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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밥을 먹은 6명의 직장인
07화
철원의 눈
그곳에는 외로운 사람들이 모여있다.
by
라구나
Jan 12. 2024
아래로
철원은 눈이 참 많이 왔다.
병사들은 겨울 내내 눈을 치우느라 바빴다.
나는 군인이지만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군인은 아니었다.
'총'이 아닌 '전화기'로 '야외훈련'이 아닌 'PPT'로 나라를 지켰다.
내 주 임무는
연
대본부 사무실(지휘통제실)을 지키는 일이었다
하얗게 눈이 내린 날의 시작은 어김없이 연병장에 눈을 치
우
는 것으로 시작했다.
눈을 치우고 들어온 동만이의 귀와 코가 빨갛게
물
들어 있었다.
"동만아 고생했다."
"화학장교님이 근무 서시느라 고생하셨죠"
"괜찮아, 나는
이제 가서
자면 되니까"
"주말인데 특별한 약속 없으십니까?"
"웅, 뭐 없는데 저녁에 봐서 BOQ(독신자숙소)에 남아있는 간부들이랑 치맥이나 먹을라고"
"엇, 작전병들은 언제 한번 사주십니까?"
"
그
래~날 잡아서 알려줘"
"오 좋습니다. 화학장교님"
"그래, 여기 키 받고, 나 간다"
"옙. 충성!"
동만이는 싹싹하고 귀여운 동생이다.
군대에서 이렇게 싹싹하게 잘하는 친구면 사회에서도 분명 잘 될 친구다.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
는데 잘 어울리는 착한 동생이다
.
BOQ로 가는 길은
아
직 제설 작업 중이었다.
소복이 쌓인 눈 길을 사이로 내 전투화가 깊게 파고 들어간다.
크리스마스가 오기 전 12월인데 올해는
눈
이 제법 자주 온다.
하얀 눈을 하얀 쌀밥보다 자주
본
느낌이다.
제설 작업을 하느라 고생하는 병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난 철원의 눈이 좋다.
높은 건물 하나 없는 철원 땅에서 눈이 하얗게 내리면
온
철원이 하얗다.
내가 볼 수 있는 모든 것들이 하얗고 조용
해
진다.
눈이 내린 철원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고
,
어떤
다
른 것의 무게도 느
낄
수 없다.
하얀 눈의 통제 속에 철원은 차분해진다.
새하얀 배냇저고리를 입은 아이가 눈 속에서 기척도 없이 곤히 잠을 자고 있는 듯하다.
눈이 자주 오는 철원이 좋다.
영내 BOQ(독신자 간부숙소)로 들어가서 전투복을 벗고 따듯한 물로 샤워를 했다.
밤을 새워야 하는 당직근무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내 체질이 아니다. 체질인 사람이 있을까?
샤워호스에서 나오는 따듯한 물이 내 몸을 녹이기 시작한다.
뿌옇게 김이 서리는 화장실처럼 내 몸에도
아
지랑이 김이 난다.
침대에 누우면 바로 잠들 것 같다.
'J'에게 최근 연락이 없다.
한 달 전쯤 말레이시아인가 필리핀인가에 다녀온다고 한 이후로 연락이 없다.
입대 이후로 'J'와 나의 관계는 묘하게 변해갔다.
나는 'J'가 필요했고, 'J'는 '꼭' 내가 필요하지 않
았
다.
내가 'J'를 보는 시점이 '현재'에서 '미래'로 전환된 것이 관계 변화의 시작이었다.
군 생활이긴 했지만 월급을 받으면서 나름 '돈'을 벌었고,
'J'와 고등학교 때부터 만나고 있었기에 나에게는 점점 '책임'이 자리 잡고 있었다.
'돈의 크기' 만큼이나 '시간의 길이'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J'는 두세 달에 한 번 철원 땅을 찾았고, 나는 그런 'J'
에
게 예속되었다.
그런 'J'에게 나는 점점
숨 막히고
거친 감정을 가지게 되었
다
.
거친 감정은 정제 없이 거친 시간으로 'J'에게 쏟아졌고 'J'는 아무 말 없이 비켜내거나 소멸시켰다.
그럴수록 나는 더 'J'를 내 안으로
끌어당기고
쏟아냈다.
12월에는 아직 'J'가 철원 땅을 찾아오지 않았다.
'J'는 눈 오는 철원이 춥다고 했다.
오후 4시쯤 배고픔에 잠에서
깼
다.
평소보다 길고 그리고 깊게 잠을 잤다.
누군가 입에 먹을 것을 넣었더라면 씹어 먹으며 그대로 더 잤을 것이다.
무엇을 먹을까 뒤적이다 PX에서 사 온 라면과 햇반 그리고 소시지를 먹기로 결정했다.
창 밖을 보니 다시 눈이 내리고 있다.
언제부터 다시 눈이 왔을까?
주말 BOQ에는 나뿐인 듯 아무도 없고 조용
했
다.
독신자 숙소에는 총 9명이 살고 있고, 한 개 층인 건물이었
다
.
주방에서 라면을 끓일 물을 올리고 방으로 들어와서 컴퓨터를 켰다.
예능 프로라도 보면서 밥을 먹을 생각이다.
BOQ 입구로 나가보니 아침보다 눈이 더 많이
쌓
이기 시작했다.
마치 무엇인가 올 것처럼 말이다.
라면을 끓이고 햇반과 소시지를 전자레인지에 따듯하게 돌려서
이
른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눈에는 TV 예능 프로그램이 들어오고 입에는 라면이 들어왔다.
조금 후에는 눈에는 그대로 TV 예능 프로그램이 들어오고 입에는 라면 국물에 젖은 쌀밥이 들어왔다.
라면 국물에 젖은 쌀밥이 마치 샤워하고 나온 나를 먹는 기분이다.
금세 배가 불러왔다.
배부름에 끝에는 'J'가 생각났다.
나는 TV 예능 프로그램을 거칠게 닫고 검색창을 화면에 띄웠다.
그리고 'J'의 메일 ID와 비밀번호를 치고
로
그인했다.
접속하자 눈에 보이는 메일 제목이 하나 있었다.
'This is our trip photo'
무엇인가 올 것 같은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
나는 서둘러 그 메일을 눌러 압축 파일을 다운로드하였다.
얼마 전에 'J'가 다녀온 동남아 여행사진이었다.
압축을 풀면서 내 심장은 두근거렸다.
심장의 두근거림이 누군가 팀파니 북채로 내 심장을 때리는 듯했다.
심장에서 팀파니 소리가 났다.
나는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냈다.
압축이 다 풀리기 전에 맥주 캔을 뜯어 마
셨
다.
사진은 'J'가 동남아에 다녀온 사진이
맞았다.
'J'는 혼자가 아니었다.
'J' 옆에는 어떤 외국인 남자가 함께 있었다.
'J'와 외국인 남자는 한국에서부터 같이 출발했다.
그리고 사진에서 'J'는 웃고 있었다.
나는 맥주를 한 캔을 다 마시고 다시 다른 맥주 캔을 냉장고에서 꺼냈다.
맥주 캔을 뜯으면서 다른 사진들을 훑어봤다.
'J'와 외국인 남자는 해수욕장에도 놀러 갔다.
큰 키의 수영복을 입은 'J'는 외국인 남자 어깨 위를 올라타고 있었다.
나는 더 빠르게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J'는 호텔 욕조 속에서 그 외국인 남자와 같이
목
욕을 했다.
맥주는 계속 내 입 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내 몸속으로 들어와 같이 사진을 보고 싶어 했다.
더 빠르게 들어오고 있었고 나는 거부할 수 없었다.
'J'는 외국인 남자와 함께 침대에 누워서 사진도 찍었다.
맥주는 더욱더 빠르게 내 몸속으로 뛰어 들어왔다.
'J'는 환한 조명 아래에 누워 있었고 온몸은 가벼운 소나기를 맞은
듯했다.
냉장고에서 맥주가 스스로 튀어나와 스스로 입구멍을 뜯고 내 몸속으로
들
어왔다.
그런 나를 'J'는 웃으며 지켜보고 있었고 외국인 남자는 그런 'J'를 반죽하고 있었다
'J'는 그 광경을 모두 찍고 있었다.
거울에 비친 외국인 남자가 'J'를 반죽하는 모습과 철원에서 몸 안에 맥주를 넣고 있는 나 모두를.
'J'는 몸을 길게 늘어 뜨리고 있었다. 그 위에 외국인 남자가 어퍼 져 있고, 나는 맥주 캔을 손에 들고 있었다.
반쯤 남은 맥주캔을 오른손으로 들고 더 빠르고 격렬하게 마셨다
결국 나는 모든 것을 토하고 잠이 들었다.
내가 잠든 사이에도 'J'는 위치를 바꿔 외국인 남자 위에 있었다
크리스마스이브에는 난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있었다.
갑자기 하지 않던 운동을 한다고 설치다가 왼쪽 눈을 다쳤다.
군에서는 치료가 어려워 서울에서 수술을 하기로 했다.
어머니, 아버지가 부대 앞까지
찾아오셨다.
우리 집은 차가 없어서 지하철 타고 버스 타고 택시 타고 여기 철원까지 오신 것이다.
그렇게 오신 부모님이 고맙기보다 미련하게 느껴졌다.
위병소에서 두 분을 보자 눈물이 확 쏟아질 것 같
았
다.
중위가 위병소에서 우는 모습을 병사들에게 보일 수 없다는 신념 하나로 참았다.
정말 힘들게 참았다.
서울에 도착해서 검사를 하니 생각보다 급한 상황이라 바로 입원을 하고 다음 날 오후에
수술하기로
결정됐다.
다음 날은 '크리스마스이브'였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멀리 보이는 병원 유리창 밖의 더 먼 곳을 바라보기만 했다.
수술하는 다음 날까지 그렇게 창 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니, 아버지는 번갈아 병상 아래 간이침대에 계셨다.
다음 날, 수술은 문제없이 끝났다.
일어나니 늦은 밤이었고
크리스마스이브였다.
왼쪽 눈은 볼 수 없었지만 오른쪽 눈으로 창 밖을 볼 수 있었다.
서울에는 눈이 오지 않았다.
철원에서는 분명 눈이 내리고 있을 것이다.
철원은 눈이 내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대학교 시절, 'J'가 나에게 '학교에서 만나는 사람 없어?'라고 물어본 일이 생각났다.
그때부터였을까? 아니면 훨씬 전부터였을까?
'J'는 자유를 원했다.
완전한 자유를 원했다. 그리고 '나' 자신도 그러기를 'J'는 원했다.
'J'의 메일이 다시 생각났다.
그 메일은 어쩌면 나에게 보낸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보내는
그들의
여행 사진.
'J'는 나에게 '완전한 자유'가 무엇인지 말하고 있었다.
'J'가 말하는 '완전한 자유'를 받아들일지는 내 선택이었다.
지금 선택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완전한 자유'를 찾는 것은 나에게 겨울에 내려야 하는 눈처럼 그리고 하나의 임무처럼 내 '왼쪽 눈'에 새겨졌다.
아버지가 내 병상 밑, 침상에서 주무시고 계셨다.
한쪽 눈으로 바라보는 창 밖은 어제와 큰 차이는 없었다.
다만, 조금 더 어두 었고 조금 더 차가
웠
다
그리고 생각했다.
올해 크리스마스는 평생 잊지 못하겠는데...
내 인생의 '최저점'이라고 생각했다
.
다행히 그 이후로 그 생각이, 그 사실이
아직까지 변할 일이 없었다.
내 20대 중반은 그렇게 끝이 났다.
부대를 떠난 1주일 뒤, 나는 해가 바뀌어 부대에 복귀했다.
곧 있으면 시작될 '연대전투지휘훈련'으로 부대는 바빴다.
분주함 덕분에 사람들이 가졌던 내 '왼쪽 눈'의 진실은 샤워장에 고인 하수구 물처럼 빠르게 사라졌다.
(당시에 내 동료들은 어쩌다가 내가 저렇게 눈을 다쳤을까? 자신들만의 스토리를 만들어서 이야기를 하는 재미에 빠져있었다.)
훈련 준비로 바쁜 것이 고마웠다.
다른 생각을 할 시간이 없었다.
하던 업무를 마무리하고, 퇴근 전에 당직 근무표를 확인하니 다소 부담되는 당직근무 일정이 있었다.
내가 눈 수술로 1주일 동안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근무를 두 번 빠지게 되었고 그 결과 최악의 근무 일정이 세워졌다.
바로, 훈련 시작 전 날 당직 근무였다.
누군가 내 목을 잡고 이야기하는 듯했다.
'일주일 잘 쉬고 왔지? 어디 한번 고생 좀 해볼까?'
BOQ로 가는 길에 숨이 턱턱 막혀와서 헛기침을 계속했다.
기침과 함께 누런 가래가 나왔다.
하얀 눈 길 위로 누런 가래를 뱉었다.
BOQ에 도착하니 후배 소대장이 철원의 밤하늘을 벗 삼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충성"
"어
머 해?"
"담배 피우고 있었습니다. 이제 퇴근하십니까?"
"웅웅 훈련 준비하느라 바쁘네"
"고생 많으십니다. 눈은 좀 어떠십니까?"
"웅 그냥 그래, 걱정해 줘서 고마워"
"그래도 천만다행입니다. 크게 다치시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웅. 나도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예옙, 화학장교님 근무표 보셨습니까?"
"안 그래도 퇴근하면서 봤는데, 그것 때문에
짜증 나네"
"그러시겠습니다. 안 그래도 훈련하면 잠도 못 자고 힘드실 텐데"
"그러게 말이다"
"그래도 당직근무를 했는데 잠깐 쉬고 오라고 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럴까? 아닐 것 같은데..."
소대장의 담배 연기가 철원 하늘로 날아가지 못하고 흩어진다.
"운용아, 담배 하나만 줄래?"
"잘 못 들었습니다?"
"담배 하나만 달라고"
"화학장교님, 담배 안 피우시지 않습니까?"
"너 피는 게 멋있어 보여서 한번 펴보고 싶어서"
"아 그럼 잠시만요, 여기 있습니다"
"그냥 빨면 되나?"
"제가 불 붙여 드리면 빠시고 뱉으시면 됩니다."
"네가 불 붙이면 빨고 뱉으라고? 누런 가래처럼?"
"가래처럼 뱉는 건 아니고 한숨 쉬듯이 뱉으시면 됩니다"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
소대장이 담배 하나를 건네줘서 입에 물고 있었다.
그리고 불을 붙여주자 나는 자연스럽게 빨고 뱉었다.
"예전에 펴 보셨습니까?"
"그냥..."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담배를 처음
폈
다.
담뱃불이 반딧불처럼 밝았다 흐려졌다를 반복했다.
철원의 하늘에는 별이 참 많았다.
반 달이 하늘을 짙은 남색으로 만들었고 그 위에 하얀 별들이 반짝였다.
나는 그런 반 달과 별들을 보면서 처음 담배를 피웠다.
철원은 그런 곳이었다.
한 없이 사람을 외롭게 만들면서 한 없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누가 울어도 달래주지 않았다.
그저, 눈을 보여주고 눈으로 덮인 산을 보여주고,
달을 보여주고 별을 보여주고 별로 덮인 하늘을 보여줬다.
그 속에서 우리는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재수시절 '외로움', 대학교 시절 '외로움', 철원에서의 '외로움'은 모두 달랐다.
나는 그 '외로움'은 시절을 '혼자서' 오래 보
냈
다.
'외로움'은 끝이 없었다. 그저 그 '외로움'에서 얼마나 익숙해져서 살아가는지만 달랐다.
'외로움'을 겪은 사람과 겪지 않은 사람은 그 차이뿐이다.
"화학장교님, 한 대 더 피시겠습니까?"
"웅 그럴까? 담에 내가 하나 사줄게"
"괜찮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그래, 고맙다"
담배는 바뀌었지만 하늘은 그대로다.
나는 소대장과 함께 BOQ 현관 아래에서 철원 하늘 아래에서 두 번째 담배를 피웠다.
의미가 없지만, 의미가 있는 담배였다
훈련이 시작되었다.
당직 근무를 서면서도 훈련 준비로 쪽잠을 한숨도 못 잤다.
1주일이나 야외에서 진행되는 훈련이라 컨디션이 걱정됐다.
선배들이 배려해서 좀 쉬고 오라고 할 줄 알았는데 알 짤 없었다.
비몽사몽 한 정신으로 상황실에 앉아서 상황판을
업데이트했다.
시간은 더디게 갔고 갈수록 졸음이 쏟아졌다.
점심을 먹고 소대장과 담배를 한대 피웠다.
"화학장교님, 좀 쉬고 오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게, 점심 먹으니까 더 졸리네..."
"오늘 야간
에
연대본부 간부들이 중대 훈련 통제관으로 나간다는 거 들으셨습니까?"
"진짜? 교육장교한테
못 들었는데, 설마 밤샌 사람한테 또 밤을 새우게 할까?"
"그래도 미리 확인해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23시 16분.
나는 12중대 '지뢰설치훈련'에 통제관으로 와있
었
다.
영하 20도.
소대별로 돌아가면서 훈련을 하는데 나는 통제고 뭐고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나는 비닐하우스로 임시 설치된 통제소에서 난로에 전투복이 달만큼 가까이 앉아
있
었다
.
불에 안겨있어도 영하 20도의 추위는 막을 수 없었다.
추위에 전투복에 차라리 불이 붙으면 어떨까 생각했다.
"화학장교 너 괜찮냐?" 12 중대장이 물었다.
"몸이 좀 안 좋습니다."
"훈련이 새벽 4시쯤 끝날 것 같은데 어떻게 하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또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수술한 왼쪽 눈이 아파왔다.
나를 챙겨 줄 사람은 없었다.
영하 20도의 추위와 철원의 눈앞에 간부고 병사고 없었다.
모두 조금이라도 난로 근처로 가기 위해 미묘한 몸싸움을 했고 작은 난로가 이 많은 남자들을 따듯하게 해 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불쌍한 군인들이었다.
눈을 점점 더 많이 내리기 시작했고 시간은 더욱더 천천히 지나갔다.
배고프고 춥고 졸리고 아프고 힘들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캐나다 옐로나이프에 오로라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영하 30도인 날씨를 보고 같이 간 형님들이 이렇게 추운 것은 처음이라 말했다.
나는 말했다.
"강원도 철원보다 춥고 눈이 많이 오는 곳은 없어요."
훈련은 새벽 4시가 좀 못되어서 끝났다.
나는 12중대 간부 차를 얻어 타고 2대대 의무실로 갔다.
의무실 침상에 눕자마자 나는 잠이 들었다.
그렇게 깊은 잠은 그 이후로 자보질 못했다.
거의 죽음과 가까운 '잠'이었다.
오후 6시가 돼서 나는 일어났다.
핸드폰을 보니 나를 찾는 사람은 없었다.
의무실에 있는 세면도구를 챙겨서 샤워를 했다.
거지나 다름없는 내 모습.
서글펐다.
도서관에서 재수하던 시절, 대학교에서 혼자 보내던 시절, 그리고 지금을 통틀어 가장 서글펐다.
'J'는 외국인 남자와 여행을 갔고, 크리스마스이브에 '왼쪽 눈'을 수술했고 영하 20도 눈 오는 철원에서 이틀 밤을 새웠다.
뜨거운 물을 쏟아져 나왔다. 오직 나를 위해서 뜨거운 물이 샤워기에서 쏟아졌다.
그 뜨거운 물속에서 나는 눈물을 삼켰다.
인생이 어디서부터 이렇게 꼬인 것일까?
나는 왜 이렇게 처절하게 외로운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일까?
인생은 저점이라고 생각한 것보다 더 저점이 존재했고, 깨달음 속에는 더 깊은 깨달음이 있었다.
뜨거운 물로 한참을 내 몸을 씻었다.
내 몸에 남아있는 모든 것들을 씻고 싶었다.
씻고 나와서 인사장교 선배에게 문자로 연락했다.
"선배님 저 2대대 의무실에 있는데 지금 복귀해야 할까요?"
"화학장교 어디 아프냐? 아무도 안 찾긴 하는데..."
"당직서고 야간 훈련 통제관 나가서 몸이 별로 안 좋습니다"
"그러면 그냥 쉬어. 내가 뭔 일 있으면 연락 줄게"
"감사합니다"
엄청난 허기가 느껴졌다.
의무실에 굴러다니는 누군가의 컵라면과 내가 가지고 있던 먹을 것들을 입에 쑤셔 넣기 시작했다.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가시지 않았다.
가지고 있던 전투식량을 뜯어서 먹기 시작했다.
전투식량이 고급 한정식처럼 맛있었다. (그 이후로는 그런 적이 없다.)
겨우 배를 채우고 침상에 누웠다.
달빛이 의무대 커튼 사이를 비집고 살포시 들어왔다.
철원의 하늘은 또다시 눈이 내리고 있었다.
밝은 달빛과 하얀 눈빛이 어울려 아름답게 보였다.
배신자와 같은 삶이었다.
어제와 같은 풍경에 하루는 고통을, 하루는 낭만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포만감에 또 깊은 잠에 빠졌다.
깊고 평온한 잠이었다.
6월 전역이 얼마 남지 않
은
3월, 'J'가 부대로 찾아왔다.
'J'는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아니면 내가 많이 달라졌던 것일까?
'J'에게 느낄 수 있던 특별함은 없어지고 평범함만 남았다.
'J'는 전역을 하고 자기와 결혼을 하자고 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
지 않았다.
'J'와 마주 보는 너머의 타원형 거울로 내 왼쪽 눈을 살펴보았다.
나의 대답 없는 긴 침묵에 'J'는 울기 시작했다.
'J'에게 화장실에 간다고 이야기하고 밖으로 나와 담배에 불을 붙였다.
붉게 빛나는 담배에 하얀 눈이 살포시 내려와 앉는다.
철원에서 보는 마지막 눈이 될 것 같은 느낌이다.
내가 다시 철원을 찾지 않는 이상
'J'는 막차를 타고 눈 오는 철원을 빠져나갔다.
'J'가 가고도 마지막 눈은 계속 내렸다.
택시를 타고 부대 앞에 내려 BOQ로 올라갔다.
소복이 쌓인 철원의 눈이 내 다리를 감싸 안았다.
눈이 나를 안아줬다.
철원의 눈에서 온기가 느껴진다.
BOQ 현관에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달, 별, 그리고 눈.
철원의 하늘은 아름다웠다.
연대장님과 함께 전역사진을 찍었다.
철원에서 보낸 2년 3개월의 마침표였다.
나는 삼성 계열사에 합격해서 전역하고 이틀 뒤 신입사원 연수에 가야 했다.
이제 나도 대기업 직장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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