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살이 살짝 비치는 거실에서 커피 한 모금 마시며, 아이가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더 이상의 행복은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요즘 아이가 푹 빠진 'Summer'라는 곡이 있는데, 일주일 사이 실력이 꽤 늘었다. 누르는 한 음 한 음 마음을 건드린다. 몸이 머무는 곳은 그대로지만, 마음은 잔잔한 햇살이 일렁이는 바다 위 어디를 날아가고 있다.
이럴 때, 음악은 우리 일상에 큰 역할을 하고 있구나 싶다. 초견에 버벅거리기도 하고, 음을 잘못 소리 내기도 하지만 완벽이 중요하지 않다. 단순히 피아노 건반에서 흐르는 음표들 그 이상이다. 몰두하며 리듬을 타는 아이의 모습에서 그건 아이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선율이라는 걸 느꼈다. 우리의 하루를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멜로디였다.
음악은 삶의 배경음악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스러워서 인식이 잘되지 않을 뿐,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다. 음악은 감정의 통로가 되어 주고,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신나는 음악에 몸을 맡겨보기도 하고, 목청껏 소리를 질러보기도 한다. 유행하는 k-pop을 따라 부르며 핫한 가수가 되어보았다가 쇼팽 발라드를 들으며 유럽의 어느 연주회에 가 있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우리에게 음악은, 상상력을 자극하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게 해주는 아주 특별한 경험이다.
나는 요즘 마음이 복잡할 때 임윤찬의 라흐마니노프 연주를 듣는다. 40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어떠한 고민도 없다.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기분이 들고, 모르는 사이 미소 짓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자기 전에 조성진의 비창을 듣고 있노라면 눈물이 날 것만 같다. 마치 깊은 숲 속에서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오는 것처럼 내면을 어루만져 주며, '괜찮아'라고 속삭이는 위로를 받는 느낌이 든다. 음악이 이렇게 마음의 치유사가 되어준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두 아이 모두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 피아노 학원에 보냈다. 이 시기 만들어지는 음악적 감성이 평생 큰 힘이 되어준다는 걸 경험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악보를 읽을 수 있게 되고, 리듬을 느끼며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조금씩 자신감도 얻는 걸 보았다. 어려운 곡을 연습할 때는 가끔 불평 하기도 했지만, 그런 순간조차 아이를 성장시키는 중요한 시간이 되어주었다. 음악을 배우는 것에는 단순히 악기를 잘 연주하는 것 이상의 것이 담겨있다.
음악을 통해 아이들은 감정을 표현하고, 타인의 감정을 이해한다. 아이는 자기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대신 간단한 리듬으로 자신의 마음을 잘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어릴 때 형성된 음악 감성은 평생 함께하는 것 같다. 기분에 따라 음악을 선택하기도 하고, 음악이 내 기분을 바꿔놓기도 한다. 청소년기에 들었던 팝송은 지금도 나를 그 시절로 데려가 주기도 하니, 음악은 마치 내 감정과 기억을 담아두는 작은 타임캡슐이기도 하다.
미래의 우리들에게 음악이란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음악적 감성은 어떤 역할을 할까? 나는 음악이 감정 표현과 창의력, 공감 능력을 키워준다고 믿는다. 이는 앞으로 점점 더 중요한 자질이 될 것이다. 음악은 단순히 즐거움 이상의 것이다. 아이들이 복잡한 세상 속에서 마음의 중심을 잡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며, 타인과 연결되는 방식을 배우게 해 준다 믿는다.
일상에 음악을 녹여내면서 아이들의 감정 표현과 창의력, 공감 능력을 높여줄 수 있다.
첫 번째로, 가족 음악 시간을 가지는 것을 추천한다.
주말 아침, 가족들이 각자 좋아하는 곡을 틀고 함께 듣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다. 음악에 얽힌 에피소드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그 곡이 어떤 기분을 느끼게 했는지 나눌 수 있다. 이는 음악으로 서로의 마음이 연결되는 시간을 만들어준다.
종종 어릴 때 좋아했던 노래를 아이들과 함께 듣는다. 신기하게도 나 자신도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곤 한다. 꿈 많던 청소년 시절 품었던 설렘, 콩닥거리는 마음을 가졌던 나를 떠올리게 해 주었다. 우리 아이들도 이런 마음을 가지겠지 싶어 괜히 마음이 몽글해진다. 아이들을 좀 더 이해하게 된다. 음악은 이렇게 시간을 넘나드는 다리가 되어준다.
두 번째는, 악기에 도전해 보는 것이다.
거창한 악기가 아니어도 좋다. 리코더, 실로폰, 칼림바 등 쉽게 구할 수 있는 악기로 다양한 소리를 내어보는 것이다. 온 가족이 돌아가며 연주해 보는 것도 좋다. 배우기 쉬운 악기로 시작하면 부담이 없으면서도, 아름다운 멜로디를 스스로 만들어내면 그것만으로도 큰 성취감을 느껴 푹 빠질 수 있다.
집에 디지털 피아노가 있는데 정말 신기하다. 어찌나 기능이 많은지 다양한 악기 소리를 낼 수 있다. 타악기도 가능하고 심지어 동물 소리도 난다. 이런 기능을 활용해 두 아이가 작은 피아노 의자에 나란히 걸터앉아 종종 합주를 한다. 물론 악보는 없다. 엉망진창 제 맘대로이지만, 자기들끼리 웃으면서 뚱땅뚱땅 소리를 내어본다. 그러다가 박자가 맞춰지고 메인 멜로디가 정해지고 나름 독특한 음악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때 연주하고 있는 아이들 표정은 평생 소장하고 싶을 만큼 사랑스럽다. 행복이 가득하다. 투닥거리며 싸우는 형제가 이렇게 기분 좋게 멜로디를 연주하고 있는 걸 보면, 새삼 음악의 힘이 대단하다는 걸 느낀다.
마지막으로, 일상에서 배경음악을 활용하는 것이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 카페 등 가만 생각해 보면 무의식 중에 듣게 되는 음악이 있다. 집중하여 듣지는 않지만, 뭔가 기분 전환을 시켜주는 그런 음악들.
언젠가부터 나는 아침에 음악을 튼다. 아침 클래식, 카페 음악, 계절에 어울리는 재즈 등 아이들이 일어났을 때 기분 좋은 하루를 맞이할 수 있는 음악을 재생한다. 제목을 몰라도, 뮤지션을 몰라도 좋다. 멜론이나 유튜브에 검색만 하면 훌륭한 DJ, 전문 유튜버들이 기가 막히게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놓아주니 말이다.
음악에 따라 공간의 분위기가 바뀐다. 아이들의 기분도 한층 밝아진다. 때론 차분해진다. 날씨가 화창할 땐 밝고 경쾌한 곡으로, 비가 오는 날엔 차분한 멜로디로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영화를 보고 온 날이면 한동안은 영화 OST를 질리도록 들을 때도 있다. 크리스마스처럼 특별한 날에는 그에 맞는 곡을 틀어주면서 일상을 조금은 다른 날처럼 느끼게도 한다. 작은 음악 선택이 하루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음악은 아이들에게 삶을 풍요롭게 하는 감성을 선물해 준다. 음악은 하루를 조금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고, 때로는 마음을 어루만져 주기도 한다. 밋밋한 하루가 음악으로 꾸며진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음악을 통해 세상을 더 따뜻하고 풍요롭게 만들어갈 모습을 그려본다. 단순히 일상의 배경이 아니라, 아이들의 삶을 더 빛나게 할 특별한 도구가 될 거라 믿는다. 미래에 아이들이 어떤 멜로디로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들려줄지 기대된다.
함께 노래하고, 연주하고, 즐기는 순간들이 아이들 마음에 오랫동안 아름다운 흔적으로 남기를 바란다. 그 흔적은 아이들 내면에 심어진 작은 씨앗이 되어 조금씩 자라날 것이다. 그 싹이 언젠가 커다란 나무가 되어 세상에 따뜻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