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디 May 10. 2024

척과 거리두기

카페문을 열고 들어가 보자

척 하기


수요일에 수채화 글을 발행하지 못하였다. 아프고, 바빠서? 핑계를 대자면 몸뚱이는 하나요, 우선순위에서 밀렸다고 말할 수 있겠다.


영혼은 영원할지 몰라도, 일생을 사는 동안 몸뚱이는 그저 빌려 쓰는 거라지. 사십육 년째 빌려 쓰고 있는 육신을 고이 보듬지 못하여 아픔을 느끼고 있다. 항생제를 먹고 아무렇지 않은 척, 건순이 하교 시간에 교문 앞을 지킨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아이들 놀겠죠?"

"이렇게 날씨가 좋은데, 얼마나 신나겠어요."


항상 쌩쌩하게 아름다운 90년대 생 엄마, 오늘따라 정갈한 차림으로 모임에 다녀온  80년대 생 엄마를 만났다. 약기운으로 눈앞이 흐릿한 70년대 생 엄마는 머안감 모자를 눌러썼지만 의도한 척해본다. 나는야 털털한 보이쉬룩을 부러 즐기는 남성복 디자이너. 뭣이 중헌데. 지금이야 우리 모두 놀이터 매니저 아닌가. 언제까지 1시 애데렐라 가방지기를 해야 하는지, 정해진 바는 없지만 이 또한 유한하리니.


아이들은 쭈쭈바를 입에 물고 놀이터를 누빈다. 애미들도 나름 그 시간을 즐긴다. 놀이터 옆에 커피맛 괜찮은 무인 카페가 있는데,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요즘 1800원에 행사하고 있다. 목은 타들어가고 자성에 이끌려 카페문을 열고 들어간다. 톡 내려온 플라스틱 맑은 컵에 얼음을 가득 채우는 요령을 터득하며 까르르 웃기도 한다.

아프지 않은 척, 여유로운 척, 있는 척, 없는 척해가며.


@HONG.D 그리고 찰칵


척과 거리두기

알게 모르게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척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척하기와 거리를 두고 자유로워지면 어떨까.


카페문을 열고 들어가 보자. 뇌라는 컵에 얼음알 같은 걱정거리를 꾸역꾸역 채울 필요가 있는가. 따스한 햇살에 여유공간을 찾아 스르르 녹여볼까. 커피머신에서 내려오는 뜨끈한 샷이 애써 채운 얼음을 사뿐히 가라앉히듯.





척척 하기


며칠 전, 건만이 알림장에 '단원평가지 부모님 확인받아오기'가 있었다. 쓰읍, 후우 심호흡을 하고서 건만이와 함께 오답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어본다.

"건만이 벌써 2단원평가했구나!"

"엄마, 이건 문제가 있는 줄 몰랐고, 이건 계산 실수이고..."

"그랬구나. 함께 살펴볼까?"

"틀린 것을 고쳐보니 이제는 알것 같아."

너의 마음 다는 몰라도 다 아는 척 하지. 나는 너의 애미잖니.


아무렇지 않은 척 @HONG.D


부모확인 사인만 할 수 없어 한 줄 마음을 끼적여 보낸다.

평가를 통해서 부족한 부분을 발견하고 알아가는 것이 건만이에게 기쁨이기를 바란다.
오늘도, 내일도, 쭈욱... 너를 사랑하는 엄마가

애미생활은 오늘도, 내일도 쭈욱 한결 같으려나.

척하기를 척척하는 나를 발견한다. 이런. 척과 거리 두기는 무슨.





@HONG.D 그리고 찰칵



+그림 덧마디.

꽤 오래 걸렸다. 일상에서 틈을 내어 그려낸 그림. 오늘 사인을 하고 드디어 마무리했다.

벽에 난 노란 문을 보며 그대는 무슨 생각이 드는가.


See for yourself


단원평가지에 척하며 사인하는 애미 마음과는 다름이 틀림없다. 붓을 들면 홍디예요호홍.




이전 06화 멍때리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