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도 많을 거다
초1 건순이는 요즘 학교 마치고 같은 반 친구들과 놀이터로 직행하는 시간이 꿀이다. 알록달록한 그녀들의 최대 고민거리는 ‘어느 놀이터를 갈까’ 일뿐. 이 날의 픽은 건순이네 아파트 시계탑놀이터다. 1학년 같은 반에서 새로 만난 친구들. 유딩 시절의 샤랄라 원피스 대신 트레이닝복과 청바지를 늘어뜨린 그녀들의 모습을 보니 한 달여만에 제법 초딩언니다. 건순이, 똑띠, 예삐, 이렇게 초딩언니 셋은 둥그런 그물 그네에 옹기종기 올라타 까르르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놀이터 매니저들. 가방지킴이 애미 셋도 매일 얼굴을 보며 친해져 간다. 너희만 까르르하냐 애미들도 어머머, 오호호한다 해.
"엄마, 엄마!
해맑게 세 언니들이 달려오는데, 가장 앞장선 똑띠 친구가 자기 엄마에게 신나서 외친다.
“엄마! 엄마들 중에 엄마가 제일 막내야!”
“어머머, 그래?”
얼굴이 순식간에 발그레해진 똑띠 어머니는 어쩔 줄 몰라하며 예삐 어머니와 나의 얼굴을 번갈아 본다. 차마 나이를 묻지는 못하고 부끄러워 얼굴을 손으로 가리는 똑띠 어머니. 그때 똑띠의 추가 한 마디.
“그리고 건순이 엄마가 짱이다! 왕이야!”
어허헛. 내 그럴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오픈을 하는구나. 여자 아이들은 참 아들과는 다르긴 한가보다. 건만이는 1학년 때 상상도 못 했을 일이다. 그물 그네에 셋이 뭉쳐 앉아서 “너네 엄마는 몇 살이야?”를 한 모양이지. 똑띠 엄마는 마흔 살, 예삐 엄마는 마흔 몇 살. 건순이 엄마는 마흔 완전 많은 살.
에잇. 그래, 내가 제일 살이 많다. 입학은 딸내미가 했는데, 왜 애미가 고단한 건지. 요즘 머리만 대면 곯아떨어져서 기억을 상실하는 이유가 놀이터 매니저의 일상이 피곤해서인 줄 알았는데, 나이 탓인가 보다.
건만이, 건순이 남매가 교집합으로 학원에 간 오후, 아주 잠시 애미 혼자다. 작년 이맘때 즈음 그렸던 미모사 그림이 떠올라 꺼내보았다. 복슬복슬 알맹이가 탐스럽게 노랗다. 꽃에 대해 잘 모르는 편이라 그릴 때마다 정보를 찾아보는 편인데, 미모사의 꽃말은 의외여서 기억에 남는다.
예민한 마음, 부끄러움.
미모사를 건드리면 순간 확 움츠리듯 움직인다 하여 신경초라고도 불린단다. 외형은 평범한 잎사귀인데 자극에 반응하여 고개를 숙이는 게 신기하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건방지게 아름다웠던 미모사 공주가 소년 아폴론을 보고 난생처음 부끄러움을 느껴 한 포기 풀이 되었단다. 미모사 공주가 풀 속에 남아 있어서 손을 대면 부끄러워 몸을 움츠리는 것이라고 한다.
미소 지으며 미모사를 바라보다가 문득 꽃알맹이가 몇 개쯤 되려나 싶었다. 하나, 둘, 셋, 넷…. 1학년 1학기 수학 교과 마지막 단원이 <50까지의 수>더라만. 알알이 노란 꽃을 몇 번을 세어봐도 참말로 미치게 이마를 탁 칠 노릇이다. 시간이 남아돌거나, 홍디 나이가 궁금하거나, 답답한 기분 못 참으시는 분들 계신가요. 혹시 저처럼 세어보실라는지요호홍.
+덧마디.
다음날은 귀요미 친구도 함께 초딩언니 넷이 놀이터에서 놀았다. 그리고 똑띠 어머니는 막내에서 벗어났다. 무려 90년대생 귀요미 어머니의 등장. 어쩐지 그냥 아름다운 게 아니라, 어리게 예쁜 어머니였다. 안 하던 팩이라도 한 장 있나 뒤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