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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당근 Jun 14. 2024

욥기 7장 1절-21절 묵상

절망에 빠진 사람들

내용 관찰

1-2

일꾼들의 소망 - 일꾼들(직장인)은 저녁 그늘(휴일)과 품삯을 받는 날(월급날)을 기다린다,


3-10

그러나 욥에게는 일꾼들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그런 소망이 없다.


11-16

소망이 없으니 욥은 하나님께 고통을 토로한다. (불평하겠다고 말한다)


17-21

의인인 욥에게도 죄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고난과 죄 가운데 있는 인간 욥으로부터 시선을 돌리지 않으시는 하나님(19절), 즉, 하나님이 보신다는 고통과 두려움을 말한다.




연구와 묵상

1-10

직장인을 보면 고생이 많다. 그러나 그들이 그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소망이 있는데, 가족, 휴일, 월급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욥은 이러한 소망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많은 빚을 진 사람들이 극단적인 선택(자살)을 하는 경우가 있다. 미래가 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 나아질 소망이 없다면 절망에 빠지게 된다. 심리학 사전에 따르면, 이렇게 말한다.


절망감은 
상황이 심각하게 잘못되었으며
더 나은 방향으로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감정이나 느낌이다.


 

그리고 욥이 이러한 절망 가운데 있었다. 회복될 아무런 가망이 보이지 않고, 의지할 가족도 사라졌다. 그나마 친구들이 찾아왔지만, 위로해줄 거라고 생각했던 친구들이 비난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하나님은 전혀 욥에게 응답해주시지 않을 거 같았다. 완전한 밑바닥, 절망 가운데 빠진 것이다.


11-16

절망에 빠진 사람들, 다시 회복될 소망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일어나야 할까? 많은 기독교인이 절망에서 일어났다. 닉 부이치치, 이지선 자매 등등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 일어날 수 있었다. 그들이 그렇게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절망 속에서 하나님께 따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D = S – M: to despair means to suffer without meaning.



절망이란 의미가 없는 고통이다. 법륜 스님과 같은 사람들은 이 세상에 의미가 없다고 말하고, 그러니 알아서 의미를 만들어 가라고 말한다.



하지만 언젠가 들었던 미국의 심리학 팟캐스트는 법륜 스님과 정반대의 말을 했다. 수백 명을 상담했던 상담사가 말하기를, 의미가 있고 없고에 따라 절망에서 일어날 수 있는가 없는가가 달라진다고 말한다. 이 세상에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 내가 겪고 있는 이 고통에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절망을 이겨낼 힘을 준다는 것이다.


물론 당시 팟캐스트에서 상담사는 "성범죄자에게 폭행을 당하고 아이를 임신한 아이에게, 어느 누가 너가 겪고 있는 이 고난에는 의미가 있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이야기했다. 그러나 절망에서 이겨낸 사람들이 천편일률적으로 가지고 있는 모습은 자신이 겪고 있는 인생과 고난 속에서 이유와 의미를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너무 오래 전에 들은 팟캐스트라, 정확한 수치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삶에 이유와 의미를 찾는 사람들이 절망을 이겨내는 경우가 훨씬 높다고 했다.)


그리고 아래의 이지선 자매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자살을 하려던 이지선 자매는 하나님을 찾아가 따지게 된다. 그러자 하나님으로부터 삶의 이유와 의미를 듣는다.



17-22

의인 욥에게도 죄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하나님이 보신다는 것에서 고통을 느낀다. 온 인류가 죄인이기에 의인 욥조차도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예수님이 아닌 이상 말이다. 죄인은 하나님의 관심이 두렵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그렇지 않다. 칭의 이전에는 하나님의 관심, 하나님과의 교제는 두려운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칭의 이후, 즉 죄가 해결된 이후 하나님의 관심과 하나님과의 교제는 두려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예수님 오시기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그렇기에 중보자가 필요했다. 모세 시대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얼굴이 두려워 중보자로 모세를 세워달라 간청했다. (가톨릭은 예수님과 사람 사이에 성모 마리아를 세운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만으로는 인간의 죄가 완전히 해결되기 않기 때문에 중보자가 필요한 것이다.) 죄가 해결이 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관심(19절)은 고통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욥은 하나님께 허물을 사하여 달라고 소망한다(21절).





느낌 및 결단과 적용


1.

복음을 잘 모르는 사람들, 죄가 아직 해결이 되지 않은 사람들을 보면 아직도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를 세우려고 한다. 때로는 목사를 중보자로 세우려고 하고, 또 때로는 목사가 무서워서 목사 옆에도 가지 않으려 한다. 복음을 잘 알고 있는지, 죄 문제를 제대로 해결했는지 다시 한 번 스스로를 점검해보아야 한다.



2.

삶과 내가 겪고 있는 이 고난에 의미가 있다면 이 고난을 이겨낼 수 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 우리의 상황을 불평하고(11절) 하나님께 토로한다면 하나님은 들어주시고 이 고난에서 이겨낼 힘을 주신다.


(물론 여기서 "니가 고난을 이겨내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 돌아가지 않아서야"라고 말하는 것은 욥의 친구들과 똑같은 모습이 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여기서 또 한 가지 팁은, 우리가 욥과 같은 고난에 빠지지 않았더라도 하나님께 토로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하나님과 자주 대화하자.


3.

욥은 모든 소망을 잃어버렸다. 사실, 하나님 외의 모든 소망은 부질없고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소망이 무엇인지 점검하고, 그것이 사라지더라도 넘어지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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