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다니는 친구 차는 벤츠
결핍과 절약 그리고 모티베이션
토요일 아침, 둘째가 일찍 일어나서 안방으로 아장아장 걸어와 나를 깨운다.
"아빠, 아빠 빠빠빠빠"
"리하야, 벌써 일어났어?"
"아빠빠빠빠빠"
"웅 밥 줘?"
"응"
아 맞다. 오늘 저녁에 나가려면 아침부터 내가 육아를 전담해야 한다. 그러고 슬쩍 점심 먹을 때 와이프한테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다. 그게 오늘 밤 송진이를 만날 수 있는 가장 확률이 높은 방법이다.
"오냐오냐, 우리 딸 아빠가 누룽지 해줄게"
그러고 기저귀를 갈고 물을 준다.
"또또"
물을 좀 더 준다. 귀여운 내 딸. 둘째가 제법 말이 늘었다. 이렇게 예쁜 딸들을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을 것 같다. 그래 힘을 내자
결혼하면서 산 독일산 'WMF' 냄비에 물을 중간쯤 받고 냉장고에 있는 누룽지를 4 주먹 넣는다. 4명이니까 4 주먹이면 되겠지? 그리고 누룽지를 끓이는 동안 둘째를 안고 거실 밖을 본다.
거실에서 보이는 산에 단풍이 시들하다. 가을이 왔었나 싶은데 겨울이 오고 있다. 이럴 때 쓰는 말이 있지 않는가? Winter is coming. 별 의미는 없다.
그 사이에 첫 째도 깼다.
"아빠 쉬 마려워요"
"웅 일루 와 변기에서 쉬하자"
둘째를 거실 소파에 올려두고 첫 째를 앉아 유아용 변기에 앉힌다. "쉬쉬" 언제 이렇게 다 컸는지 신기하다. 그러고 둘째와 마찬가지로 미지근한 물을 먹인다. '꿀꺽꿀꺽'.
누룽지가 얼마나 돼 가고 있나 보자. 물에 미동도 없기에 인덕션 파워를 4에서 6으로 조절한다. 6도 약한가? 7로 조정한다. 그 사이 둘째가 내 다리에 와서 안아 달라고 한다. 둘째를 번쩍 들어 올리는데, 아이코 응가 냄새가 난다. 서둘러 거실 화장실에서 응가를 치우고 물로 닦아준다. 가재수건으로 소중한 부분을 잘 닦아주고 로션을 바르고 새 기저귀를 입히려는데 갑자기 도망간다. 왜 아이들은 기저귀를 입히려고 하면 도망갈까?
둘째를 잡으러 가는 길에 누룽지를 체크한다. 파워를 7로 세팅한 보람이 있는지 보글보글 거품을 내며 끓고 있다. 인덕션 파워를 다시 5로 조정하고 둘째 기저귀를 갈아입히러 안방을로 간다.
아이고 맙소사 그 사이에 쉬를 해버렸다. 울고 싶다. 그래도 다행히 침대가 아닌 바닥에 해서 수건으로 바닥을 닦고 물티슈로 마무리를 한다. 아침에 일어난 지 20분도 안된 사이에 벌어진 일들이다. 후~
누룽지를 두 그릇에 비슷하게 담고 정수기 물을 부어 누룽지를 식힌다. 그리고 어린이용 홍시 깍두기와 함께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서둘러 한 명, 한 명 의자에 앉히고 턱받이를 하고 밥 먹는 것을 돕는다. '돕는다'가 맞는 표현인지 모르겠다. 첫 째 한 입 먹이고 둘째 한 입 먹이고 한다. 그러다 둘째가 소리친다..
"리하~리하" 자기가 직접 먹겠다는 소리인가 본다. 반은 먹고 반은 턱받이에 흘린다. 첫째에게도 직접 숟가락을 주고 먹으라고 하니 첫째가 말한다.
"아빠가 먹여줘~"
"네가 먹어~"
"아빠가 먹여줘~"
어쩔 수 없이 내가 먹여준다. '직접 먹게 해야 하는데' 그런 고민은 나중으로 미루기로 한다.
아이들을 다 먹이고 남은 누룽지를 내 위장에 담아 넣는다. 일단 먹을 수 있을 때 먹는 게 좋다. 그리고 아이들은 놀이방에 가서 자기들끼리 역할놀이를 한다. 그제야 뒷정리를 하면서 블루투스 스피커로 클래식을 튼다. 나는 주로 클래식을 듣는다. 그 어려운 제목을 외우고 있는 클래식 하나 없지만 차에서나, 집에서나 그리고 가끔은 예술의 전당에서 클래식을 듣는다. 물론 예술의 전당에서 들었던 건 아이들이 없던 시절이다. 정리가 어느 정도 끝내놓고 스타벅스 커피 캡슐을 커피머신으로 내려 블랙으로 커피를 마시며 클래식을 듣는다. 잠시나마 나에게 안식을 주는 순간이다. 와이프는 아직 잠들어있다. 빨리 최대한 많은 것을 해두어야 한다. 설거지, 빨래, 아이들 산책, 이 정도를 점심 먹기 전까지 하고 점심을 차리고 저녁에 나갔다 오겠다고 하면 성공확률 70%를 예측한다.
"아빠 응가 마려워~"
"웅웅 화장실 가자!"
오후 5시 35분. 이 시간에 나는 3호선을 타고 있다. 송진이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내 작전은 완벽하게 성공했다. 작전이 성공한 것일까 와이프가 불쌍하게 봐준 것일까? 중요한 것은 내가 5시 35분 아니 5시 36분에 지금 3호선을 타고 있다는 것이다. 종로3가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고 1호선 xx역 송진이네 집으로 갈 것이다. 송진이는 보통 자기 동네로 부르면 자기가 밥 값을 낸다. 고마운 녀석. 멋진 친구다.
송진이는 나와 같은 동네에서 태어났다. 송진이는 3월 생, 나는 12월 생이다. 그런데 키는 내가 더 크다.
송진이는 나와 같은 해에 취업을 했다. 그 유명한 삼성XX
송진이는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나고 같이 오랜 세월을 했지만 나랑은 조금 다른 친구다. 송진이는 우리 친구들 사이에서 멋진 친구로 속한다. 시원시원한 성격이다. 멋진 녀석이다. 잘 쏘는 친구다. 이 친구의 인생의 목적은 무엇일까?
우리나라 최고의 대기업을 다니는 만큼 직장인들 중에서는 돈도 제법 잘 번다. 하지만 서울 근처 경기도에서 25평 전세를 살고 있다. 몇 번이나 집을 사라고 이야기했지만 내 말은 별로 잘 듣지 않는다. 오늘 보자고 하는 것도 단순히 술 먹자고 부르는 것은 아닐 텐데 이유가 궁금하다.
종로3가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고 핸드폰을 외투 겉주머니에 쑤셔 넣는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가고 싶다. 아무 생각 없이 흘러간다. '철커덩 철커덩'
송진이가 사는 동네에 도착했다. 집에서 출발하지 1시간 20분 만이다. 확실히 강북에서는 먼 곳이다. 그래도 나를 불러주는 친구가 반갑다.
'나 도착했어 어디로 갈까' 메시지를 보낸다
"엉 여기로 와"금방 답장이 온다.
송진이가 보내준 장소는 '소고기 집'이다. 역시 멋진 놈. 평생 함께 가자.
역에서 5분 거리면 갈 수 있어서 천천히 걸어간다. 밤바람이 어제보다는 덜 차갑다. 차가움을 느끼는 척도에 분명 내 감정이 영향을 받는 듯하다. 외투의 두께보다는 내 감정의 두께가 더 중요하다.
음식점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송진이가 멀리서 보인다. 그리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나와 송진이의 거리는 가까워진다.
"오느라 고생했다"
"멀다 멀어, 서울로 들어와 너무 멀어" 나는 비싼 소고기를 먹기 위해 최대한 엄살을 떤다.
"그래도 여기가 차로 회사 가긴 괜찮아. 그리고 알잖아 곧 지하철도 생기면 여기가 확 뜰 거야"
"너네 집 전센데 확 뜨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야, 일단 먹으면서 이야기하자"
통 큰 송진이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안심을 시켰다. 고맙다 송진아.
"아기 키울만하냐?" 승진이가 나에게 묻는다.
"낳으니까 키워야지 어떻게 하냐"
"그렇게 힘들어?"
"엉 힘들긴 힘들어"
"어떤 게 가장 힘들어?"
"딸들 키우는 그 자체는 별로 안 힘들어, 근데 진짜 힘든 건 내가 하고 싶은걸 내가 하고 싶을 때 못한다는 게 정말 힘들어, 예를 들면 화장실에 가고 싶은데 놀아달라고 못 가게 하거나 화장실에 같이 가서 앞에 서있으면... 화장실까지 침해당하는 느낌? 그런 인생이 정말 힘들다니까"
"그러게. 그러면 진짜 힘들긴 하겠다. 응가는 편하게 해야지. 나는 퇴근하면 게임해도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잖아"
"와이프가 게임하면 뭐라고 안 해?"
"안 해~와이프도 내가 나가서 놀고 오는 것보단 집에서 게임하는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그것도 그렇긴 하지, 일단 한잔 하자"
송진이 소주잔에 소주를 가득 따르고 소주병을 송진이에게 넘긴다. 그리고, 내 잔도 그만큼 가득 차기를 기다린다. '졸졸졸졸졸' 내 소주잔이 빠르게 차 오른다. 송진이와 서로 잔을 맞추고 한 입에 넘겨버린다.
"키야 죽인다~" 역시 육퇴(육아퇴근) 후에 마시는 소주가 끝내준다.
그렇게 근황 토크로 소주잔 3~4번 부딪친 후에 송진이가 나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나도 내년에 애 아빠된다"
"진짜? 애 안 낳는다고 하더니 축하한다!"
"네가 그렇게 말할 줄 알아서 오늘 너 보자고 한 거야"
송진이는 나에게 20대 후반부터 줄기차게 똑같은 이야기를 해왔다. '결혼해도 애는 안 낳는다' 그때는 서로 결혼도 안 한 시절인데 송진이는 애를 안 낳을 거라는 이야기를 자주 했었다. 그러던 친구가 애가 생겼다고 하니 나름 나에게 부끄럽기도 하고 걱정도 되나 보다.
"다시 한번 축하한다 송진아, 한잔 하자" 우리는 한번 더 잔을 부딪친다. 만난 지 20분도 안된 것 같은데 벌써 소주 한 병이 깔끔하게 비워져 있다. 아무래도 안 취하기 어려운 날이 될 것 같다.
"아들이야 딸이야?"
"딸이야"
"이야 성공했네. 딸이 예뻐" 송진이도 정말 기쁘게 웃는다.
"그렇지 맞아 딸이 좋아. 너는 딸딸, 나는 딸이니까 딸딸딸이네?"
"재미 하나도 없다"
"재미없냐? 한잔 하자"
그래도 기쁘게 한잔 한다. 아주 어려서부터 친구인 사이였는데 이제 둘 다 딸아이의 아빠라니. 시간이 빠르다.
"이제 딸도 태어나고 하니까 이사를 갈까 해서"
"어디로?" 부동산 이야기에 급 흥미가 올라간다.
"여기 지금 사는 곳 옆으로 평수를 넓혀서 갈까 해"
"매수? 전세?"
"고민이야"
송진이가 사는 경기도 이곳은 나름 역세권이라서 교통은 괜찮은데 살짝 삭막한 느낌이 드는 도시이다.
"송진아 서울로 들어와. 왜 여기만 고집하냐"
"여기가 회사 가기 편하고 우리 본가랑 처가도 가까워서 살기 좋아"
"그러면, 전세 끼고 서울에 사두고 여기서 월세나 전세 살아"
"하... 뭘 번거롭게 그렇게 까지 해야 하냐?"
"야 그래도 돈을 벌려면 불편을 감수해야지, 그리고 불편할 것도 없지 그냥 조금 번거로운 거지"
"난 모르겠다, 복잡하고 귀찮은 건 질색이라서"
"서울에 전세 끼고 하나 사두고 여기는 월세 살면 되는 건데 그게 머가 귀찮냐. 돈 버는 게 중요하지"
"여기도 지하철 호재도 있고 해서 좋아질 것 같은데, 여기를 매수할까? 난 여기 좋아질 것 같은데?"
"송진아, 분명 그렇게 될 수도 있어. 근데 여기가 너도 알다시피 8차선 도로가 있고 초등학교는 길 건너편으로 가야 하자나. 여기가 나중에 애 키우기가 좋은 환경은 아니야"
"아 그건 나도 아는데, 나도 그때까지는 살 생각은 없어. 그전에 이사 가야지"
"그러면 지금부터 투자와 주거를 분리해서 하면 되는데 왜 안 하는 거야?"
"아 모르겠어, 알아보기도 번거롭고 내가 서울을 잘 아는 것도 아니고"
"내가 알려줄 테니까 그럼 내가 알려준 곳 몇 곳 임장도 가보고 해"
"야 알았다. 잔소리 좀 그만하고 한잔 더 하자"
"그려, 한잔 따라 봐"
소주잔을 부딪치고 입으로 가져간 다음 우리는 차갑게 말라버린 차돌박이를 기름장에 듬뿍 찍어 먹는다.
그리고 송진이 소주잔에 내가 다시 잔을 채우고, 내 잔도 내가 채운다.
"근데, 나 차 샀다"
"차 샀다고?"
"엉. 차 샀어"
"너 BMW 5시리즈 있잖아."
"웅 딸도 태어나고 하니까 큰 걸로 하나 샀어"
"헉, 뭐 샀어?"
"GLE 샀어"
"GLE를 샀어??? 그거 1억 넘지 않아?"
"응 근데 프로모션 기간이라 할인을 많이 받았어"
"야 대단하다 정말"
"딸 태어나면 유모차도 넣어야 하고 차가 좀 커야 하자나"
"그건 맞긴 하는데... 5시리즈도 들어갈 텐데? 그리고 쏘렌토면 충분하지"
"야 나는 국산차는 못 탄다."
"왜?"
"야 나는 좀 쪽팔린다 국산차 타면"
"무슨 국산차가 쪽팔려, 차는 그냥 굴러가는 기계지"
"야 인생 한번 사는데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야지"
나는 가만히 생각을 해보았다. 그래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 내가 여기서 더 말한다고 차가 물러지는 것도 아니고, 송진이가 소고기 사주는데 기분 나쁜 소리는 하지 말자.
"그래 일단 샀으니까 그래도 축하한다"
"역시 넌 너무 멋을 몰라... 에잇 술이나 한잔 하자"
이번엔 짠 하지 않고 각자 술을 마신다. 나는 구운 양파를 한 입 넣고, 송진이는 차돌박이를 한 점 더한다.
"그럼 5시리즈는 팔 거야?"
"아니 그건 와이프가 타고"
멋진 친구다. 외제차를 두 대를 끈다. 나랑은 통부터 다른 친구다. 송진이가 말을 이어간다.
"친구야, 이런 차를 타야지 부자가 되는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부자가 되려면 부자들이 타는 차를 타야 그 마음을 알 수 있는 거야"
어디 이상한 책에서 본 듯한 말을 송진이가 한다. 부자가 되려면 부자들이 타는 '비행기 1등석 타라', '포르셰 타라', '부자동네 살아라' 이런 느낌인 건가?
"그래서 외제차 타보니까 부자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들지~"
"어떻게?"
"웅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
"돈을 어떻게 많이 버는데?"
"그건 소주 한잔 더 하고 생각해 봐야지, 친구야 인생 길다. 길게 보자"
송진이는 말은 참 잘한다. 통도 크고, 아주 남자다운 친구다. 남자다운 게 좋다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서로 '짠'하고 원 샷으로 마신다. 이번에는 나도 차돌박이, 송진이는 갈빗살을 한 점 안주로 먹는다.
송진이와 그렇게 인당 소주 2~3병을 먹고 나는 막차가 끊기기 전에 서둘러 자리에 일어났다. 송진이는 택시비 준다고 맥주 한잔 더 하자고 했지만 와이프한테 연락온 척 모임을 마무리를 하였다. 오랜만에 술도 많이 먹고 옛 친구 만나서 술도 많이 먹고 이야기하고 노니까 즐겁긴 했다. 술을 이렇게 먹으면 다음날 꼭 후회를 하긴 하지만.
지하철을 타고 자리에 앉아서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보며 생각했다. 송진이는 송진이 말대로 GLE를 타니까 부자가 될 수 있을까? 나는 그러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부자가 되기 위한 기본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절약이다.
절약이 중요한 이유는 많이 벌어도 그만큼 쓰게 되면 벌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버는 양과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면 쓰는 것이 따라갈 수 없게 돼서 부자가 된다는 소리도 있다. 하지만, 나와 송진이 같은 직장인에게는 아직 해당 없는 이야기라 생각한다. 아직이다.
절약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해 보자.
종로3가역까지는 아직 좀 더 시간이 있다.
기본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절약은 습관이어서 쉽게 만들기 어렵다. 어려서 습관을 들이지 않으면 갑자기 절약을 하기는 어렵다. 나도 그런 면에서 어렸을 때 집안 영향을 많이 받았다.
우리 아버지는 말단 공무원이셨고 어머니는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이전에는 집에서 이런저런 부업을 하셨고 저학년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밖에서 일을 하셨다. 특히 어머니가 하신 일은 다양하다. 생각나는 것으로 인형 눈깔 끼우기, 학습지 배달, 사회복지사, 화장실 청소 등 정말 많은 일을 하셨고 아직도 하고 계신다. 어머니는 정말 존경스러운 분이다. 넉넉하지 않은 집안에서 자란 덕(?)분인지 나는 절약을 생활화하면서 살고 있다. (야근 후 담배 한 두 개 피고 버리는 것만 제외하면)
돈은 안 쓸 수 있으면 안 쓰는 게 가장 좋다. 내 주머니에서 돈 나가는 것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 GOP 소초병들처럼 말이다.
이게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인가? 좀 더 싸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없나?를 돈 쓰기 전에 고민하고 생각을 해야 한다. 우리 아버지는 집에 사람이 없는데 불이 켜져 있는 것을 가만히 두지 못하신다. 항상 "불을 왜 이렇게 켜두고 있어?" 하시면서 불을 끄고 다니신다. 그렇게 불을 끄는 것이 얼마나 경제적 효과가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절약은 쓸 때 없는 곳에서 새어나가는 것이 없는지 살펴보는 것, 그리고 그게 습관화되어 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절약이라는 습관은 어려서부터 특히 가정교육(그게 꼭 교육이 아니라 가난에 의한 것이었어도)으로부터 체득된다.
절약은 결핍이라는 씨앗에서 나오는 꽃이다.
결핍은 차갑다. 따뜻하거나 포근한 그런 느낌이 아니다. 어딘지 모르게 춥고 쌀쌀하다. 바람이 불지도 눈이 오지도 않는데 차갑고 또 외롭기까지 한다. 그래서 그 결핍이 싫고 무서워 조금이라도 저장을 하게 된다. 마치 겨울이 오는 것을 준비하는 개미처럼 말이다. 베짱이가 놀아도 상관없다. 개미는 겨울이 무섭다. 겨울은 결핍이다. 먹는 것도 아껴먹고 돈도 아껴 쓴다. 조금 따듯하다고 느끼는 계절이 와도 또 언제 추울지 모르는 그 두려움으로 저장하고 아낀다. 그게 결핍이고 절약이다.
"이번 역은 종로 3가, 종로 3가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아차, 절약과 결핍을 생각하다가 갈아타지 못할 뻔했다. 이번에 못 갈아탔으면 종로에서 홍제동까지 걸어갈 뻔했다. 절약과 결핍도 춥고 쌀쌀하지만 이 시간에 걸어가는 것도 춥고 쌀쌀하다. 서둘러 3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빠르게 걸어간다. 이번에도 구파발행 열차다. 대화행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또 하나 같이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다. 그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기에 그렇게 핸드폰을 보고 있는 것일까? 나도 이제야 생각난 듯 카톡을 한번 확인한다. 와이프한테 카톡이 하나 와있다.
'아이스크림 하나 사와'
편의점에 들러서 아이스크림 하나 사가야겠다. 3호선을 타고 금방 내렸다. 밤바람이 차갑다. 편의점에서 다행히 세일하는 아이스크림이 있다. 그런데 또 2+1이다. 하나에 25백 원짜리 아이스크림 2개를 5천 원에 사면 3개를 준다고 한다. 아이스크림 3개를 사가면 좋은 일이 있나 생각해 본다. 좋은 일은 없을 것 같다. 3개를 5천 원에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지만 난 필요한 한 개만 집어서 계산을 한다.
'삑, 2500원입니다" 회사 복지카드로 결제를 하고 아이스크림 하나를 가슴에 품고 편의점을 나온다.
아이스크림 녹을 걱정이 없는 11월 날씨다.
'내일은 독박육아겠지?'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광고판은 주말인 오늘도 어김없이 '레고광고'를 하고 있다.
광고판은 평생 광고를 하는 계약을 맺은 것 같다.
'13층입니다' 조심히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다. 차가운 11월의 바람이 뒤따라 들어오려다 내가 눈치를 채고 서둘러 문을 닫는다.
집에 들어오니 와이프와 두 딸은 자고 있다.
나는 켜져 있는 거실 불과 화장실 불을 끄며 혼잣말을 한다.
'불을 왜 이렇게 켜두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