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걷는 길

하이경

by 청일


1. 작가소개


하이경은 풍경을 그리지만, 실제로는 사람 사이의 거리와 온도를 그리는 작가다.

그의 화면에는 늘 길이 있고, 나무가 서 있으며, 빛이 머문다.

그러나 그 길은 이동을 위한 통로라기보다

시간을 견디며 함께 걸어온 삶의 흔적에 가깝다.


눈 내리는 밤, 비에 젖은 거리, 고요한 여백 속에서

그는 말보다 느린 감정을 포착한다.

화려한 사건이나 극적인 장면 대신

함께 있음, 기다림, 침묵 같은 관계의 본질을

담담한 색과 부드러운 붓질로 풀어낸다.


하이경의 그림은 감정을 설득하지 않는다.

다만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기억 속 한 장면을 조용히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그의 풍경은 낯설지 않고,

어느 순간 우리의 길이 된다.


2. 작품설명


〈함께 걷는 길〉은 눈 내리는 밤의 풍경을 통해 동행의 의미를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하얗게 덮인 길과 가로수, 흐릿한 가로등 불빛은 삶의 시간 속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불확실함과 고요를 상징한다.


화면 중앙, 멀리 놓인 두 사람의 작은 실루엣은 이 작품의 핵심이다.

그들은 선명하지 않다.

누구인지, 어떤 관계인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바로 그 모호함 때문에

관람자는 그 자리에

자신과 누군가를 자연스럽게 겹쳐 놓게 된다.


눈은 모든 것을 평평하게 덮지만

차갑기만 하지는 않다.

빛을 머금은 눈발과 부드러운 색조는

함께 걷는 존재가 있을 때

길이 얼마나 견딜 만해지는지를 말해준다.


〈함께 걷는 길〉은

혼자 버티는 삶이 아니라

서로의 보폭을 맞추며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게

함께 흐르는 관계에 대한

조용한 찬가다.


3. 나의 감상


눈이 내리는 날에도

비가 길을 적시는 날에도

폭풍이 지평을 삼키는 날에도

햇살이 눈부시게 부서지는 날에도

가야 할 길은 결국 무릅쓰고 지나가야한다.


무릅쓴다는 것,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살아간다는 것의 다른 이름이다.


길의 끝을 아는 이는 없다.

다만 우리는 운명처럼, 혹은 운명을 거스르듯

망설임을 품에 안은 채

발을 떼는 일만은 멈추지 않은 채

한 걸음, 또 한 걸음을 내딛는다.


걷다 보면 고개가 뒤를 향한다.

방금 지나온 길은 과거의 지층이 되고

눈 위에 찍힌 발자국은

소리 없이 추억의 화석이 된다.

세월을 건너온 모든 길들이

나의 서사를 이루어

지금 걷는 길 위에

투명한 지도처럼 겹쳐진다.


주어진 길 위에는

언제나 갈림길이 숨어 있었다.

나는 그 선택들의 미로를 지나

어느덧 여기까지 흘러왔다.

자꾸 뒤를 돌아보는 이유는

미련 때문이 아니라

앞으로 펼쳐질 길에 대한

이름 없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눈 내리는 길 위를

함께 걷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길은 덜 시리고

고독은 반쯤 녹아내린다는 것을안다.


많은 말이 오가지 않아도

서로의 보폭을 읽어내고

웃음이 번지는 순간

그 온기가 눈발을 뚫고

먼 곳까지 가닿는다는 것을.


강물이 그러하듯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게

서로를 적시며 흐르는 관계.

그 균형이 얼마나 귀한지

우리는 상처를 통해 이미 배웠다.


끝이 어디일지 끝내 알 수 없어도

나는 맑은 물길을 고집하는 사람과

이 길을 걷고 싶다.

그를 떠올릴 때마다

청량하고 투명한 강물이

가슴 한편에 흐르는 사람과.


눈이 와도, 비가 와도

우리는 오늘도 걷는다.

같은 지평을 향해.

나란히, 혹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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