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은지심과 회복

결혼 19년 차 일기

by 일로

측은지심과 회복 2019년 10월 24일


오늘도 아이들을 학교에 바래다주고 운동을 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상념에 잠겼었다.

운동을 마치고 어머님 집에 갔다 돌아와 보니 아내가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큰 딸 학교에서 내일 열리는 학교 축제 준비물을 가져다줘야 했다. 아내를 태우고 차를 몰고 진선여고 운동장에 갈 때까지도 내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다른 때 같으면 날씨도 좋고 외출 준비도 하고 나왔으니, 외각으로 드라이브를 가던지 영화를 보자고 했을 것이다.


어저께 아내가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고 했는데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 학교 운동장에 차를 주차하고 있는데,

저 앞으로 딸아이 짐을 양손에 잔뜩 들고 걸어가는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니 왠지 측은한 마음이 몰려왔다.

아이에게 물건을 전해주고 나오며 운동해서 피곤하니 집에 가서 고스톱이나 치자고 했다.

아내도 싫지 않은 반응이어서 집으로 들어와 고스톱 한게임을 끝내고 아내는 잠을 자고 나는 마루로 나왔다.


오후에 아내가 일어나자 밖에 나가 점심을 먹고 카페에 갔는데, 뭔가 찜찜한 기분을 아내에게 다 털어놓고 싶어졌다. 그날 왜 그렇게 늦게 들어왔는지..

하지만 내 못난 감정들을 얘기하면 서로가 너무 초라해질 것 같고, 아내도 눈빛으로 제발 말하지 말라고 하는 것 같아 꾹 참아야 했다. 이 정도는 그냥 넘어갈 수 있는 포용력 있는 남편으로 남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 아내 같은 사람을 원망하거나 믿지 못한다면 그건 내 질병이 틀림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더 완벽한 아내를 원하다가는 내 욕심의 말로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 차라리 그런 실수라도 있어야지 나 같은 남자와 사는 아내로서 공평한 일이 될 것이다. 내 삶을 온전하게 만들어 주고 있는 내 아내가 천사가 아닌, 한 인간이었음을 고백하는 모습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내가 자꾸 이렇게 바보같이 구는 것은, 아내 문제가 아닌 내 정신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 주변을 보면 미정이 만큼 가정에 충실하고, 아이들과 남편에게 집중하는 여자도 많지 않다.

그런 아내의 첫 일탈에 이렇게 힘들어한다는 것은 의처증 증세 말고는 설명하기 어려울 것 같다.

무엇보다 내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은 나에게는 너무 과분한 아내라는 사실이다.

다음 주에는 고시원을 계약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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