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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디 Apr 12. 2024

아저씨는 고기 생각뿐

모두 다 꽃이라는데

#1. 봄날의 아침, 앞동산


“아저씨!”

“…”

“거기 앞에 가는 아저씨!”

건만이, 건순이 나란히 등교하는 모습을 보고 집 앞의 동산을 둘러 집으로 돌아오는 길, 주변을 둘러봐도 숲 속에는 나 말고 아무도 없다.


어르신, 설마 나를 부르시는 건가. 아침의 봄기운을 맞으러 아이들과 함께 나서며 으쓱하던 어깨가, 아저씨라는 외침에 흐들흐들거린다. 에잉, 애들 둘이 학교 가라고 하고 애미는 집에서 쉴 걸 그랬나. 앞동산 외침의 주인공이 나임을 깨닫고도, 선뜻 뒤돌아 보기가 싫어 미적거렸다.


“아저씨… 가 아니고 아가씨네. 우리 사진 한 장만 찍어줘요.”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 네 분이 환경자원봉사라 적힌 주황 조끼를 입고 나릿나릿 움직이신다.

“꼭 찍으래?”

“이거 찍어야 해. 여자 둘 남자 둘 나란히 서봐요 어서.”

퉁명스러운 마음이 툭 튀어나오지 않게 입을 오므리며, 어르신께 폰을 건네받아 가로, 세로 사진을 찰캉찰캉 찍어드렸다.

“고마워요, 아가씨. 아까 아저씨라고 해서 미안해, 아가씨.”


'네, 괜찮아요'라는 빈 말도 드리지 못하고 곧장 집으로 향했다. 안 괜찮았다. 왜 이리 심보가 좀스러운지 힘주었던 입이 스르르 댓 발 나왔다. 



 

홍디가 아가씨 시절, 지하철 역사의 화장실에서 중딩 남학생 즈음으로 오해받아 쫓겨난 적은 있다. 힙합패션 커트머리 보이쉬한 점 인정한다. 그래도 아가씨였다구.

“뭐여, 여기 남자 화장실 아니여!”

하며 물기 머금은 대걸레를 밀어주시던 여사님. 이태원에서 줄 서서 샀던 리미티드 나이키 운동화를 지키지 못했다.

쫓겨나려던 홍디 아가씨가 여사님 연배가 되도록 아직도 생생한 장면이다. 입었던 옷가지와 척척한 화장실 바닥, 꾸미는 여인네들로 분주했던 세면대 주변의 분위기.


스무 해 정도 지난 지금도 짧은 머리의 홍디는 이제 아저씨 소리를 듣는구나. 여전히 긴 게 별로 없는 몸뚱이. 키는 대한민국 여성평균 이하에, 머리카락도, 손톱도 짧디 짧다. 이 날은 소갈딱지마저 영 짧았네.


앞동산의 아저씨 그림자 @HONG.D


따스한 봄빛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바라본다.

키다리아저씨네.


머안감(머리 안 감은) 뒤집어쓴 모자 속의 머리가 짧긴 하다. 아침해 덕분에 제법 길어진 기럭지의 그림자를 지르밟으며 얼마전 들었던 노래가 생각났다. <모두 다 꽃이야>.




@HONG.D 그리고 찰칵


#2. 학부모 공개수업, 1학년 교실


“여러분, 우리 모두가 소중해요. 자기 이름 꽃이 나오면 한 송이씩 일어나보아요.”

1학년 건순이 학부모 공개수업에서 국민동요가 울컥하게 울려 퍼졌다. 25명의 반 아이들 한 명, 한 명 일어서며 모두가 꽃으로 피어났다. 송이송이 소중한 아이들은 쑥스러워하면서도 함박웃음이었다. 지켜보는 애미애비들도 모두 다 꽃이지. 할미꽃도 꽃이고.


산에 피어도 꽃이고 들에 피어도 꽃이고
길가에 피어도 꽃이고 모두 다 꽃이야

아무 데나 피어도 생긴 대로 피어도
이름 없이 피어도 모두 다 꽃이야

봄에 피어도 꽃이고 여름에 피어도 꽃이고
몰래 피어도 꽃이고 모두 다 꽃이야

아무 데나 피어도 생긴 대로 피어도
이름 없이 피어도 모두 다 꽃이야

산에 피어도 꽃이고 들에 피어도 꽃이고
길가에 피어도 꽃이고 모두 다 꽃이야


@HONG.D 그리고 찰칵


여기저기 피어난 꽃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봄날이다. 우리 모두가 꽃처럼 소중하다.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지면 뭐 어떤가. 반짝이던 꽃잎도 금세 떨어진다. 또다시 찬란하게 피울 다음 해를 기다리며.





+덧마디

나만 그런가. 목련 꽃잎 떨어질 이 무렵이면 고기 생각이 간절하다. 소고기와 함께 새송이 버섯 구워서 소금장 담뿍 찍어 소주 한 잔. 키야. 앞동산의 아저씨는 고기 생각 뿐이구만.

@HONG.D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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