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자니아 킬리만자로에서 만난 존
레게풍 머리와 민머리,
입술이 도톰한 동아프리카 사람으로 가득한 버스 안은
내가 탄자니아에 왔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내가 지금 동아프리카에 있다니!'
따뜻하다 못해 이내 뜨거워지는 케냐의 햇살과
저 멀리 뭉실뭉실 떠있는 구름들,
조금 낙후된 버스는 진정한 로컬을 알려준다.
버스에 앉은 이들을 힐끔 쳐다보며
믿기지 않은 사실을
자신에게 꾸준히 상기한다.
'내가 아프리카에 있다니!'
신기하면서도
새롭고도 아름다운 이 순간들이
감사하고 좋다.
탄자니아에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산,
5,895m의 킬리만자로가 있다.
나는 탄자니아 모시에 도착하자마자
킬리만자로 등반을 시작한다.
나에게 글자 형태로만 존재했던 킬리만자로.
킬리만자로를 오르기 위해 가이드 존과 만난다.
존은 원래 포터로 일을 시작했다.
6년 정도 일을 하던 중 그는 가이드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서 4년 동안 관광을 공부한 뒤
본격적으로 가이드를 시작한 지는 2년이 되었다.
이미 50번 정도를 정상에 오른 경험이 있는 존은 말한다.
"나는 킬리만자로를 오르는 게 참 좋아."
킬리만자로를 앞둔 기대와 설렘으로
우린 산행을 준비하며 이야기 나눈다.
"데이지, 네가 웃는 방식이 좋다."
(I like the way you smile)
존은 나의 미소를 칭찬한다.
그의 말을 들으며
가늠할 수없이 커진 마음으로
본격적인 킬리만자로 산행을 시작한다.
청명한 공기로 가득한 하늘은 한없이 푸르다.
고도에 따라 5개의 기후대를 가진 킬리만자로.
첫날 산행은 해발 0m~1,800m 사이의 열대우림대를 지난다.
높은 습도와 따뜻한 기온을 배경으로
열대우림대를 가득 채운 동식물과 인사한다.
그러다 문득 안이한 생각을 시작한다.
'혼자서도 킬리만자로를 오를 수 있겠는데?'
생각보다 쉬운 킬리만자로 등산로에
마치 동네 뒷산에 온 느낌마저 받는다.
"존, 나 먼저 갈게!"
"*뽈레 뽈레--"
존은 내게 천천히 가라고 조언했지만,
나는 체력이 남는다며
빠르게 속력을 내며 산에 오른다.
갑작스레 높아지는 고도를 무시한 채 말이다.
*뽈레뽈레는 스와힐리어 표현으로 '천천히'라는 뜻이다.
얼마 가지 않아 갑작스레 배에 가스가 찬 느낌이 든다.
고통은 조금씩 강해진다.
살면서 처음 느끼는 복통을 경험하며 나는 처참히 무너졌다.
"존, 지금 배가 꾸륵꾸륵해.
잠시 쉬었다 가야 할 거 같아."
폭풍처럼 오르던 나는
갑작스레 고통을 호소하며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한다.
존은 그런 나를 기다리며 말한다.
"데이지, 뽈레 뽈레(천천히)"
그의 말이 맞다.
나는 '뽈레뽈레' 정신을 무시했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도 쉽게 오르고
원래 산을 잘 타왔던 사람이라며
누구보다 자만감에 빠져있었다.
나는 살면서 처음 느끼는 고통에
3초 움직이고 3분을 쉰다.
한 발자국이라도 더 움직이려고 해도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실면서 그렇게나 아픈 건 처음인데,
그렇게나 아픈데,
산에 올라야 할 수밖에 없는 게
스스로에게 답답하면서도 아프다.
'위경련은 아닐까?
혹은 다른 심각한 병은 아닐까?
이로 인해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는 건가?
미리 예매한 비행기, 앞으로 내 계획은 모두 어떻게 되는 거지?'
'아프리카에 위경련을 치료할 병원이 있나?'
심각해질 정도로 아파지는 복통에
이미 상상은 오만가지 걱정으로 퍼져간다.
'그럼, 지금 킬리만자로를 오르지 못하는 거야?'
어떠한 걱정 중에서도
무엇보다도 킬리만자로 등정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힌다.
산을 오르며 결코 하산을 생각한 적이 없던 나는
그토록 원하고 바라던 킬리만자로임에도
하산을 고려하는 내 모습에 슬픔을 느낀다.
하산을 생각할 수밖에 없도록
복통은 극도로 아프게 나를 조여 온다.
"존, 나 더 이상 걷지 못할 거 같아.."
결국 존에게 약한 말을 꺼낸다.
말을 하면서도
약한 말을 꺼냈다는 사실에 속상함을 느낀다.
세 발자국 움직이고
털썩 주저앉아 움직이지 못하는 나에게
존은 말한다.
"데이지, 너의 마인드는
오로지 네가 결정하는 거야."
산에 오를지 말지는 네가 결정하는 거라고.
단지 삶을 즐겨.
킬리만자로는 식은 죽 먹기인걸
(kili is just piece of cake)"
존은 덧붙여 말한다.
"데이지, 너는 할 수 있어."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의 복통이 찾아왔고
결국 오래지 않아 나는 땅에 눕는다.
"존, 나 아무래도 도저히 걷지 못하겠어."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아무리 발걸음을 옮기고자 다짐해도
1분 걸은 뒤 10분 동안 휴식이 필요하다.
나는 힘없이 땅에 엎어진 채
고통에 신음을 토한다.
"존, 너무 힘들어.
그냥 아무것도 하지 못하겠어."
존은 내 가방을 들고
함께 내 손을 잡아준다.
존은 고통 속에서 힘들어하는 내게 계속해서 말한다.
"데이지, 너는 할 수 있어.
너의 산행을 네가 결정하게 해."
'내가 정말 해낼 수 있을까?'
불확실함 속에서
나는 존이 준 용기로 계속 외친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족도록 스스로한테 외친다.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린 거야. (set your mind)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나의 한계는 내가 정하는 거야.'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천천히
천천히
천천히
어느새 눈으로 덮인 산을 오르며
오로지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발을 디딘다.
괴롭히는 모든 생각들은 다 없애고
오로지 할 수 있다고만 되뇐다.
죽은 시체가 웅얼거리듯이
다른 질문에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은 채
스스로 할 수 있다고만 되뇐다.
그렇게 나는,
"데이지, 정말 대단해.
나는 네가 해낼 줄 알았어."
격려하는 존에게 나는 말한다.
"고마워 존,
너의 말처럼
나는 단지 킬리만자로 piece of cake를 끝낸 거뿐이야."
무사히 정상은 산행한 후,
내려오는 길은 한껏 편해진 마음으로
존은 나에게 말한다.
"데이지,
만약 네가 킬리만자로 등반 관련 직업을 원한다면,
이걸 기억해.
결코 이 일이 쉽지만은 않아.
함께 오르는 여행객 생명과 관련된 책임감도 있어.
등산객들은 우리에게 돈을 냈고,
그들은 킬리만자로를 오르고 싶어 하지.
우리의 역할은 그들의 안전을 보호하고 행복하게 해주는 거야.
행복하기 해주기 위해
킬리만자로 정상에 오르도록 도와주는 거지"
킬리만자로를 찾는 이들이 행복하기 위해서.
가이드와 포터가 아프리카 최고봉을 오르는 이유이다.
정상에 오르도록 도와주고자
이들은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
"존,
네가 나에게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조언해 준 게 큰 힘이 됐어."
모든 것은 생각한 대로 이루어진다.
내가 생각한 대로 나의 삶이 결정된다.
내가 생각한 대로 행동이 결정되고
나의 행동으로 삶이 결정된다.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킬리만자로는 내 생각을 잠식했다.
고통에 잠식된 순간에서 강인하게 나를 통제하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을까'란 의문을 이겨내고
꿋꿋하게 한 발자국씩 딛는 순간.
그 순간을 이겨내도록 도와준 것은 존이었다.
"데이지,
네가 할 수 있을지 아닐지는 너 스스로가 결정하는 거야.
네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너는 할 수 있는 거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할 수 없는 거야."
나는 그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다.
내 삶의 이유는 타인이야.
나는 다른 이들을 행복하게 하고 싶어.
구체적으로 나는 고객들을 위해 살지.
나는 가이드니까.
나는 그들을 행복하게 하는 게 삶의 이유야.
밝았던 하산길은 어느덧 껌껌해진다.
껌검해진 밤을 배경으로 내려오는 산장을 배경으로
우린 오랫동안 이야기 나눈다.
"사실 과거 나는 흥청망청 놀기에만 바빴지.
술만 마시는 내 모습에 아내는 이혼을 했고,
어느 순간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
존은 그 뒤로 술을 끊었다.
킬리만자로 산행은 물론,
본인의 주체적 삶을 위한 결정이었다.
킬리만자로를 오르는 일은 그에게 건강한 삶을 알려줬다.
"네가 연락한 마타타 투어사와 같이
나만의 여행사를 열고 싶어."
나는 대학에서 배운 얄팍한 지식을 동원해
그에게 여러 조언은 한다.
"존, 네가 여행사를 열고 싶은 이유가 뭔데?"
"우선 돈을 벌기 위해서지"
"이유가 이익이라면,
고객인 여행객을 모으는 게 우선이 되겠지.
그럼 홍보를 해야 할 테고,
홍보를 하기 위해 어떤 방안을 할 건데?"
"음.."
"구체적으로 어떤 여행 제품을 기획하고 있어?"
"킬리만자로 등반이지.
여행사에 소속되지 않고
내가 직접 하는 프로그램 말이야."
"고객을 모았다고 하면,
금액은 어떻게 할 건데?"
한국인 여행객 대상의 커뮤니티를 소개하고,
한국인 고객은 무엇을 고려하는지 등
어렴풋이 사업만 떠올렸던 그에게
필요한 전략과 도움이 되는 방법을 공유한다.
"데이지, 고마워.
어느 누구도 나에게 이런 말을 하지 않았어."
"누가 말하지 않아도
너 스스로 찾아내야 하는 거야.
그리고, 고마워하지 않아도 돼.
나는 너에게
더 많은 조언을 얻었는걸.
이건 그것에 대한 답례야."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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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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