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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 근무하던 공돌이 엔지니어가 서울로 발령

서울에서 근무하고 서울에서 살자.

by 라구나


회사에서 연말이 한 해 중 가장 바 시즌이다.

성과를 관리하는 일을 하다 보니 인사철에 연간 적 정리와 경영층 보고로 정신이 없다.

그래도 어느 정도 마무리 단계에 다다르고 있다.

후딱 해치우고 안한 연 말을 보내고 싶은 생각뿐이다.

점심도 안 먹고 일을 하고 있는데, 전 직장에서 동거동락했던 성이 전 씨인, 전팀장님께 전화가 왔다.

"바빠?"

"아 이제 거의 마무리 단계여서 이번 주까지만 바쁠 것 같아요"

"우리 임원 인사 났어"

"헉, 진짜요? 빨리 났네요?"

"그러게, 올해는 빨리 났네"

"뭐 재미있는 거 없어요?"

"재미난 건 없고, 연 상무님은 집에 가시는 것 같네"

"헉? 연 상무님이요?"

"웅웅, 사업부 시황이 안 좋았어. 실적이 바닥이었잖아"

"시황 안 좋은 게 임원 탓인가요. 사이클 산업이니 어쩔 수 없는 건데..."

"너도 잘 알잖아. 사에서는 책임 질 사람이 필요한 거"

"그렇죠... 책임질 사람이 필요하죠..."

나는 서둘러 말을 이어갔다.

"근데, 재작년에 임원 되신 거 아니에요?"

"웅웅. 맞아. 2년밖에 못하셨네. 그냥 계속 팀장 하시는 게 좋았을 텐데,.."

"2년 하고 가는 경우는 많지는 않잖아요..."

"그렇지, 분위기 보고 주말에나 한 번 연락드려봐. 너랑 각별했잖아"

"아아... 옙 팀장님 고마워요"

"그려 수고하고~"




연 상무님.

상무님은 팀장 시절에 나를 지방에서 서울로 데리고 와주신 은인 같은 분이다.

연 상무님은 지방 국립대를 졸업하고 외국계 회사를 다니시다가 학력에 대한 콤플렉스로 미국 MBA를 졸업하고 내 이전 직장에 경력직으로 입사하셨다.

상무님과는 등산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내 동기 선 대리.

선 대리가 직장 동호회인 '서울 등산 동호회'에서 연 상무님, 당시 연 팀장님을 만나 되었다.

붙임성 좋고 해외대 출신인 선 대리가 마음에 드셨는지 연 상무님은 선 대리를 잘 챙겨주셨다.

등산 동호회에 나오는 사람이 10명이 안 되었는데, 그중 젊은 친구가 선 대리 한 명이었던 것도 유효했다


선 대리와 친하게 지내던 나라서 선 대리가 주말에 할거 없으면 같이 가자는 부탁에,

지방에서 근무하는 내가 '서울 등산 동호회'를 가게 되었고 거기서 연 상무님을 음 뵙게 되었다.

내가 처음 등산 동호회에 가게 된 이유는 '선 대리' 때문이었지 다른 목적은 없었다.

금요일에 서울로 올라와서 선 대리와 같이 노는 일이 많았고,

선 대리 집에서 자는 날도 많아서 그렇게 자연스럽게 같이 '등산 동호회'에 자주 참석하게 되었다.

내가 나중에 서울로 전배가게 되는 것이 결정되었을 때 내 전 부서 팀장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너 서울 가려고 주말에 서울 등산 동호회에 갔다면서?"

나는 아무 대답도 설명도 하지 않았다.

회사라는 곳은 그런 곳이 없다.

소문이 소문을 만들고, 소문의 진실보다 얼마나 자극적이고 재미있는지가 중요했다.

나는 서울을 가기 위해서 주말마다 '등산 동호회'에 참석했던 사람이 되어 있었다.



연 상무님은 유쾌하신 분이었다.

말재주가 좋아서 주위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셨고 술자리에서는 특히나 그 솜씨가 돋보였다.

술자리에서 우리는 사람 이름으로 '삼행시'를 지으면서 서로의 센스를 확인하곤 했다.

연 상무님은 권위적이면서도 자상하셨는데 그 '발란스'가 참 좋은 분이셨다.

패션 감각도 젊고 세련되었고 명품 옷을 즐겨 입으셨다.

나도 그런 특이하고 독특한 매력에 빠져 금방 연 상무님을 따르게 되었다.

그 따른 다는 것이 '브로맨스'에 가까운 '형제애'였다


등산 동호회는 날이 갈수록 회원이 늘어났다.

마치, 다단계 화장품 회사처럼...

내가 '서울 등산 동호회'에 가입하고 주말에는 서울에서 생활하는 친한 동기 몇 명에게도 '서울 등산 동호회' 재밌고 좋다고 데려다.

그러면, 또 그 동기가 다른 동기를 데리고 오면서 '서울 등산 동호회'는 어느새 연 상무님을 두로 하고, 내 동기들이 수하로 있는 '공장 근무자가 대부분인 서울 등산 동호회'가 돼버렸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정말 '서울 등산 동호회'를 서울로 가기 위한 발판으로 가입했던 동기도 있었다.)

그렇게 연 상무님과 1~2 달마다 등산을 같이 한지 세월이 2년을 넘다 보니,

연 팀장님과 금요일이나 주말에도 가끔 등산 외적으로도 보는 일이 많았다. (대부분 술자리였지만)



그러던 어느 날, 연 상무님이 회사 내 핵심 부서 팀장으로 보직 변경이 확정된 날. 연 상무님께 전화가 왔다.

빈 회의실로 들어가서 전화를 받았다.

"팀장님, 게시판으로 인사명령 봤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뭘 또 축하하냐, 회사가 일 하는 건 다 똑같지"

"그래도 핵심부서인데요."

"핵심부서는 무슨... 그래도 '기획'이 중요한 팀이긴 하지"

내심, 핵심 부서의 팀장이 되신 게 좋으신 느낌이었다.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다~네 덕분이다. 고맙다. 근데 너.... 혹시 서울 올 생각 없니?"

"서울이요?"

"웅 서울로 오라고. 우리 팀으로"

"옙? 엔지니어인 제가 서울로요?"

"엔지니어는 기획 못하니? 잔말 말고 올지 말지 정해서 내일 알려줘"

"아아 옙... 팀장님 알겠습니다"


통화가 끝나고 나는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공대생으로 평생 공장에서 공돌이로 근무하다가 정년퇴직하는 인생만 생각했다,

갑자기 서울이라니...

어부가 산에서 고기를 찾고 광부가 논에서 석탄을 찾는 기분이었다.

서울은 진심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집이야 서울에서 가까운 광림시에 사니까 출퇴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공돌이인 내가 공장을 떠나서 서울에서 할 일이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멍하니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선 대리에게 전화가 왔다.

"팀장님께 이야기 들었어요"

"이야기 들으셨어요?"

"예옙"

"형님, 어떻게 해야 하나요?"

"고민할 게 있어요?"

"아니, 공돌이가 서울 가서 할 게 있을까요?"

"그게 중요해요?, 일은 와서 시키는 거 하면 되는 거죠"

"아.. 그래도 커리어가 있는데..."

"커리어가 어딨어요. 지방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서울 오려고 난리예요"

(참고로 선 대리는 나랑 동기인데 5살이나 많다. 말 편하게 하라고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아직도 나에게 존대한다.)

"그... 그래요?"

"얼마 전에 진 대리도 서울 왔잖아요. 서울 오려고 인사팀에 샤뱌샤뱌 장난 아니었어요"

"아... 진짜요?"

"옙~너무 좋은 기회라서 고민할 것도 없어요. 빨리 올라와요. 같이 놀면 좋잖아요"

"아... 예옙 생각 좀 해볼게요 형님. 고마워요"

"무슨 생각을 해요, 연 팀장님께 가겠다고 얼른 말씀드려요"

"옙 형님 고마워요"


전화를 끊고 나서도 내 머릿속은 계속 커리어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Specialist'에서 'Generalist'가 된다.

엔지니어가 기획일을 한다.

미래가 잘 그려지지가 않았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미래다.

지방인 이곳에서의 삶은 나쁘지가 않았다.

결혼을 해서 이곳에 내려와 살면 지방이라 집 값도 싸지, 공기 좋고 물 맑지, 그리고 음음... 생각이 잘 나지 않았다.

서울을 생각해 보면, 음... 집 값 비싸지, 공기는 안 좋지, 그리고, 음음... 나쁜 점 생각하기가 더 어려웠다.


'K'에게 전화를 했다.

"연 팀장님 알지?"

"웅 맨날 같이 등산 간다고 하고 술 마시는 팀장님?"

"아니, 술 안 마신다니까, 암튼 그분이 나 서울로 오라네?"

"갑자기?"

"웅. 전사 기획팀장이 되었다고 같이 일하고 싶으면 오라고 하시네?"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음, 나도 몰라서 너랑 이야기하려고 전화한 거야"

"음... 와서는 무슨 일 하는데?"

"모르겠어, 기획일 한다는데. 기획일이 뭔지 모르겠네"

"오빠가 알아서 해. 오빠 인생이잖아"

"음 알아서 하긴 할 건데, 그래도 네 생각은 어떤데?"

"음... 모르겠는데 서울로 오면 그래도 자주 볼 수 있으니까 좋지 않을까?"

"음... 그렇지?"

"근데 난 진짜 상관없으니까, 오빠가 알아서 해"

"그려 알았어. 끊어"


'서울'

공대생이 된 순간부터 서울에 있는 '엔지니어링'이나 '건설' 회사에 가지 않으면 서울 근무할 일은 없다고 생각고 살았다.

애초에 단념하고 살았고 꼭 서울에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었기에 '서울'에 대한 욕심은 없었다.

가끔, 같은 부서 과장님이 이런 이야기는 하셨.


지방에서는 진짜 못 살겠어.
아기가 아파서 병원 갔는데도 계속 안 좋은 거야.
그래서, 서울 대학병원 갔더니 왜 이제야 왔냐고...
좀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아휴...


당시에는 아직 결혼도 안 했고, 아이가 없으니 감정이입이 불가하여 크게 귀 담아 듣지 않았었다.

지금에서야 아이를 낳고 서울을 사니 그때 그 말이 나에게 소중한 경험담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민이 깊어졌다.

하루 만에 결정할 수 없었다.

퇴근하고 집에 오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씻지도 않고 기숙사 침대에 누웠다.

나는 고민의 무게에 짓눌렸는지 바로 잠이 들어버렸다.

중대한 결정을 위해 굴 속에 들어가 겨울잠을 자는 것 같았다.

실제로는 그저 잠만 잤지만.


운명의 장난일까?

하늘이 나를 도왔던 것일까?

서울행을 결정 지어준 사건이 바로 그다음 날 회사에서 발생했다.


내 사수, '주 차장'

다른 팀에 있다가 얼마 전에 전배를 와서 내 사수었다.

나랑 사이가 썩 좋지는 않았다

전형적인 '꼰대'스타일이다

점심시간에 밥 먹고 있는데 갑자기 주 차장에게 전화가 왔다.

"김대리, 너 어디야?" 목소리에서 화가 느껴진다.

"저 지금 밥 먹고 있는데요"

"당장 자료실로 뛰어와라"

"뭔 일 있나요? 저 지금 밥 먹고 있는데"

"야 너 장난해? 뛰어 오라면 뛰어 와"

여기가 철원이었나? 나 아직 군인이었나?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밥 먹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나를 건드리는 걸 생각하니 개만도 못한 사람 같았다.

아무튼, 뭔 일로 밥 먹고 있는 사람에게 까지 난리를 치는지 내가 궁금할 정도였다.


2층 자료실에 도착하니 주 차장은 선 계장이랑 같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김 대리, 어제 내가 자료실 정리하라고 안 했냐?"

"어제 하라고는 안 하셨고 이번 주까지 정리 좀 하라고 하셨어요"

"아니, 내가 어제 하라고 했잖아"

"어제 가스안전공사 수검이 있어서 그거 대응하느라 하루종일 바빴던 거 차장님도 아시잖아요"

"야 그럼 저녁에 하면 되잖아. 너는 꼭 내가 시킨 것만 안 하더라?"

분위기가 격양되자 옆에서 지켜보단 선계장이 끼어든다.

"아~ 주 차장님 왜 그려. 그만 혀. 우리 김대리 바쁘잖아~"

"김대리, 자료실 정리 오늘까지 다 해놔"


X 같은 놈...

1층 식당으로 돌아오니 차조밥과 미역국이 다 식어버렸다.

마치, 나를 싫어하는 누군가가 일부러 냉동실에 넣어두고 내가 올 때쯤 빼놓은 것처럼 딱딱하고 차갑게 식어버렸다.

밥 맛도 없어져서 다 버리고 흡연실로 가서 담배에 불을 붙다.

'X끼...'

왜 나한테만 X랄을 하는지 모르겠다.

아휴 더러운 새끼. 내가 간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아휴 개 X끼....

욕이 끝도 없이 나온다.

담배 하나를 더 꺼내서 불을 붙인다.


서울로 가자.

소심한 주 차장 밑에서 스트레스받지 말고 서울로 가자.

다 사람 사는 곳인데 뭐가 무서울까?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라는 말도 있지 않나?

이 X 같은 기분일 때 바로 연팀장님께 문자를 보냈다.



팀장님,
어제 밤늦게까지 고민해 봤는데,
제가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한번 서울 가서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패는 던져졌다.

6분 뒤 연 팀장님께서 답장이 왔다.

알겠다.
이제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어디 말하지 말고 조용히 있어라.



전배가 확정되는 데까지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3개월 뒤, 인사명령이 게시판에 공지되었다.



김 XX 대리
XXX공장 -> XX기획팀



생각보다 긴 시간이었다.

공장에 마음이 떠난 이후부터는 하루하루가 지겹고 들었다.

특히 주 차장과의 관계는 날이 갈수록 안 좋아졌다.

마치 나를 떠 밀어 내보내려는 느낌이었고, 내가 서울행이 거의 결정될 때 서울로 간다고 하니 '희미한' 미소를 띠는 것을 난 놓치지 않았다.


경칩을 지나서 나는 기숙사에서 이사를 했다.

철원서 이 도시로 올 때는 평생 이곳에서 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평생을 약속한 것이 민망할 정도로 우리의 인연은 짧았다.

마치, 성대한 결혼식과 신혼생활을 즐기다 한 번의 싸움 후 이혼하는 부부처럼, 나는 그곳을 떠났다.

모든 짐을 챙기고 텅 빈 기숙사 방에게 이야기했다.


고마웠어. 잘 있어, 잘 살아.
고마워...


4년을 함께한 방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 방은 다른 누군가가 어오고 방은 나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을 거다.

나는 너를 기억해도.


운전석을 제외하고는 온 통 짐이 자리를 차지했다.

버릴 것을 버리고 필요 없는 것은 나누고 왔는데도 이 많았다

차에 시동을 걸고 잠시 나와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지?' 지난주 일처럼 생각해 본다.

생각 속에서 길게 이어지거나 강렬하게 인식되는 일들은 없다.

4년이라는 과거를 10초도 회상하기 어려웠다.

그저 흐믈흐믈 바람에 날려 없어지는 담배 연기처럼 부실고 가냘팠다.

생각에 힘이 없다는 것은 빵 부스러기처럼 보잘것없다는 의미이다.

그 빵은 부스러기가 의미 있는 '소보로 빵'도 아니다.

담배 연기를 깊게 내뿜고, 나는 더 이상 이곳에 미련이 없었다.


가자, 서울로


그 후로 두 번 다시 그곳에 갈 일은 없었다.

지금은 안다.

서울로 그 선택이 내 인생을 바꿔준 것을.

직장이 어디인지, 내가 어디 사는지는
부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서울에 와서 배운 가장 큰 깨달음 중 하나였다.





연 상무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언제 연락을 드릴까 고민하던 며칠 사이에 연 상무님께 먼저 카톡으로 연락이 왔다.

"이야기 들었지? 연말쯤 한번 보자"

내가 불편할 것을 알고 먼저 연락을 주시니 감사한 일이었다.

"상무님, 편하신 일정으로 알려주시면 튀어 나가겠습니다."


그렇게 연락한 지 1달 반.

연말이라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있다.

어느새 '방어 시즌'이 도래했다.

봄, 여름, 가을에 어디에 숨어 있다가 날씨가 추워지고 연말 분위기가 나면 '방어'가 불쑥 튀어나온다.

겨울이 오면 횟집에는 '방어 시즌'이 오고 직장에도 '방어 시즌'이 온다.

임원들에게 연말은 더 '방어 시즌'다.

'방어 시즌'에 방어에 성공하면 웃으며 '방어'를 먹을 수 있고, 방어에 실패하면 겁게 웃으며 '방어'를 먹긴 어렵다.

가락시장에서 연 상무님을 뵙기로 했는데 설마 또는 혹시 '방어'를 먹을까 궁금해졌다.


상무님은 우리가 자주 가던 그 식당에 먼저 앉아계셨다.

멀리서 뒷모습을 보니 상무님을 감싸던 '힘'이 많이 약해진 듯했다.

남자에게서 '권력'과 '욕망'이 빠져버린 모습이 이런 것인가?

'하지 않는 퇴직'이 이렇게 사람을 힘없게 만드는 것일까?

나도 결국에는 연 상무님의 '뒷모습'처럼 되는 것일까

무섭고 차가운 남자의 인생이다.

"상무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나도 방금 왔다. 오랜만이다. 이직한 회사는 괜찮고?"

"똑같죠 상무님."

"웅웅 앉아라. 내가 알아서 시켰다."

"아아 옙, 뭐 시키셨어요?"

"어 회 시켰어, '방어'. 방어철이잖아"

"아 옙. 방어철이죠..."

"왜 방어 싫냐?"

"아녀 맨날 와이프한테 '방어'만 하고 살아서 익숙합니다"

"아직도 그러고 사나, 인간아"

"농담입니다. 상무님"

"그래그래 가볍게 한 잔 하자. 내가 사케 한 병 가져왔다"

"아... 전 빈 손으로 왔는데"

"넌 맨날 빈 손으로 오면서 오늘만 그런 척하냐"

"죄송합니다. 상무님"

"됐다. 한잔 받아라"

"옙 상무님"




상무님과 그날 참 술을 많이 마셨다.

그날 마신 술은 '약술'이었다.

내 인생의 지향점을 바꿔준 '약술'


내 몸에 들어온 '방어'가 흩어져서 헤엄쳐 이곳저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 '방어'는 '연 상무님의 이야기'였다.

나는 그 이야기를 평생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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