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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망심리 Jul 16. 2023

고유 명사의 망각

마망심리 사례 13

나는 몇 년 전에 어떤 고유 명사 하나를 망각했다. 그 단어는 베니스로 들어가기 바로 전의 기차역 이름이었고 베니스 여행 때 머물렀던 호텔이 있던 곳이었다. 그 이름을 떠올리려 했지만 도무지 그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망각된 그 기차역 이름은 <메스트르Mestre>였는데, 대신 <트리에스테Trieste>와 <데메테르Demeter>가 생각났다. 트리에스테는 이탈리아 북동쪽에 있는 아름다운 항구도시이고, 데메테르는 곡식과 수확의 여신이다. 이렇게 우리는 평소에 아주 잘 알고 익숙하게 사용하던 고유 명사가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는 경험을 많이 한다. 이럴 때 요즘 건망증이 심하다든지 나이가 들어서 그렇다든지 하면서 생각을 끝내 버린다. 

트리에스테 항구


그런데 프로이트는 『일상생활과 정신병리학』이라는 책에서 <고유 명사의 망각>이라는 제목으로 이러한 일시적인 망각에 대해 정신분석적 해석을 시도한다. 그에 따르면 고유 명사가 망각될 경우, 이름이 <망각>될 뿐만 아니라 <잘못 기억> 되기도 한다. 말하자면 갑자기 생각나지 않는 그 이름을 기억해내려고 애를 쓸 때 망각된 이름 대신에 <대체 이름>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는 것이다. 우리의 사례에서도 <메스트르>라는 기차역 이름이 망각되고 대신 <트리에스테>와 <데메테르>가 생각이 나지 않았던가?


대체 이름들이 떠오르는 순간, 우리는 그 이름들이 우리가 기억해 내려는 그 이름이 아니라는 것을 즉각 알아차리지만 망각된 이름은 생각나지 않고 그 대체 이름들이 집요하게 계속 바뀌어가며 떠오른다. 엉뚱한 대체물들은 망각한 단어를 중심으로 뱅글뱅글 돌면서 계속해서 생산된다. 프로이트는, 그렇다면 대체 이름이 기억해 내려고 하는 이름과 일정한 방식으로 연관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자신이 경험한 고유 명사의 망각을 분석한다.   


프로이트는 이탈리아 오르비에토(Orvieto) 성당의 프레스코 화를 그린 화가의 이름인 <시뇨렐리Signorelli>가 망각되고 대신 다른 화가인 <보티첼리Botticelli>와 <볼트라피오Boltraffio>라는 이름만 머릿속에 떠올랐다. 


시뇨렐리라는 화가의 이름을 망각했을 당시 프로이트는 어떤 사람과 <보스니아Bosnia>와 <헤르체고비나Herzegovina>를 여행하고 있었다. 이때 프로이트는 그에게 오르비에토 성당에 가보았는지, 그리고 거기에 시뇨렐리가 그린 유명한 프레스코 화를 본 적이 있는지를 물었는데 그때 시뇨렐리가 기억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은 그 이야기 직전에 <보스니아Bosnia>와 <헤르체고비나Herzegovina>에 사는 터키 인들의 관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곳의 터키인들은 의사에 대해 대단한 신뢰를 갖고 있고, 운명에 완전히 체념적인 태도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의사가 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없다고 통고한다면 <선생님(Herr),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라고 말한다. 또한 프로이트는 이 <보스니아>의 터키인들은 그 어떤 것보다 <성적> 쾌락에 높은 가치를 두기 때문에 그것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면 삶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말이 떠올랐지만 동행자에게 그것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해서 억제했다. 그러나 죽음과 성이라는 주제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생각했다. 그리고 프로이트는 당시 <트라포이Trafoi>에 머물기 몇 주 전 그에게 전달된 한 소식에 영향을 받았다. 자신이 치료하는 데 상당히 어려움을 겪었던 한 환자가 불치의 <성적> 질환 때문에 자살했다는 소식이었다. 이 안타까운 사건과 관련된 기억이 헤르체고비나 여행 동안 기억 속에 떠오르지는 않았다. 


프로이트는 시뇨렐리라는 이름의 망각이 우연한 사건이 아니고 어떤 동기 때문에 망각이 일어났다고 봤다. 터키인들의 관습에 관한 이야기의 주제는 <죽음과 성욕>이었고 트라포이에 머물기 전에 받은 소식의 환자는 <성적> 질환 때문에 <자살>했다. 그는 무언가를 망각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무언가를 격리(억압, Verdrängung)해야 했다. 그가 망각하려고 했던 것은 오르비에토 성당의 화가인 시뇨렐리가 아니라 다른 어떤 것, 말하자면 <성욕과 죽음>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시뇨렐리와의 연관—이 연관은 발음의 유사성 때문에 만들어진다—속에 있으려 했다. 그 결과 성욕과 죽음에 관한 것을 망각하려는 의지는 목표를 상실했고 의도적으로 망각하려고 애쓰는 동안 그의 의지에 반하여 시뇨렐리라는 화가의 이름을 망각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잊어버린 이름과 격리(억압)된 주제(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트라포이 등의 이름에서 나타나는 죽음과 성욕이라는 주제)가 서로 연관을 맺고 있다는 것이다.  


<시뇨렐리Signorelli>라는 이름은 두 부분으로 쪼개진다. (1)<elli>는 그대로 대체 이름들 중 하나인 <보티첼리Botticelli>에서 반복된다. 반면 다른 부분인 (2)<Signor>는 Herr로 번역되어—이탈리아어 Signor는 선생님, 주인님이란 뜻으로 터키어로는 Herr로 번역된다—격리(억압)된 주제인 죽음과 성욕이 포함된 이름들 <헤르체고비나Herzegovina>와 <Herr,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에 등장한다. 


재미 있는 것은 그는 망각하려고 했지만 타협책으로 기억난 대체 이름들이 그가 망각하고 싶은 것을 떠올리게 해준다는 것이다. 즉 대체 이름인 <보티첼리Botticelli>와 <볼트라피오Boltraffio>는 <bo>를 매개로 그가 망각하고 싶은 죽음과 성욕에 관한 주제를 기억나게 한다. <보스니아Bosnia>를 여행하며 터키인들의 관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트라포이Trafoi>는 아나그램anagram처럼 철자의 순서가 바뀌어 <볼트라피오Boltraffio>에 <트라피오traffio>로 등장하며 죽음과 성욕을 떠오르게 한다.


나는 메스트르를 망각하고 트리에스테와 데메테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는 대체 이름으로 떠오른 트리에스테와 데메테르의 자유연상을 통해 내가 격리(억압)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분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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