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백수 일기
어제는 아내와 경기도 광주에 있는 충현 동산에 다녀왔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공원묘지이다. 요즘은 95% 정도가 화장을 모셔 자연장을 하는 추세라고 한다.
5만 평 규모에 관리가 잘되어 있고, 주변에 맛집들과 카페도 많아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곳이었다.
교구에서 단체 탐방을 하고, 인근 "봉배산고추장불고기" 란 맛집에서 맛있는 점심과 한옥마을 카페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비 온 뒤 갠 가을 날씨에 교회 분들과 함께여서 더 좋았던 것 같다.
아내한테 나 죽으면 이곳에 자연장을 해달라고 하니, 혼자 이곳에 찾아오기 싫다며 화장 후 바로 뿌리겠다고 했다. 순간 서운했으나 혼자서 죽은 남편을 그리워하며 찾아오길 바라는 건, 내 욕심일지도 모른다.
죽으면 이곳에 명찰 하나 남기지 못할 인생인데, 뭘 고민하느라 잠 못 이루었을까 하는 생각도 따라왔다.
죽음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단순해진다는 말씀이 떠 올랐다. 죽지 않아도 병들고 나이 들면, 내가 열심히
모았던 물질들은 모두 꽝이 되고, 내가 베풀었던 마음들만 남아 나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오늘 주일 예배 후 순모임을 한 후 돌아오는 길에 아내에게 또 한소리를 들어야 했다.
우리 순원 중 집사님 내외가 회사에 큰 사고가 터져 한 달 여 교회를 못 나오다 오랜만에 참석을 했다.
부부 얼굴만 봐도 하나님 잘 믿으면 저렇게 될 수 있을까 하는 부러움이 들 정도의 믿음을 가진 분들이다.
최근 시련들을 간절한 기도로 극복해나가며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간증하는 자리가 되었다.
그런데 내가 눈치 없는 질문을 하고, 쓸데없는 솔직함으로 맥을 끊었다며 뭐라 했다.
아마도 길어야 이십 년일 것이다. 나이 들수록 뇌 세포들은 더 줄어들 것이고, 눈치는 바가지가 될 것이다.
젊은 아내가 아무리 지적을 해줘도, 들을 때뿐이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내가 신기할 정도이다.
눈치 없이 썩을 육체는 충현 동산에 이름 하나 걸치지 못한다.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질 시간이 그리 멀어 보이지 않는다. 내가 죽어서도 살 수 있는 건, 아마도 사람들 기억 속뿐일 것이다. 나로 인해 단 한 사람이라도 행복할 수 있었다면, 그 사람의 추억이 나를 하늘나라에 머물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