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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데 쉽지 않은' 19번째 자음

말소리튜닝 27

by 신미이

"우리 고향에서는 하얀 황새가 하늘을 훨훨 날아다녀요."

"저는 고향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생활력이 강한 편이에요."


소리 내 읽어 보세요.


마지막으로 살펴볼 자음은 'ㅎ'입니다. 19개의 자음 중 19번째네요.

자음 'ㅎ'은 목구멍에서 나오는 소리로, 후음이라고 해요.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이렇게 설명되어 있네요.


'후음: 성대를 막거나 마찰시켜서 내는 소리'


그러고 보니 'ㅎ'이 자음 중에서는 가장 깊은 곳에서 만들어지는군요. 그만큼 소리 내기가 만만치 않을 것 같지만 일상생활에서 'ㅎ' 발음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아직은 못 봤습니다.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 봤습니다.

첫째, 조음 위치가 뚝 떨어져 있다는 겁니다. 입천장에 오밀조밀 조음 위치가 몰려있는 다른 자음과 달리, 'ㅎ'은 입천장에서 멀리 떨어진 목구멍을 활용한 자음이기 때문에 다소 모호하게 소리를 내도 찰떡같이 'ㅎ'소리로 알아듣는 것 같습니다.

둘째, 자음 'ㅎ'은 음절 받침에 오는 경우가 없습니다. 그러니 소리 낼 일도 없겠죠. 예를 들면, '많아요.'는 [마나요]로 소리 나고, '않아요'는 [아나요]로 소리 나고, '좋아'는 [조아]로 소리 나요. 우리는 'ㅎ' 소리가 어디로 날아간 건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씁니다. 습관적으로 잘 써요.


그런데 자음 'ㅎ'이 음절 첫소리에 올 때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위에 예시로 든 따옴표 안의 문장을 다시 소리 내 읽어보세요. 아마도 녹음을 해서 들리는 대로 받아 적어 보면 이렇게 소리 내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우리 고양에서는 하얀 황새가 하늘을 훨월 날아다녀요."

"저는 고양 사람들의 영양을 받아서 그런지 생왈력이 강안 편이에요"


첫소리 'ㅎ'이 첫 음절에 올 때는 정확하게 [ㅎ]으로 소리를 냅니다. 이렇게요.

[하얀], [황새], [하늘], [훨월]

그런데 두 번째 음절에 올 때는요? 'ㅇ'으로 바뀌었죠. 두 번째 음절부터는 첫소리 'ㅎ'을 나도 모르게 [ㅇ]으로 바꿔서 소리 내고 있는 겁니다. '고향'이 '고양'으로 들리고, '영향'이 '영양'으로 들리고, '생활력'이 '생왈력'으로 들립니다. 그래도 맥락상 다 알아듣습니다. '고양'으로 들려도 '고향'으로 알아듣고, '영양'으로 들려도 '영향'으로 알아듣고, '생왈력'으로 들려도 '생활력'으로 알아듣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이걸 정확한 소리라고 할 수는 없겠죠.


따라서 저는 또렷한 말소리를 구사하고 싶다면 자음 'ㅎ'이 초성, 즉 첫소리에 올 때는 언제나 [ㅎ]으로 정확하게 소리 내라고 주문합니다. 다소 힘들 수 있어요. 목구멍에서 뭔가 뱉어내는 느낌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한 소리 중에 하나입니다.


"이 학생이 그 학생이야?"


소리 내서 읽어 보세요.


어떤 사람은 [이학쌩이 그학쌩이야]라고 소리 내는 반면,

또 다른 사람은 [이악쌩이 그악쌩이야]라고 소리 냅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이신가요?

내가 'ㅎ'을 정확하게 소리 내고 있는지 스스로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해서 19개 자음 소리가 만들어지는 곳, 즉 조음 위치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사실 살면서 우리말 자음소리가 어디에서 만들어지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을 겁니다. 그냥 어찌어찌하다 보니 입에서 그냥 우리말소리가 나왔던 거였죠. 그런데 내 말소리가 또렷하지 않다, 또는 뭉개진다고 느낀다면 조음위치를 모르고서는 고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우리말소리 자음 소리를 만드는 입을 '소리 공장'에 비유하면서 각각의 자음 소리가 만들어지는 위치에 번호를 붙였습니다. 여기에 5번을 추가하겠습니다.


1번 소리 공장: 입술 생산품: ㅁㅂㅍㅃ

2번 소리 공장: 잇몸 생산품: ㄷㅌㄸㄴㄹㅅㅆ

3번 소리 공장: 경구개 생산품: ㅈㅊㅉ

4번 소리 공장: 연구개 생산품: ㄱㅋㄲㅇ

5번 소리 공장: 목구멍 생산품: ㅎ


또렷한 우리말소리는 이 5개 소리 공장의 협응으로 완성됩니다.

오차가 생기면 불량품, 즉 부정확한 말소리가 생산됩니다. 다음 글에서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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