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공화국 희망봉에서 만난 아틀란스
1488년, 한 탐험가는 아프리카 대륙 남쪽 끝을 향해 항해한다.
항해 도중, 폭풍우로 심한 고생을 겪은 이곳을 '폭풍의 곶'이라 명명한다.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해상 경로가 되는 이곳.
전략적으로 중요하고 탐험가들에게 희망을 줄 거라 여겨진다.
사람들에게 희망의 상징이 되어주고
인도항로를 찾고자 하는 염원을 담아 지은 것, 희망봉
이곳의 중요성과 사람들의 긍정적 소망을 담는다.
대서양과 인도양이 만나는 지점인 희망봉은
아름다운 해안선을 따라 수려한 절벽이 들어선다.
역도선수의 땀과 같이 파도는 절벽에 철썩인다.
희망봉 투어의 관광버스에 올라
유창하게 국립공원의 경관을 소개하는 가이드 설명을 듣는다.
이후 자유시간 동안 철썩이는 파도와 어우러지는 절벽에 감탄한다.
거칠게 부딪히며 거대한 힘을 품은 바다는
푸른색으로 끝없이 자신을 펼친다.
지평선 너머로 닿는 인도양을 상상하는데
한 청년은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한다.
정신없을 정도로 활발한 청년은
사진 찍기를 완수하고 발걸음을 맞추어 질문한다.
"한국에서 왔어?"
"학생이야?"
희망봉이 주는 아름다움에 한층 들떠있는 나도
그의 온도와 맞아
신이 난 채로 이야기 나누기 시작한다.
키르기스스탄에서 왔다는 청년은 본인을 아틀란스라고 소개한다.
우린 투어 내내 함께하며
서로의 추억을 남겨주고
서로의 우주를 공유한다.
아틀라스는 카타르 항공에서 승무원으로 일한다.
어릴 적부터 여행을 좋아하는 그는
승무원 혜택을 이용해 곳곳을 비행하며 지낸다.
그는 키르기스어와 러시아어를 말하며 영상을 찍는다.
유튜브를 통해 혼자 영어를 배우고,
카타르 승무원을 위해 아랍어도 배운 그는
세상을 여행하고, 문화와 언어라는 대서양 위를 비행한다.
"이번에 엄마와 함께 메카(사우디아라비아 도시)에 가기로 했어.
2월에는 베트남에 여행도 갈 거야."
"혼자서 가는 거야?"
"응.
나는 누군가를 같이 가자고 설득하거나,
같이 갈 때까지 기다리고 싶지 않아."
"나도 혼자서 여행하는 게 더 좋아.
혼자서 여행하며 우리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여행의 과정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면서 성장할 수 있지.
우리는 실수할 수 있고, 그 실수로부터 배울 수 있지.
엄청난 행운이 아니겠어?"
우리 대화를 배경으로
짙고 얕은 색으로 펼쳐진 대서양이 펼쳐진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가든 루트 위를 유유히 이동한다.
부드러운 해안선을 따라
푸르른 에메랄드빛의 향연이 펼쳐진다.
창가 너머로 뚫어져라 푸른색의 향연을 바라보면서
아틀라스와 나는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 대화 뒤로 투어 가이드는 마이크를 잡으며 가든 루트의 아름다움을 설명한다.
"아틀라스, 너는 꿈이 뭐야?"
"난 나의 미래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아.
훗날 내 가족을 돌보는데 모든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지금은 그냥 여행을 더 하고 싶어. "
키르기스스탄에서만 머물고 싶지 않은 그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다양한 문화를 갈구한다.
그런 모습이 마치 나의 모습과도 같다.
"나도 한국이 좋지만, 한국에서만 지내고 싶지는 않아.
컴포트 존(Comfort Zone)에서 벗어나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해.
매 순간 환경이 바뀌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지."
새로운 문화와 배경, 공간과 사람이 주는 성장에 중독된 우린
여행이 주는 소중한 가치에 공감한다.
투어의 다음 행선지로 펭귄이 살고 있는 볼더스 비치에 도착한다.
볼더스 비치 자체에 입장료를 내야 하는데,
펭귄에 대한 흥미가 없던 나는 옆에 있는 무료 해안가에 가려고 한다.
아틀라스는 말한다.
"데이지,
너는 지금 여행에 왔잖아.
펭귄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눈앞에 있고.
펭귄을 보는 기회는 흔치 않다는 걸 너도 알고 있잖아."
하고 싶은 일이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고 하는 나지만,
펭귄을 보고 싶은 큰 바람이 없던 나는
괜찮다며 재밌게 보고 오라고 답한다.
장난기 있고 활발한 그의 얼굴은 그새 진지하게 바뀐다.
그는 자신의 카드를 내게 쥐여주며 말한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마.
경험할 수 있다면, 경험해야지."
볼더스 비치에 가지 않으려던 이유는 돈이 아니었지만,
선뜻 내보이는 카드가 그가 말만 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불과 만난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은 나에게
선뜻 내보이는 카드가 이해되지 않으면서 참으로 고맙다.
삶에 있어 기회를 놓치지 말고
경험할 수 있는 것을 무수히 경험하라는 그의 말이 참으로 고맙다.
투어가 끝난 뒤,
우린 함께 케이프타운 워터프런트를 걷는다.
한참을 걸으며 이야기 나누던 중 한 벤치에 앉는다.
약한 파동으로 물결을 만들어내는 강을 바라본다.
이전에 샀던 빵 하나를 꺼내 반으로 나눈다.
그는 내가 건네는 빵을 받아 들면서 말한다.
"나는 이걸 정말 좋아해.
내가 이걸 좋아하는 걸 어떻게 알았어?"
"나도 좋아해.
달달한 걸 좋아하는데,
이건 설탕이 가득하니까"
그는 웃으면서 혀를 날름하는 나에게 말한다.
"아니, 지금 이 순간 말이야.
나는 호화로운 레스토랑이 필요 없어.
네가 나눠준 것처럼 반으로 쪼갠 이 빵 조각 하나로
지나가던 벤치에 앉아서 이야기 나누는 이 순간 말이야."
소중한 순간을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우린 다른 무엇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슈퍼에서 산 조그만 빵 조각 하나로도
풍족한 지금 이 순간을 그저 만끽한다.
그가 건네준 에어팟을 착용하니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재생하며 말한다.
"나는 음악 듣는 걸 참 좋아해.
나에게는 화려한 높은 빌딩도 어떠한 명예도 필요하지 않아.
그냥 좋은 노래, 좋은 장소, 좋은 사람이 중요하지.
내 안의 평화만 있으면 돼."
걷다 보니 케이프타운 항구에 도달한다.
항구에 정박한 배들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을 들이마신다.
한쪽씩 착용한 에어팟 사이로
아틀라스가 선택한 노래가 흘러나온다.
항구 판자의 삐걱거리는 바닥은 무대가 되고,
선선한 바람은 잔잔한 음향이 되고,
조금씩 지는 일몰은 조명이 된다.
한쪽 귀로 스미는 노래에 맞추어
우린 함께 무대 위에서 춤을 춘다.
항구에 누워 눈을 끔벅이는 물개는 귀여운 관객이 된다.
관객을 보며 향긋 미소 지으며
그의 발 스텝을 맞추어 내 발이 스텝을 바꾼다.
그가 지시하는 방향으로 발을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멜로디에 맞추어 우리의 춤은 조화를 이룬다.
그의 손길을 따라 회전을 하고 다시 스텝을 맞춘다.
오로지 물개 관객만이 존재하는 이 무대에서
에어팟 너머로 우리만이 들을 수 있는 노래를 들으며
잔잔히 흐르는 워터프런트의 항구 위에서
우린 잊지 못할 환상적인 순간을 공유한다.
무대의 막이 내릴 즈음,
그에게 삶의 이유는 묻는다.
내 삶의 이유는
어제보다 나은 나를 만들고 싶어서야.
다른 이들이 최고 삶을
살게 도와주고 싶어.
또, 나는 보디빌더가 되고 싶어.
더 나은 몸을 만들 거 싶거든.
같은 투어를 신청하고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에 있다는 우연은
잊지 못할 케이프타운에서의 순간을 만든다.
그저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그저 빵 하나를 나눠 먹는 것만으로도
우린 오로지 이 순간에 흠뻑 빠질 준비를 마친다.
워터프런트의 하늘은 일몰의 보랏빛으로 은은하게 장식한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겪은 위험과 불안은
말끔히 씻긴 오늘 하루를 돌아본다.
아틀라스와의 대화와 시간,
함께 나눈 음악과 춤은
내게 두 가지를 알려준다.
낭만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낭만을 즐기는 법을.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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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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