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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소리 때문에 손해 보는 사람

말소리튜닝 33

by 신미이

영화 '변호인' 기억하시나요?

배우 송광호 씨가 열연했던 영화, 천만 관객을 돌파한 국민 영화죠. 개인적으로는 배우 송광호 씨의 법정 변론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속사포 같은 말을 쏟아 내면서도 정확하고 유창한 말소리, 거기에 진심까지 담기니 관객들의 마음이 안 움직이고는 못 배기겠죠. 역시 국민 배우 답습니다. 그 장면을 찍기 위해 얼마나 반복해서 연습을 했을까요.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저는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세상에 저런 변호사가 어디 있어'


일반적으로 변호사라는 직업은 말을 잘하는 사람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말을 잘한다는 건 내용도 논리적이지만, 말소리도 분명하고 정확하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런데 실제 재판을 참관해 보면 변호사들의 말소리는 실망스럽습니다. 목소리가 작아 들리지 않거나, 더듬거리고, 심지어 서면을 보고 읽는데 끊어 읽기도 부자연스럽습니다. 자신감이 없는 주눅 든 모습이랄까요. 영화나 TV드라마에 나오는 변호사의 모습과는 딴판입니다. 옆에 앉은 의뢰인들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저는 그런 변호사들을 보면서 '왜 크고 정확한 말소리로 말하는 연습을 하지 않지?' '도대체 왜 자신의 말소리를 객관적으로 평가해 보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부정확한 말소리 때문에 이미지를 깎아 먹는 지식인들은 많습니다. 저는 방송기자라는 직업상 다양한 분야야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을 인터뷰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TV 뉴스에 설득력을 더 해줄 '키맨(key man)'들이었죠. 전문가 입장에서는 자신을 대중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기브 앤 테이크가 되는 셈이죠.

TV인터뷰는 촬영 후 방송으로 송출됩니다. 그래서 말소리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아, 내가 섭외를 잘못했구나'하고 후회할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제가 묻습니다. "무엇을 잘해야 성공할까요?

전문가가 답합니다. "견제 전책을 잘 세워야 선공합니다."

무슨 말을 한 걸까요? 여러분은 알아들으셨나요?

저는 알아듣습니다.

"아, 경제 정책을 잘 세워야 성공한다고요."

맥락상 이해한 겁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전문가의 인터뷰가 방송을 탑니다.

TV 화면에서 전문가가 말을 하고 있습니다.

"견제 전책을 잘 세워야 선공합니다."


제가 너무 과장된 예를 들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요. 정말 많습니다. 셀 수 없을 만큼.


얼마 전에는 지방의회에서 '웃픈'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한 의원이 본회의장에서 '5분 발언'을 하고 있었습니다. 유튜브로 송출 중이었는데 제가 본 것은 그 라이브 화면이었습니다. 의원은 읽고 있었습니다. 원고를 손에 들고 있지는 않았지만 읽고 있었습니다. 목소리는 떨렸고 발음은 부정확했습니다. 끊어 읽기까지 부자연스러워 전달력이 떨어졌습니다.

저는 금방 눈치를 챘습니다. 아 프롬프터를 보고 있구나. 원고 없이 말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어눌한 말소리 때문에 들통이 나고 만 거죠.

보고 읽는 게 잘못됐다는 게 아닙니다. 미리 원고를 준비하는 것은 좋은 습관입니다. 그런데 그런 원고를 가지고 자연스럽게 말하기를 해야지, 잔뜩 얼어붙은 자세로 읽기를 하면 안된다는 걸 강조하고 싶을 뿐입니다. 의원다운 말소리는 아니었습니다.


'일로서의 말하기'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사석에서 친구나 가족들과 웃고 떠드는 말소리는 부정확해도 귀에 거슬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회의, 토론, 발표, 인터뷰와 같은 공식적인 상황에서는 다릅니다. 일할 때 말소리는 직업에 걸맞은 기대치가 있습니다.

정확한 말소리, 자신감 넘치는 말소리는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반복된 훈련이 필요합니다.

말소리가 좋아지면 일의 결과도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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