 소리가 만들어지는 거죠.

해볼까요?

"그~그~그~그~" 소리 내 보세요.

'그' 소리를 내려면 후설이 위로 솟으면서 입안 쪽 부드러운 입천장에 찰싹 달라붙어야 합니다. 이어서 입천장에 찰싹 달라붙어있던 혀가 떨어지면서 '그~' 소리가 납니다. 막혔던 길이 뻥 뚫리는 거죠. 느껴보세요.


같은 연구개음이라도 'ㅇ'은 소리가 만들어지는 방식이 조금 다릅니다.

막혔던 길이 뻥 뚫리면서 소리가 만들어지는 'ㄱㅋㄲ'과 달리, 'ㅇ'은 계속 길을 막고 있어야 정확한 소리가 납니다. 성대 진동음이 지나는 길을 막고 있는데 어떻게 소리가 나냐고요? 납니다. 이때 성대진동음이 우회로를 택합니다. 바로 코입니다. 성대 진동음이 코로 빠져나가면서 비음 'ㅇ' 소리가 만들어집니다. 다시 말해, 혀의 뒷부분인 후설이 입 안쪽의 부드러운 입천장을 꽉 막고 있어서, 성대 진동음을 실은 공기가 입이 아니라 코로 빠져나가면서 만들어지는 소리가 'ㅇ'입니다. 그래서 'ㅇ'을 비음이라고 부르는 거죠.


진짜 그런지 확인해 볼까요?

"응~응~응~응~" 소리 내 보세요.

여기서 잠깐! 음절 초성의 'ㅇ'은 소리값이 없습니다. 그냥 동그라미 모양 하나 그려 넣은 겁니다. 지금 말하는 연구개음 'ㅇ'은 음절 받침에 있는 'ㅇ'을 말하는 겁니다.

느껴지세요? 저는 혀의 뒷부분이 위로 들려서 입천장을 막고 있는 상태에서 바람이 코로 빠지는 게 느껴집니다. 여러분도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공통점 하나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음 소리는 입술이나 혀가 성대 진동음이 지나는 소릿길을 방해할 때 만들어지는 소리라는 걸요.


성대 진동음이 지나는 길이 입술에서 완전히 막히면 양순음 'ㅁㅂㅍㅃ'이 만들어지고,

성대 진동음이 지나는 길이 잇몸에서 완전히 또는 부분적으로 막히면 치조음 'ㄷㅌㄸㄴㄹㅅㅆ'이 만들어지고,

성대 진동음이 지나는 길이 경구개에서 좁아지면 경구개음 'ㅈㅊㅉ'이 만들어지고,

성대 진동음이 지나는 길이 연구개에서 완전히 막히면 연구개음 'ㄱㅋㄲㅇ'이 만들어지는군요.


이렇게 우리 입 소리공장은 철저하게 분업화되어 있습니다.

각각의 자음 소리를 만드는 소리 공장이 다르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렇게 비유하면 쉽겠네요.

1번 소리공장: 입술 생산품: ㅁㅂㅍㅃ

2번 소리공장: 잇몸 생산품: ㄷㅌㄸㄴㄹㅅㅆ

3번 소리공장: 경구개 생산품: ㅈㅊㅉ

4번 소리공장: 연구개 생산품: ㄱㅋㄲㅇ


이렇게 분업화되어 있는 자음 소리 생산체계를 무시하고 은근슬쩍 소리를 내는 둥 마는 둥 넘어가면 말소리가 뭉개지기 십상입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을 아주 많이 봤습니다.

다음 글에서 이어가겠습니다.




keyword
이전 08화"짜장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