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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장발? 왜? 나 원래 이런 사람이야.

해보지 못하면 느끼지 못하는 것

여자아이를 육아를 하면서

아빠가 커버를 해줄 수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없다

라는 생각으로 스스로의 제한을 두려고 하지 않는다.


남들이 어렵고 쉽지 않다고 느끼는 것을 내가 함으로써 희열을 느낀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그런데 정말 정말 어렵고 안 되는 것이 딸아이의 긴 머리 관리이다.

사내였으면 이발기(?)로 직접 싹 해줬을 텐데,,

(군대에서 머리 좀 깎았다)

게다가 나는 아침에 출근 & 등원 전쟁 중이라 뭘 할 수 가없다.

어린이집을 다니는 동안은 선생님들이 아주 현란한 솜씨로 머리를 묶어서

누가 보면 아빠가 혼자 애 키운다고 생각안 할 만큼 어마어마했다.

너무나 고마운 선생님들.


딸아이가 7살이 되던 해.

이제는 동네에 친구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내가 아주머니들 그룹으로 들어갈 수는 없으니 초등학교에서 만나서 인사할 수 있는 친구 1명은 있어야겠다는 마음으로

병설 유치원을 선택하여 다니게 되었다.

(아내는 영어 유치원을 보내려고 했다_이것도 나중에 한편 써야겠다)


그런데 병설유치원은 더 이상은 어린이집 같은 케어는 어려웠다.

그냥 예비 초 1의 느낌,,

애 머리는 가지런하게 묶는다고 해도 활동 중 사진이나 하원할 때 보면 산발로 아주 볼 수가 없다.

누가 보면 꼭


“쟤네 엄마는 저런 거 신경 안 쓰나 봐? ”


라는 손가락질을 받을 거 같은 걱정이 들었다.

물론 엄마가 집에 있는 날은 아주 신경 써서 가는 편이다.

옷과 머리 등이 다른 집 아이가 된 듯 바뀐다.


일단 앞으로 머리 묶는 건 도움을 못 받을 것이 확실하여

결단을 내려야 했다.


관리가 편리하게 싹둑 머리를 자르던가..


“싫어 기를 거야!!”

“…..”


아니면…

음..

내가 한번 길러보면서 뭐가 불편하고 그런지 느껴볼까?


당시 나는 HR직무로 10년 정도 일을 하다가

아이가 동네 병설 유치원으로 가면서 약간의 출퇴근 자유가 생긴 터였고,

나의 강력한 요청으로 영업직무로 직무전환이 된 상태였다.


그전의 HR직무였을 때도 그들 사이에서는 약간 자유로운 영혼이었는데

이제는 나에게 날개가 달린 듯 생각과 행동이 그전보다 자유로워졌다.

그래서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갑자기 코로나가 터져 재택근무가 시작되어

눈치를 덜 보고 기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가끔 회의나 업무 미팅으로 출근을 하게 되면


“ 어머!! 머리 너무 긴 거 아니에요?”

“ 인사에 있을 때는 안 그러더니 얼마나 참은 거예요~“

“ 야~ 머리 좀 잘라~“


그때마다 적극적인 해명을 하진 않고 웃어넘겼는데,,

당신들은 내 사정들들 모르겠지..

굳이 알 필요도 없고 동정을 받을 필요도 없다.

 

내가 느껴본 긴 머리는 너무나 불편했다.

그래도 머리를 길러봄으로써 긴 머리의 메커니즘(?)을 알게 되었고

지금은 딸아이의 반묶음, 완벽한 양갈래, 머리땋기 등 마스터가 되었다.


현재 뉴질랜드에서도 나의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딸 머리를 보며 감탄을 한다.(자세히 보면 엉성해요. 딸은 뒤를 못 봐요)



길러보지 못했다면 못 느꼈을 것..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 많다.


딸아이뿐만 아니라

이 나이 때 어린아이들은 뭔가를 배우거나

할 때 대부분이 처음일 때가 많기 때문에

항상 시작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 딸은 성향상 초반에 항상 겁을 먹는다.

전형적인 슬로스타터다.

처음이 어렵지 나중에는 본인이 더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다(라고 믿는다)

그런 우리 딸이 이제는 어느 정도 말귀를 알아듣는다.

나는 항상 이런 말을 해준다.


“ 지금은 뭘 잘하는 것보다
그냥 해보는 거
자체가 의미가 있는 거야”

“ 처음부터 잘할 수 없어~
괜찮아 못해도 돼!”

“ 근데 나중에는
그냥 열심히 한다고
인정 못 받는다~ “

“ 그때는
잘해야 인정을 받아”

“ 지금은
잘하는 거 찾는 과정이니까
이것저것 해보자~“


그러면서 ,


머리를 못 묶는 아빠가 머리를 길러보면서 잘 묶게 된 것


요리를 못 하는 아빠가 요리를 하면서 우리가 그나마(?) 한식당도 없는 뉴질랜드 시골에서 먹고는 사는 것


등을 예로 들면서 설명해 주면


딸은 고개를 끄덕인다.

본인이 실제로 아빠의 변화와 노력을 보았기 때문에 이해가 쉽게 되었을 것이다.


나는 또 머리를 기르고 있다.

장발을 좋아하나?라는 스스로의 질문에는

“응”이라는 대답을 쉽게 하지 못한다.


근데,,

담배와 술보다도 끊기 힘든 것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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