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평가사

중년백수 일기

by 일로

오늘은 오후에 고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 친구를 만나고 왔다.

초등학교 6학년 때도 한 반이었고, 사회 나와서도 계속 인연이 되어 중년 이후에는 일 년에 한두 번씩

둘이 보는 사이다. 최근 손해평가사라는 자격증을 알게 되었는데 이 친구가 따면 좋을 것 같아 연락을 했다.

이 친구는 경기고 전교 1등을 하고 서울대를 갔던지라 어렵지 않게 딸 수 있을 것 같았다.

은퇴 후에도 공부가 재밌다며 외국어 공부와 교원자격증도 준비하고 있다.


우리가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건 이 친구의 선입견 없는 겸손함 때문이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당시 그림만 그리며 혼자다니던 나를 아무런 편견 없이 좋은 친구로 대해주었다.

자신은 공부가 한가지 기능에 불과하다고 생각해 오히려 예술하는 친구들이 너무 부럽다고 했다.

실제로 대학 때는 댄스, 탈춤 등을 배우고 나보다 먼저 문화원에서 그림을 배우기도 했다.

난 주택관리사 공부를 해보니 역시 공부 머리는 없고 기억력까지 더 나빠져 자신이 없었다.


우리 나이에 프리하게 전국을 다니며 일할 수 있고 나이들수록 경력이 쌓여 전망도 괜찮아 보였다.

니가 추천하는 자격증이니 바로 하겠다고 했다. 내가 놓친 것이 있을 수 있으니 너도 알아보라고 하며

헤어졌다. 11월에 홍콩변호사인 막내딸을 시집보내는데 미혼인 딸은 호주변호사다.

부부 사이도 좋아 동창들 중 가장 멋진 중년 이후의 삶이 그려지는 친구이다.

젊어서 나보다 훨씬 더 가정만을 위한 삶을 살았기에 보람되고 안정된 중년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제대 후 수학정석을 사들고 고시원에 처박혀 혈서를 쓰며 서울대를 도전했던 그 패기는 다 어디로

갔는가? 수험생 대부분이 50대 이상인 시험도 시작 못하는 내 모습이 슬프기도 하다.

너도 충분히 할 수 있다며 같이 하자는 친구 말에도 망설이던 내 모습이 작게만 느껴졌다.

차라리 주택관리사 시험공부를 해보지 않았거나, 공부하다 면역력이 떨어져 얼굴에 주사가 올라오지 않았다면, 아무 생각 없이 시작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