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은 취향, 마감은 인내였다.
가을에 입기 좋은 원피스를 만들었다. 자투리 시간이 날 때나, 머릿속이 복잡할 때 붙잡고 만들다 보면, 무념무상 속에 복잡한 생각들이 정리되곤 한다. 그러고 보면, 내가 만들었던 옷들의 많은 수는 생각이 많았던 시절의, 해법의 실타래 역할을 해주었던 것 같다.
취향이 고스란히 담긴 초봄부터 초가을까지 입기 좋은 롱치마 길이의 원피스다. 기본패턴을 활용해 화이트톤에, 작은 들꽃 패턴이 들어간 칠부 페플럼 소매이다. 꽃무늬가 예쁘고, 원단이 두께감이 약간 있으나, 시원하다.
한 달여 가까이 틈틈이 공을 들이고, 인내한 끝에 만들어진 원피스다. 너튜브를 켜두고 칼라 부분이며, 제일 난이도가 있는 콘솔지퍼달기등 하나하나 찾아가며 보고, 또 보며 만들었다. 이 옷만 주야장천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가다 눈에 띄면 재단해 놓은 원단위에 심지를 놓아 다려 놓고, 그다음 날 머리가 복잡해지는 일들이 있으면 재봉틀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 소매를 만들어 달고, 주말같이 시간 여유가 있는 날이면, 전체 박음질을 하는 식이다.
자투리천이 많이 남아서 계획에 없던 쁘띠스카프도 만들었다. 어떤 때는 자투리천으로 같은 색의 간단하고 작은 코사지 장식 같은 것도 만드는 재미가 있다.
문득, 옷을 직접 만들어 입으면, 어떤 장단점들이 있을까 정리해 보았다.
1. 자기만의 취향과 스타일을 반영한 독창적인 옷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매번 비슷한 유형만 만드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 되어 버렸다.
2. 원단이나 부자재등의 직접 선택이 가능하고, 특수 목적에 맞는 옷을 제작할 수 있다.
실제로 경조사에 한두 번 입을 옷을, 고가로 사기엔 아까울 때가 있다. 그런 때도 도움이 된다.
3. 직접 만든 옷에는, 시간과 정성과 의미가 들어가 있다.
4.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어 디자인 능력이 향상되고, 자기 계발에도 도움 된다.
나름 생각건대, 치매예방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5. 힐링되는 좋은 취미로,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
마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듯한 희열을 느낄 수 있지만, 피할 수 없는 치명적 단점도 있다.
1. 디자인, 원단 고르기, 재단, 바느질까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2. 옷 하나 제대로 만들기 위해선 재봉 실력, 패턴 이해, 원단 특성등 혼자 다 알아야 하는 기술적인 한계가 있다.
3. 장비 부족 또는 장비 비용 부담
가정용 재봉틀로는 바지, 재킷, 두꺼운 원단 작업이 어렵고, 오버록, 단추구멍등 전문 장비까지 구매하려면 비용이 크다. 결국 이런 걸 생각해 보면 시중에서 판매하는 옷 가격이 그렇게 비싸지 않다는 현실적 결론에 도달하기도 한다.
4. 원단·부자재도 의외로 비싸다.
싸게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어떤 경우엔 주인공 원단 몇 마의 값보다, 단추나 안감등의 부자재값이 훨씬 몇 배로 비쌀 때가 종종 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다.
5. 재봉 공간이 필요하다.
재단부터 재봉까지 넓은 작업 공간이 필요하다. 나의 경우도 작은 방 하나에 재봉틀과 오버록, 책상을 넣고 다림판을 세워놓고 나면 공간이 꽉 찬다. 그리고, 여기저기 패턴과 원단등으로 나름 정리한다고 하는데, 작업중일 때는 어수선하다. 어지럽다고 잔소리 안 하는 남편이 고맙다.
하지만, 이런 치명적 단점에도 불구하고, 옷 만들기는 여전히 재미있고, 흥미롭다.
자! 다음엔 또 뭘 만들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