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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자니아 I
킬리만자로 오르기

데이지 세계일주 버킷리스트 ②⑧ : 탄자니아 킬리만자로 오르기

by 여행가 데이지 Mar 02. 2025


케냐에서 탄자니아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라스트 크리스마스' 노래가 울려 퍼진다.


2주 뒤면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뜨거운 햇살 아래,

여름 속을 달리는 버스 안에서 

라스트 크리스마스를 듣는 건 꽤나 새로운 느낌이다. 


아프리카 로컬 버스 안아프리카 로컬 버스 안

레게풍 머리와 민머리,

입술이 도톰한 동아프리카 사람으로 가득한 버스 안은

내가 아프리카에 왔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내가 지금 동아프리카에 있다니!'


믿기지 않은 사실을

버스에 앉은 이들을  힐끔 쳐다보며

자신에게 꾸준히 상기한다. 


신기하면서도 

새롭고도 아름다운 이 순간들이 

감사하고 좋다. 


따뜻하다 못해 이내 뜨거워지는 케냐의 햇살과 

저 멀리 뭉실뭉실 떠있는 구름들, 

조금 낙후된 버스는 진정한 로컬을 알려준다. 


탄자니아에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산, 

5,895m의 킬리만자로가 있다.


나에게 글자 형태로만 존재했던 킬리만자로.

어디선가 듣기만 했던 그 단어의 형상을 확인하러 간다.


데이지 세계일주 버킷리스트 ②⑧ : 탄자니아 킬리만자로 오르기


브런치 글 이미지 2

탄자니아에 도착하니 

한국 커뮤니티를 통해 연락한 킬리만자로 여행사에서 포터를 보내 마중 나왔다. 


창문 너머로 나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하는 이들이 보인다. 


"저 사람들이 여행사 사람인 줄 알았어요."


"거짓말로 관광객을 부르는 사람이 많아요.

이제 저를 만났으니 안심해도 돼요."


나를 위해 깜찍하게 종이를 준비한 포터는

여행사 소개를 마친 뒤, 나를 데려다주었다. 


여행사와 산행 관련 이야기를 마친 뒤,

모기장이 쳐진 호텔 침대로 들어갔다. 


'내일이면, 킬리만자로 산행을 시작하는구나!'


아침에 먹는 삶은 계란으로 인해

배가 조금 부글 거리지만,

떨림과 설렘이 공존한 채로,

나는 모기소리와 함께 꿈 속으로 빠졌다. 



#1. 산행 첫날

2024.12.08



아침에 정말 푹 잘 잤다. 

여행사에서 제공한 버펄로 호텔. 

모기장도 잘 쳐져있어 모기로부터 고통 없이 푹 잤다. 


어제 하루종일 배탈로 고생했지만,

오늘은 킬리만자로 첫 산행 날이기에

조금이라도 배를 채우고자 호텔 조식을 먹으러 내려갔다. 


탄자니아 버팔로 호텔 탄자니아 버팔로 호텔 

바나나와 오렌지 그리고 핫케이크 하나가 준비된 호텔 조식은 귀여웠다. 

어김없이 식당에 울려 퍼지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으며

킬리만자로의 아침을 마쳤다. 


사무실로 가니,

함께 이동할 가이드 존과 만났다. 

장비를 빌리고자 대여점으로 가는 길.

툭툭의 열린 창문 너머로 저 멀리 킬리만자로가 보인다. 


"헉! 저기에 내가 간다니!

곧 보자!"


잔뜩 들뜬 채로 

킬리만자로에게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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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산행을 시작하며


존은 원래 포터로 일을 시작했다.

6년 정도 일을 하던 중 그는 가이드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서 4년 동안 관광을 공부한 뒤

본격적으로 가이드를 시작한 지는 2년이 되었다. 

이미 50번 정도를 정상에 오른 경험이 있는 존은 말했다. 


"나는 킬리만자로를 오르는 게 참 좋아."


산행을 위해 술도 끊은 존.

우린 산행을 준비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데이지, 네가 웃는 방식이 좋다."

(I like the way you smile)


존은 나의 미소를 좋아해 주었다. 

그의 칭찬을 들으니,

킬리만자로를 향한 들뜬 마음은 가늠할 수 없이 커졌다. 



5,000m 이상부터는 만년설이 있는 킬리만자로는

각 고도마다 다른 기후대를 가지고 있다. 

얇은 옷부터 두꺼운 패딩까지

장비 대여로 만발의 준비를 마친 뒤 사무실로 돌아왔다. 


돌아가는 길,

툭툭 너머로 모시의 거리가 보였다. 

정부가 쓰레기 단속을 하는지

거리에 쓰레기 하나 없는 모시는 

괜히 바라봐도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이었다. 


거리 너머로 탄자니아에 대한 색채를 채워간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눈이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한다. 

케냐 사람들은 장난꾸러기 소년 같았다면

탄자니아 사람들은 조금 성숙한 청소년기의 아이 같다. 



그렇게 사무실로 돌아와 

함께 산행하게 될 가이드, 포터와 인사했다. 

처음에 나를 데리러 왔던 리건과 다른 포터 세 명이 있었다. 


킬리만자로로 향하는 차 안.킬리만자로로 향하는 차 안.



킬리만자로로 향하는 차 안.

청명한 공기로 가득한 하늘은 한없이 푸르다. 


"데이지, 방금 지나간 나무 봤어?

바오밥 나무야. 매우 희귀한 거지.

킬리만자로 산행을 마친 뒤에 돌아와서 사진을 찍자."


차 안은 나이지리아 가수와 탄자니아 래퍼의 노래가 울려 퍼진다. 

힙합 바이브의 흥이 넘치는 노래는

킬리만자로로 향하는 이 순간을 흥분시켰다. 


본격적으로 킬리만자로에 오르기 전,

포터 리건이 말했다. 


"뽈레 뽈레(Pole Pole)"


"그게 무슨 말이야?"



"*뽈레 뽈레는 킬리만자로의 핵심이야."

(Pole Pole is the key of Kili)





*뽈레뽈레는 스와힐리어 표현으로 '천천히'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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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히 첫째날 산행을 마치며



고도에 따라 5개의 기후대를 가진 킬리만자로.

첫날 산행은 해발 0m~1,800m 사이의 열대우림대를 지난다. 

높은 습도와 따뜻한 기온을 배경으로 

열대우림대를 가득 채운 동식물과 인사했다. 


"뽈레뽈레!"를 외치는 존과 함께

무사히 첫 날 산행을 마쳤다. 


가이드, 포터, 요리사가 함께 있는 부엌에서

서로 온기를 나누며 저녁을 먹고 첫 날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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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터, 요리사, 가이드 친구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며


어제 겪었던 배탈이 완전히 낫지 않았는지,

새벽 1시가 되어 잠에서 깼다. 


3시 즈음 다시 깨어 화장실에 가려는데,

폰을 안 챙겨 불빛이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수없이 많은 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녁시간에 하늘을 채운 구름이 걷히고 별들이 움직였구나. 

킬리만자로 하늘을 가득 메운 별들을 보니

요르단 사막에서 봤던 은하수,

네팔 히말라야에서 봤던 수많은 별들, 

그리고 인도네시아에서 봤던 경이로운 별들의 순간이

한 편의 영화처럼 중첩되어 떠올랐다. 


오랫동안 밤하늘을 바라보며 킬리만자로가 준 선물을 음미했다. 

커다란 자취를 만들며 별똥별이 세차게 떨어진다.

별똥별의 흔적을 보며 소원도 빌었다 


'산행 이후,

포터와 가이드에게 팁을 주게 될 때 사람들이 크게 상처받지 않게 해 주세요.


약한 사람에게 약하고 강한 사람에게 강하게 해 주세요.

정당한 일을 한 이에게 정당한 값을 줄 수 있도록  구조를 파악하고 

약한 이가 피해 보지 않게 하는 지혜를 주세요.

무사히 아프리카 여행을 마칠 수 있게 해 주세요.'


한참 별들을 바라보다가 침낭 속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배는 꾸륵거리고

밤하늘을 보느라 찬공기를 1시간 넘게 쐬고

잠을 온전히 자지 않아 머리가 지끈거리지만,

이 순간이 소중하고 감사하다. 


캠프를 가득 채운 나무에서 

밤을 보내고 있는 원숭이 소리를 배경음으로

다시 첫날밤 속으로 빠졌다. 






#2. 산행 둘째 날

2024.12.09



6시 30분에 일어나 아침을 먹었다. 


"데이지, 제발 부탁이야.

여행객 대상 식당에서 아침을 먹어줘."


어제저녁처럼 가이드와 포터 전용 부엌으로 가려는 나에게

존은 간곡히 부탁했다. 


"알겠어. 

그렇지만, 너희가 여행객 식당에 와서 같이 먹는 건 어때?"


결국,

포터 리건이 식당에 와서 

함께 아침을 먹었다. 


막무가내인 나를 보며

당황해하면서도

리건은 웃음지으며 아침을 함께했다.


"둘 째날 산행도 힘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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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날 산행을 시작하며


아침 준비를 마친 뒤 시작한 둘째 산행.

걷다보니 안이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혼자서도 킬리만자로를 오를 수 있겠는데?'


생각보다 쉬운 킬리만자로 등산로는 

마치 동네 뒷산에 온 느낌마저 줬다. 



"존, 나 먼저 갈게!"


"*뽈레 뽈레--"



브런치 글 이미지 14

존은 내게 천천히 가라고 조언했지만

나는 체력이 남는다며 

빠르게 속력을 내며 산에 올랐다. 

갑작스레 높아지는 고도를 무시한 채 말이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갑작스레 배에 가스가 느낌이 들었다. 

살면서 처음 느끼는 복통을 경험하며 나는 처참히 무너졌다. 


"존, 지금 배가 꾸륵꾸륵해.

잠시 쉬었다 가야 할 거 같아."


폭풍처럼 오르던 나는

갑작스레 고통을 호소하며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하게 되었다.

존은 그런 나를 기다리며 말했다. 



"데이지, 뽈레 뽈레"




그의 말이 맞았다. 

나는 '뽈레뽈레' 정신을 무시하고 있었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도 쉽게 오르고

원래 산을 잘 타왔던 사람이라며

누구보다 자만감에 빠져있었다. 


뽈레뽈레 정신을 무시한 나는 지옥의 길이 시작되었다.뽈레뽈레 정신을 무시한 나는 지옥의 길이 시작되었다.


나는 살면서 처음 느끼는 고통에

3초 움직이고 3분을 쉬어야 했다. 

한 발자국이라도 너 움직이려고 해도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실면서 그렇게나 아픈 건 처음인데, 

그렇게나 아픈데, 

산에 올라야 할 수밖에 없는 게 

스스로에게 답답하면서도 아팠다. 


'위경련은 아닐까?

혹은 다른 심각한 병은 아닐까?

이로 인해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는 건가?

미리 예매한 비행기, 앞으로 내 계획은 모두 어떻게 되는 거지?'

'아프리카에 위경련을 치료할 병원이 있나?'


심각해질 정도로 아파오는 복통에

이미 상상은 오만가지 걱정으로 퍼져갔다. 


'그럼, 지금 킬리만자로를 오르지 못하는 거야?'


어떠한 걱정 중에서도 

무엇보다도 킬리만자로 등정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산을 오르며

결코 하산을 생각한 적이 없던 나는

그토록 원하고 바라던 킬리만자로임에도

하산을 고려하는 내 모습이 슬펐다. 

하산을 생각할 수밖에 없도록

복통은 극도록 아프게 나를 조여왔다. 



"존, 나 더 이상 걷지 못할 거 같아.."


결국 존에게 약한 말을 꺼냈다. 

그 말을 하면서도 

약한 말을 꺼냈다는 사실이 속상했다. 


세 발자국 움직이고

털썩 주저앉아 움직이지 못하는 나에게

존은 말했다. 


나의 짐을 대신 들어주던 가이드 존나의 짐을 대신 들어주던 가이드 존

"데이지, 너의 마인드는 

오로지 네가 결정하는 거야."


산에 오를지 말지는 네가 결정하는 거라고.

단지 삶을 즐겨.

킬리만자로는 식은 죽 먹기인걸 

(kili is just piece of cake)"


존은 덧붙여 말한다. 


"데이지, 너는 할 수 있어."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의 복통이 찾아왔고

결국 오래지 않아 나는 땅에 누웠다.

존은 고통 속에서 힘들어하는 내게 

계속해서 말했다. 



"데이지, 너는 할 수 있어.

너의 산행을 네가 결정하게 해."


한 발자국 움직이고,

오랫동안 쉬 고를 반복하면서

마침내 오늘의 산장이 보였다.

저 멀리 산장 지붕이 시야에 잡힌 순간

눈물이 왈칵 흘렀다. 


롯지에서 휴식을 취하며롯지에서 휴식을 취하며

거의 기어가다시피 하며 롯지에 도착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나서도

여전히 몸은 무겁고 배는 무언가로 쥐여 짜지는 느낌이었다. 

요리사 브리즈가 만든 음식은 전혀 먹고 싶지 않았다. 


"데이지. 배가 아파도 우선 먹고 마셔야 해.

먹고 마시는 게 우리가 가진 유일한 약이야."


요리사 브리즈는 말했다. 

그의 말을 이해하면서도 

모든 장기가 쥐어짜지는 느낌으로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존, 내가 킬리만자로를 오를 수 있을까?"


그에게 물어보면서도

이런 질문을 내뱉는 사실이 속상했다.

지금 이 순간 

킬리만자로 산행을 포기하면 

킬리만자로는 내게 커다란 숙제가 될 것이었다.

킬리만자로 숙제해결을 위해 

삶에서 또 탄자니아를 찾아올 기회가 얼마나 될까. 


킬리만자로를 오르기 위해 지불한 금액도 떠올랐다. 

배낭 여행자에게는 다소 부담되는 비용이기에

그 기회가 결코 흔한 게 아니란 걸 알고 있다.

무엇보다도,

킬리만자로를 오르는 건 나의 오랜 꿈이었다. 


킬리만자로를 포기할 수 없는 수없이 많은 이유 앞에서

악착같이 정신력을 붙들면서

내 마음을 통제하려고 시도하지만,

자꾸만 약한 질문이 떠올랐다. 

그 질문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절망감은 더욱 나를 처절하게 만들었다. 



정말로 내가 해낼 수 있을까?



생전 하고 싶은 일에,

그것도 등산을 하는 과정에서 포기란 걸 한 적이 없는 내가 

포기를 생각했다. 

내가 정말 이걸 해낼 수 있을까?

어쩌면, 하산을 해야 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나 자신조차도 확신이 없으며

오르지 못할 거라는 가능성에 나를 두었다는 생각 자체에서

나는 서러움을 참지 못했다. 


언제나 

나 자신에게 할 수 있다고

내 마인드를 바꾸라고 말해왔지만,


그리고, 언제나 

내 마인드를 스스로 다잡아왔는데,

내 마음은 언제나 오를 수 있다고, 내 마인드를 바꾸라고 하지만,

정말, 내 마음 자체를 이겨낼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3. 산행 셋째 날

2024.12.10





이른 아침.

따뜻한 국물을 마시면서 여전히 아픈 배를 다독이는데,

감정에 북받쳐 눈물이 나왔다.

나의 상태를 살피러 온 존은 내게 이유를 물었다. 


"아파서 눈물이 멈추지 않네"


"데이지, 오늘 아침에 울었다면서, 존한테 들었어."


눈물 소식을 알고 있는 요리사 브리즈와 포터 리건에게서

겸연쩍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요리사 브리즈와 포터 리건은 내게 말했다.  


"우리는 너를 위해 있는 거야.

눈물이 나면 혼자서 흘리지 말고 우리에게 말해줘.

우는 이유도 언제든지 편하게 말해줘."


브리즈, 리건의 마음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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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거의 기어가다시피 무사히 셋째날 산행을 마쳤다. 



브런치 글 이미지 21

셋째날 산행을 마치고 난 저녁 7시, 

저녁을 다 먹은 뒤 요리사 브리즈와 가이드 존이 찾아왔다. 

오늘 새벽, 정상에 가기 전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서다. 

경건하게 몸 상태를 진정시키는 나에게 이들은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떨리는 마음과 성공에 대한 불확신으로 걱정을 말하며 덧붙였다.



"존, 브리즈. 

나는 겸손하지 못했어.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지. 

혼자서도 가볍게 킬리만자로에 오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렇지만, 킬리만자로는 나에게 겸손함을 알려줬어. 


정상에 가지 못하더라도 괜찮아. 

지금 이렇게 키부(셋째 날 포인트)에 왔다는 것 자체로 감사해."



"데이지 걱정할 필요 없어. 

킬리만자로를 두려워하지 마. 

너는 할 수 있어."



한계를 규정짓지 말라고, 

한계를 정한 순간부터 한계가 생기는 거라고 어릴 적부터 스스로에게 말해왔지만,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실제로 마음이 그렇게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시나브로 '못할 거야'라는 생각이 나를 잠식해 왔고,

난 그걸 두 눈 뜬 채로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그 사실이 죽도록 슬펐다.


내 마음을 바꾸라는 걸 알면서도

난 죽을 정도로 고통스러웠고,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서 조금씩 불가능이란 사실을 

받아들이는 내 모습이 죽도록 슬펐다.

그렇지만, 그걸 알면서도

죽도록 슬프면서도

막을 방법이 없었으며

난 죽도록 슬퍼할 수밖에 없었다. 


뜨겁게 타오르던 정상 근처의 태양뜨겁게 타오르던 정상 근처의 태양


사실 히말라야 에베레스트를 손쉽게 오른 뒤,

산에 대해 거대한 자만감을 갖고 있었다. 

5일 동안이나 느릿느릿 오르는 킬리만자로이기에 

킬리만자로도 손쉽게 올라갈 거라고 생각했다. 

그건 큰 오만이었다.


언제나 자연 앞에서,

산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는 사실을 킬리만자로는 내게 다시 알려주었다. 


그것이 작은 산이든 큰 산이든, 언제나 겸손한 마음을 가자고. 


존은 언제나 내게 말했다.

뽈레뽈레-

느리게 느리게.


나는 그걸 무시하고 성큼성큼 올랐다.

이 정도면 가능하겠는데?


정상을 앞둔 저녁 밤. 

같은 방을 쓰게 된 수녀는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완전히 자만하면서 오르던 사람은 끝내 정상에 오르지 못했어.

그렇지만, 처음부터 천천히 오르면서 겸손을 갖고 오르던 팀은 

끝내 정상에 다다랐지."



정상 등반을 시작하기 전 새벽정상 등반을 시작하기 전 새벽

그날 밤, 나는 기도했다


몇 시간 뒤에 그토록 바라던 킬리만자로를 향한 도전을 시작할 것이다.

그 속에서 꼭 정상에 도달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렇지만, 언제나 겸손함을 잊지 않고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힘을 달라고 기도했다. 


성공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후회 없이 도전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했다. 


숨 쉬는 것조차도 나 자신의 한계를 이기는 듯한 순간순간의 깊은 밤에서

이 밤이 무사히 지나갈 수 있도록 기도했다. 


꼭 정상에 도착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저, 나 자신이 한계를 규정하지 않게 해 달라고. 

오로지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건 나 자신인데, 

나 자신이 나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게 만들게 해 달라고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응원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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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으로 오르는 순간.

오르는 과정은 죽도록 힘들었다.

그렇지만, 둘째 날 나를 울릴 정도로 정말 죽을 만큼은 아니었다.


둘째 날은 정말, 내가 원하지 않는데 한계를 정한 것처럼,

마치 누군가 나를 기둥에 묶어둔 채 내 한계를 내 눈앞에 가져온 느낌이었다면,

마지막 날에는 내가 스스로 나의 한계를 정할 수 있었다.

아니, 사실 죽도록 힘들었다

그렇지만, 계속 외쳤다,

예진아, 할 수 있어.

예산아, 할 수 있어.

예진아, 할 수 있어.

근야 족도록 스스로한테 외쳤다.


마음먹기에 달린 거야. (set your mind)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나의 한계는 내가 정하는 거야.


브런치 글 이미지 26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천천히

천천히

천천히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그냥 희색의 바닥만 쳐다보면서 아무 생각도 없이 발을 디뎠다


괴롭히는 모든 생각들은 다 닥치고

오로지 할 수 있다고만 되뇌었다.



죽은 시체가 웅얼거리듯이 

다른 질문에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은 채

스스로 할 수 있다고만 되뇌었다. 



새벽 12시. 


"데이지, 거의 다 왔어."


그 말이 진실이든 아니든

거의 다 왔다는 표현은 내게 큰 힘이 되었다.


지금 당장 눈앞에서 

우선 다 왔으니 조금만 더 가보자는 힘을 주었고,

조금씩 조금씩

내 눈앞에 있던 것들만을 바라보게 하는 힘을 주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27


분명 맨 첫째 날에는 

뽈레뽈레를 외치는 가이드 존에게

빠르게 움직이며, 빨리 올라가자고 말하는 내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뽈레뽈레를 말하며 숨을 헐떡이는 내 모습이 서밋을 향해 가고 있었다. 


존, 나 서밋에 갈 수 있을 거 같아,

그렇지만, 우리 천천히 가자. 

뽈레뽈레.


존은 

이제야 내가 뽈레뽈레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는 사실이 기쁜 듯이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좋아 데이지.

뽈레뽈레.





그렇게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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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등반에 성공했다



정상에서 내려오며 첫날에 들었던 생각을 떠올렸다. 

'가이드 없이 혼자서도 오를 수 있겠는데?'

하산길을 걸으며 지난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깨달았다. 



브런치 글 이미지 34

혼자였다면 결코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 밤, 등반할 용기조차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브리즈, 리건, 그리고 존이

나를 위해 요리를 만들어주고

나를 위해 짐을 옮겨주고

나에게 본인 이야기를 나눠주며 

나를 걱정해 주었기에

나는 힘을 얻었고,

오를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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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에서 하산하며


빨리 오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란 걸. 

천천히 오르는 것,

자만하지 말 것.

겸손할 것.


내가 아무리 잘 오르고, 자신감에 차있더라도

언제나 나도 오르지 못하는 존재라는 걸 기억할 것.


킬리만자로는 내게 중요한 인생의 비밀을 알려주었다. 




*해당 편은 유튜브를 통해서도 생생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WYl7UibowA&t=29s






브런치 글 이미지 37

데이지 (신예진)

yejinpath@gmail.com

@the_daisy_path : 인스타그램

https://blog.naver.com/daisy_path : 블로그


[나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어릴 적 꿈인 세계여행 버킷리스트 100가지를 

이루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블로그와 유튜브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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