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만난 바니
산과 이어지는 해안 도로,
아름다운 자연,
맑은 날씨,
가까운 파편의 정교함과
먼 웅장함까지.
축복받은 도시, 케이프타운에 발을 디딘다.
새해 버킷리스트인 민스트럴 카니발을 즐긴 뒤에
지난 10개월간 세계여행으로부터 휴식기를 가진다.
어느 정도 충전이 되었을까.
카우치 서핑을 통해 연락이 닿은 바니를 만나
케이프타운을 여행한다.
짐바브웨 사람인 바니는
만나자마자 가족 같은 느낌을 풍긴다.
친근하고 편안한 분위기.
바니가 내뿜는 분위기에 마음을 놓으며
함께 저녁으로 피자를 먹는다.
남아공에서 느낀 모습 중 하나는
흑인과 백인에게서 드러나는 가시적인 차별이다.
흑인인 바니에게
남아공에서의 삶을 묻는다.
"남아공에서 흑인으로 살아가면서 느낀 차별이 있어?"
"당연히 있지.
남아공 뿐 만이 아닐 거야.
그들은 너에게 웃고 있지만,
이면에는 웃지 않을지 모르지."
바니 말에 친구 대니도 거든다.
"그들이 너를 어떻게 속이는지를 다 볼 수 있어.
한번은 내가 독일인과 스웨덴인과 함께 여행에 갔는데
사람들은 ' 한 명의 흑인과 백인 둘이 왜..?'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들과 여행하는 내내
주변에서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게 다 느껴졌어.
매우 불쾌했어.
그냥 앉아있어도,
주위에서 그 에너지를 느낄 수 있잖아."
친구들과 저녁을 가진 뒤
방으로 돌아가는 길.
케이프타운 밤하늘을 바라본다.
수많은 얇은 별들이
구름 너머 옹기종기 모여있다.
함께 남아공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소중한 순간이 그저 감사할 뿐이다.
하루는 함께 핫베이로 소풍을 간다.
물개를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바다, 핫 베이
기대에 부푼 채 함께 먹을 음식을 사서 바다로 향한다.
그러나
인적 없이 바람이 세차게 부는 바다 만이
우리를 반긴다.
"우리 ... 여기 오는 게 맞을까?"
거센 바닷바람을 맞으며
계획에 대해 의구심을 가진 찰나,
우선 돗자리를 깔고 모래사장에 자리를 잡는다.
얼마 가지 않아
바니 얼굴은 모래로 가득해진다.
바니만이 아니다.
나도 침을 삼켜고, 입을 오므리면
모래가 느껴진다.
물개는커녕
사람 하나 없는 바닷가에
모래바람을 맞으며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꼴이라니.
누군가는 아쉬워하며 화낼 상황이지만,
나는 이 순간이 마냥 웃기다.
"풋"
얼굴 모래를 닦으며
바람과 싸우고 있는 바니를 바라본다.
"바니,
혼자 왔다면 아쉬워하고,
툴툴거리면서 돌아갔겠지만,
너랑 함께 오니까 이 상황이 재밌다."
그를 만난 순간부터 웃음이 계속 나왔지만,
바다에서 물에 젖은 생쥐 꼴로
이도 저도 못하는 우리 모습에 웃음이 연이어 터진다.
바니는 언제나 질문에 진솔하게 대답하고
대화를 이끌어간다.
나를 오로지 함께 시간을 나누는 친구로 받아들여준 바니.
그런 바니를 바라보며 고마움을 느낀다.
모래바람이 성을 치고,
바람이 세서 바다에 들어갈 마음도 싹 사라졌지만
우리는 함께 모래바람을 맞으며
그저 웃기도,
바다를 바라보기도,
머핀을 먹기도 했다.
모래 바람을 피해
푸른 바다를 보며
우린 서로의 우주를 공유한다.
케이프타운에서 경영을 공부한 바니는
아마존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2020년부터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온라인으로 일을 하면 여행하면서 할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그런데 코로나로 세상이 혼란에 빠진 거야."
2년 동안 일해온 직장에서 직위 상승을 위해
구직을 하며 수차례 인터뷰를 보며 정신없이 지낸다.
동시에 여행하며 일하는 삶을 마음속에 갖고 있다.
"2026년에는 멕시코, 캐나다, 미국에서 월드컵이 있는데,
친구와 함께 멕시코 여행을 계획했어."
"바니 너에게는 1년 중
중요한 날이 뭐야?"
"크리스마스 때 할머니 댁에 가서 가족, 친척들과 다 같이 있는 순간을 좋아했어.
지금은 다들 계시지 않지만,
어릴 적 가족들과 함께 했던 추억이 내게 소중하게 남아있지."
버니가 가족을 소중하게 생각하기에
더욱 편안하고 친오빠처럼 느껴지는 걸까.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으로
가족을 이야기하는 버니가 따뜻하게 다가온다.
"가족이 그리우면
해외살이 하는 게 종종 외롭지 않아?"
"사실 혼자 있고 싶을 때도 많아.
혼자 있으면서 보통 외로움을 느끼지 않아."
"맞아. 사실 나도 여행하면서 외로운 적이 없었어.
친구와 여행하고 헤어질 때는
나도 모르게 그들과 보낸 시간에 마음이 공허한 적이 몇 번 있었지만,
그래도 외로운 적은 없었어."
아무도 앉지 않은 모래사장.
매서운 바람을 이용해
오로지 바니와 나만이 핫 베이를 점령한 이 순간.
바다는 아름답게 빛난다.
다음날
바니와 함께 라이언헤드에 오른다.
날씨가 주는 장난일까,
핫 베이에 있을 대와 마찬가지로
무섭도록 바람이 분다.
"풋"
구름이 모든 풍경을 잠식한 순간에 다시 한번 웃음이 터진다.
라이언헤드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하나도 보지 못하지만,
바니와 내가 함께 걸었다는 사실이
걸으며 서로 웃음을 나눴다는 사실에,
우리의 추억 한편이 생겼다는 사실이 참 좋다.
함께 언덕에 걸터앉아 이야기 나눈다.
슈퍼에서 사 온 리치를 먹으면서 바니는 말한다.
"우리 집에 리치 농장이 있었어.
거기에 한 그루의 리치 나무가 있는데,
리치 나무에서 하루 종일을 보내기도 했지."
그는 집안에서의 형제, 가족들과 좋은 다양한 추억을 갖고 있다.
가족 이야기에 행복하게 웃는 그의 미소에
나도 괜히 웃음을 짓는다.
"나도 형제들과 함께 먹을 때
빨리 먹는 습관이 있어.
오빠보다 더 빨리 먹기 위해서지(웃음)"
그는 마을에서의 이야기를 여럿 들려준다.
한편의 연극을 하듯 부모님 흉내를 낸다.
이야기가 고조될수록 점점 연극처럼 몰입되어
한편의 연극배우가 된다.
날씨로 인해
축복받은 케이프타운의 전경 하나 제대로 즐기지 못하지만,
사려 깊고 재밌는 바니를 보니
이 순간이 참 소중하게 느껴진다.
바니의 이야기를 듣던 중에
그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다.
내 삶의 이유는 가족이야.
나는 가족을 위해서 살아.
5명의 형제자매를 갖고,
함께 살아오는 건 언제나 모험이었어.
아무리 작은 것도 가족은 언제나 나를 행복하게 해.
아무리 작은 거라도 가족을 위해서 하루하루 나아가지.
친오빠처럼 친근하고 편안한 바니.
마치 이전부터 알고 있던 친오빠처럼
바니가 편한 이유가 무엇일까.
바니는
다른 이에게 나눌 줄 알고,
나누고 바라지 않을 줄 안다.
나에게 부족한 자세이자,
앞으로 갖고 싶은 자세이다.
그가 살아오며 지닌
삶에 대한 태도를 느꼈기 때문일까.
그가 남을 배려해온 자세,
그가 남을 생각하는 사고,
그가 남을 대해오던 방식
그 모든 게 바니를 둘러싸는 분위기를 만든다.
그 분위기는
축복받은 케이프타운의 풍경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케이프타운에 머무는 내내 축복받은 기분을 가져다준다.
데이지 (신예진)
yejinpat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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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 블로그와 유튜브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