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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라는 허물없이
감정을 표출하는 곳

탄자니아 모시에서 만난 리건

by 여행가 데이지


"탄자니아에 온 걸 환영해."


킬리만자로를 품은 마을,

탄자니아 모시에 도착하니

버스 창가 너머로 호객꾼들이 따라오라 손짓한다.


여행사에서 사람을 보냈다는 말에

손짓을 따라 이동하려는데

자연스레 부푼 곱슬머리의 남성이 종이를 들고 나타난다.


"Daisy for Matatatour"


"안녕하세요!

창문 밖에 있는 사람을 따라갈 뻔했어요"


"거짓말로 관광객을 속이는 사람이 많아요.

이제 저를 만났으니 걱정 말아요."


나를 위해 깜찍하게 종이를 펼친 포터는

본인을 리건이라 소개한다.


훗날 그는 나와 킬리만자로 정상에 오르고

잊지 못할 모시의 추억을 보낸 친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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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 정상을 오른 뒤,

하산하면서 리건과 이야기 나눈다.


우린 산을 오르며 서로 삶을 공유했다.

03년생인 리건은 포터로 일하고 있지만,

새로운 꿈을 생각하고 있다.


"리건!

네 눈앞에 펼쳐진 가능성이 얼마나 많은데!"


"그렇지만, 탄자니아는 가난한 국가인걸.

내게 주어진 선택지도 별로 없어."


"이제는 인터넷으로 어디든 접근할 수도 있잖아.

네가 가진 젊음을 이용해!"


"정말 그렇게 생각해?"



"인터넷을 통해 지원받을 수 있는 통로가 분명히 있을 거야.

나도 1년간 세계여행할 수 있던 이유는 장학금 덕분인걸."


"정말?"


킬리만자로 산행에서

그는 나의 세계여행 이야기를 듣고는

자기는 하지 못할 거라고 이전부터 못 박아둔 터였다.

난 그가 가진 가능성을 무시하지 않는다.


"그럼, 모시로 돌아가면 내가 알고 있는 방법을 알려줄게."


"데이지, 고마워.

네가 시간이 된다면, 모시 마을을 구경시켜 줘도 될까?"



"물론이지! "




IMG_9144.jpg?type=w773 모시에서 휴식을 취하고 리건과 다시 만난다


"안녕"



킬리만자로 산행의 피로를 푼 뒤,

산 위에서 포터와 여행객이 아닌

모시(Moshi)에서 친구와 친구로 다시 만난다.


"안녕"


리건은 수줍게 웃으며 인사한다.

학생 티를 벗지 않은 리건의 모습은

웃을 때 순박함을 더욱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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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에서 이동하며


리건은 오토바이에 나를 태워 집으로 향한다.

집 앞에 있는 풀밭을 지나며 말한다.


"아빠는 내년에 이 정원을 호텔로 운영할 생각이야."



그는 가족사업을 비롯한

개인사라 여겨지는 사소한 부분까지 내게 공유한다.


나는 리건 고모, 할머님, 이웃 친구까지 인사를 나눈다.

마을에 모여있는 리건의 사람들은

나를 보자마자 같은 식구인양 손을 꼭 잡고 인사한다.


이전에 한 번도 본 적 없다는 사실은 개의치 않고

나는 그들에게서 온정과 따뜻함을 느낀다.


리건 집에서





"데이지, 우리 집으로 가자.

엄마가 너를 위해 음식을 만드셨어."




리건의 가족은 나의 방문을 알고 있었는지

진수성찬으로 탄자니아 전통 음식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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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먹어보고 싶었던 탄자니아 전통음식, 바나나 스튜와 함께 / (우) 레건의 어머님과 함께


"데이지 환영해요!"


퉁명스럽게 인사하는 리건 남동생과

수줍게 나를 바라보는 다른 여동생 뒤로

두 팔 벌려 반갑게 나를 맞이하는 어머님까지

리건 가족은 나를 열렬히 환영한다.



"BTS -- Black Pink --!!

k- drama! 이거 알아?"



가족들은 알고 있는 한국 드라마와 가수에 대해서,

내가 탄자니아에서 느낀 감정을 공유하며

우린 서로를 연결한다.


해맑고 활발한 그들의 에너지로부터

충전됨을 느낀다.



리건의 어머님은 내게 묻는다.


"나중에 한국으로 저희를 초대해 줄 수 있나요?"


"당연하죠!!

한국으로 놀러 오면 언제든지 저한테 연락 주세요.

제가 초대할 여건이 된다면, 꼭 초대도 해드릴게요"


"꺄!!!!!"


어머님은 벌떡 일어나 춤을 춘다.

한국에 간다는 상상만으로 몸으로 기쁨을 분출하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놀라면서도

어린아이처럼 기쁨을 보여주는 그 모습이 좋다.



"레건,

어머니에게 이 향수를 선물로 드리고 싶어."


그에게 초대에 대해 감사하며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받은 향수를 선물로 준다.



"사실 저도 선물로 받은 향수인데,

여행하면서 쓸 일이 없어서요.

혹시 어머님께서 쓰시면 좋은 주인을 만날 거 같아요."



"오우 예!!!~~~!!!!"


내 선물을 받자마자 리건 어머님은

어린아이처럼 소리 지르며 춤추고, 방방 뛰기 시작한다.

어리둥절해진 내 표정은 금세 웃음으로 바뀐다.


IMG_9116.jpg?type=w773 레건 가족과 함께 (남동생은 방에 있어 찍지 못했다)


이제껏 그의 활발함과 에너지를 받아왔지만

나이가 만든 격식 없이 본인의 모습을 보이는 모습에 미소를 띤다.


''향수 선물이 좋아

친구 부모님께서 소리를 지르고 방방 뛰는 장면을

한국에서 볼 수 있나?'


어른이라는 허물없이

좋은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고

자신의 행복을 마음껏 보여주는 곳.

어른이 어린이에게 점잖을 필요가 없는 곳.

어른이어도 어린아이처럼 방방 뛰고

노래 부르고 춤출 수 있는 곳.


그래서 더욱 이곳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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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 거리에서



모시 거리는 네팔 포카라를 연상시킨다.

있으면 그저 편안한 느낌이 든다.


모시를 든든히 지키고 있는 킬리만자로 덕분일까.

저 멀리 가끔씩 구름이 자리를 비운 사이 보이는

킬리만자로 봉우리가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모시 거리의 작은 카페와 상점을 소개하는 리건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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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건과 리건친구 티노와 함께


"데이지, 나의 절친 티노야."


리건은 집 근처에 살고 있는 티노를 소개한다.


"오우! 한국인이다! 안녕하쎄yo!"


티노는 천방지축 장난꾸러기처럼 인사한다.

우린 별거 아닌 이야기로 장난을 치고

사소한 몸사위로 웃음을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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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서 파는 옥수수와 동네 구멍가게의 케이크는 우리의 행복을 더해준다.


나는 티노, 리건과 모시를 여행한다.

우린 마테루니 폭포에서 춤을 추고,

늦은 모시 밤거리를 함께 걸으며

지나간 일에 대해

앞으로 일에 대해

서로의 삶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공유한다.


"나는 종종 이곳 나무에 걸터앉아 멍을 때리곤 해.

여기서 주는 평화로움이 참 좋아."


리건은 대화 말미마다 내게 말한다.


"너의 말을 존중해."

(I’m listening to you)


자신의 가족과 친척, 이웃과 친구들을 소개하고

자기 고향 이곳저곳을 보여준 그.

그가 내게 보인 환대와

그가 함께해 준 추억은

모시에서의 시간을 특별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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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건, 마지막으로 일몰을 보고 싶은데

같이 갈 수 있을까?"



"물론이지"



구글을 통해 발견한 일몰 장소.

일몰에 늦지는 않을까

빠르게 이동하는 오토바이에 오른다.

울퉁불퉁한 산길을 지나 아슬아슬하게 터를 잡으니

우람한 킬리만자로 너머로 해가 지고 있다.



"우리가 저 산에 오른 거야."


함께 일몰을 보며

10일 동안 지내며 어느새 정들어 버린 모시를 바라본다.

리건과 함께한 순간을 돌아보며 그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네팔 포카라에서도 그랬고,

탄자니아 모시에서도 같은 감정이 드네.

뭔가 편안하고, 이미 고향같이 정들었어.

아마, 산을 품은 마을이라서 그런가 봐."



그는 자기 고향을 좋아해 주는 나에게

감사 인사를 한다.


"그리고, 하나 더.

이렇게 소중한 친구가 있어서 그런가 봐"



오글거리는 말로 작별 인사를 말하는 내게

그는 부끄러워하며 말한다.



"데이지, 나에게 더 큰 세상을 알려줘서 고마워.

네가 말한 대로 갇혀서 생각하지 않으려고.


내 앞에 주어진 가능성을 확인하고,

내 삶에서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싶어."



함께 다니며

줄곧 그에게 말해온 사실.

행여 그에게 잔소리가 되지는 않을까 고민했지만,

그의 감사 인사를 듣고 안심한다.



"응원할게."


어슴푸레 주황빛이 킬리만자로 뒤로 조금씩 사라진다.

주홍빛의 향연을 바라보며 그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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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이유는
이곳에 태어났고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이지.

그리고, 나에게 영감을 주고
미래에 꿈을 갖게 하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야.


버스에서 수줍게 나를 맞이했던 리건을 떠올린다.

그리고 다시 상상한다.

어느새 자신의 회사를 소유한 채

더 큰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리건의 모습을.


우린 알고 있다.


그 과정이 킬리만자로를 오르듯이 고난의 연속이더라도

우리 모두, 킬리만자로 정상에서 함께 웃음을 지었다는 사실을.





데이지 (신예진)

yejinpath@gmail.com

@tellmeyourdaisy : 인스타그램

https://www.youtube.com/@daisyshin:유튜브

https://blog.naver.com/daisy_path : 블로그


[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 블로그유튜브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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