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여전히

by 이로

고요한 밤이었다. 정확히는 새벽 2시 37분.

침대에 대자로 뻗어 누웠다.

천장은 희미한 달빛을 받아 회색빛이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다.

뇌를 포맷하는 기분으로.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지우고, 내일 할 일들도 잠시 잊었다.

그냥, 존재하고 싶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이불은 발끝까지 차내 버린 지 오래였다.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에어컨을 켤까 말까 고민했지만, 그마저도 귀찮았다.

이 정도면 거의 식물인간 수준 아닌가.


눈을 감았다. 귓가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고요함이 나를 감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고요함 속에서 선명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쿵, 쿵, 쿵. 내 심장이 뛰고 있었다.

규칙적이고 끈질기게.

마치 "야, 너 지금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지? 나 엄청 일하고 있거든?" 하고 시위하는 것 같았다.

피가 온몸을 도는 느낌도 희미하게 전해졌다.

손끝, 발끝, 머리끝까지. 따뜻한 에너지가 흐르는 것 같았다.

왠지 모르게 뭉클했다.

내가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내 몸은 묵묵히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숨을 쉬고, 피를 돌리고, 심장을 뛰게 하고. 내가 잠시 멈춰 서 있는 동안에도,

내 몸은 다음 도약을 위해 조용히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릴 때 엄마가 그랬다. "너는 가만히 있어도 예쁘다."

그때는 그 말이 그냥 하는 소리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건 내 존재 자체에 대한 인정이었던 것 같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나는 나로서 충분하다는.

갑자기 문득, 내 몸에 고마워졌다.

매일 아침 알람 소리에 맞춰 억지로 눈을 뜨고, 출근길 지옥철에서 시달리고,

퇴근 후엔 녹초가 되어 침대에 쓰러지는 나를 묵묵히 버텨준 몸.

가끔은 너무 혹사시킨 건 아닌가 싶어 미안해졌다.

"야, 너 고생이 많다. 미안하다." 속으로 중얼거렸다.

다시 뛸 그날을 위해. 그날이 언제 올진 모르지만, 분명 올 것이다.

어쩌면 내일 아침, 어쩌면 한 달 뒤, 어쩌면 일 년 뒤.

중요한 건, 내 몸이 그날을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꾸준히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마치 운동선수가 경기를 앞두고 컨디션을 조절하듯이.


눈을 뜨니 아까보다 방이 조금 더 밝아진 것 같았다.

새벽은 어느새 희미한 여명을 품고 있었다.

창밖에서 새소리가 들려왔다.

지저귀는 소리가 꽤나 경쾌했다. 어쩐지 기분이 좋아졌다.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내려와 창가로 다가갔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서 묵묵히 움직이고 있었다. 저 새들도, 저 햇살도, 저 바람도.

나는 다시 뛸 것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그리고 그때는 지금보다 더 단단해져 있을 것이다.

내 몸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그렇게 될 것이다.

아침 공기가 폐 속으로 시원하게 들어왔다. 상쾌했다.

어쩐지 모르게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래, 가끔은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멈춰 서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으니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