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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구나 Mar 27. 2024

인생에서 재수를 권장하는 이유

좌절의 맛


저는 재수를 했습니다.


그리고 재수라는 선택이 제 인생을 바꿨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환점이었습니다.

언 40년 인생을 돌아봤을 때 재수를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해 보면 지금보다 좋지 못한 삶을 살고 있을 확률이 다분히 높습니다.


저에게 재수는 인생의 첫 공식적인 '패배'이고 '좌절'이고 '실패'였습니다.

그 결과 처음으로 '친구들과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초중고등학교를 모두 동네 근처에서 다녀서 항상 친구들과 함께였습니다.

중학교를 가도 고등학교를 가도 친한 친구가 많았기 때문에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은 익숙한 친구들과 몰려다니는 것으로 극복하였습니다.

큰 어려움 없이 편하게 중고등학교를 보냈습니다.

그러다 대학의 문턱에서 친구들과 다른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대부분 대학교로 직행하고 일부는 저와 같이 재수를 선택하였습니다.

어려서부터 친구들과 함께 걸어온 똑같은 길에서 처음으로 갈림길에 도착하였고

대학교에 직행한 친구들은 고속도로포장도로를 달리는 것 같았습니다.

반편에, 저는 울퉁불퉁한 산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지요.

제 미래는 '오리무중' 같았습니다.




재수라는 '새로운 환경'은 매우 낯설었습니다.

재수를 할 때 돈 들이지 않고 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재수학원으로 가지 않고 집에서 버스를 타고 20~30분 가야 하는 도서관에서 독학을 선택하였습니다.

무엇보다 학교 수업시간에 맞춰서 생활하던 습관에서 온전히 시간을 스스로 통제해야 했습니다.

참 외롭고 힘든 싸움이었습니다.


재수 시절에는 친구들 모임에 거의 참석하지 않았지만 가끔 스트레스 풀려고 친구들을 만나면 '열등감'만 느끼는 술자리였습니다.

'MT' 'OT' '대학 축제' '학점' '동아리' 등 제가 알지 못하는 대학교 세계의 이야기를 친구들은 저의 눈치를 보면서 했고 저는 관심 없는 척 묵묵하게 이야기를 들으며 어색한 호응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자주 들었습니다.

'나도 저렇게 대학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으로 어떤 미래도 보장받을 수 없는 '재수생의 삶'이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과거에 대한 후회'가 짜장면의 면과 짜장 소스처럼 짬뽕되어서 제 마음속 한가운데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 마음들을 다스리고 힘을 준 것은 '독서' '생각' 그리고 '싸이월드 일기장'이었습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그 책을 마음속 깊숙하게 되씹으면서 깊고 깊은 생각을 홀로 했습니다.

그리고 가끔 '싸이월드 일기장'에 제가 한 고민과 생각들을 글로 썼습니다. 

뒤늦게 온 중2병처럼 상당히 '철학적'인 글과 생각으로 가득했습니다.

'재수'라는 '패배' '좌절' '실패'를 맛보지 않았더라면 얻을 수 없는 시간입니다.


결과론적으로 봤을 때 그 당시 책을 보지 않고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교를 갔어도 지금 다니는 회사 정도 다닐 것 같아서 독서할 시간에 공부를 안 한 것은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재수를 하지 않고 바로 대학교에 갔으면 지금 다니는 직장은 다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책 한자도 보지 않던 제가 갑자기 스스로 성장해서 지금보다 나은 사람이 되지도 않았을 것 같고요...

1년 늦게 가는 길을 선택했지만 그건 1년 늦은 길이 아니라 전혀 다른 새로운 길이었습니다.

친구들에 비해 늦은 길이 아니라 '다른 길'이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지금도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습니다.

재수를 했기 때문에 '다른 길'을 걸을 수 있던 것 아닐까요?

그 후로는 제 인생이라는 주인공은 '책'에 목줄을 걸어서 어디라도 함께 가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책'에서 해답을 찾고 '책'에서 생각을 얻습니다.

재수를 하지 않았더라도 제가 '책'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까요?

'좌절'과 '실패'를 인생 초반에 맛을 보았기 때문에 교훈 삼아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요?


재수 이후로는 '과거에 대한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좀 더 나은 삶을 살려고 계속 노력했고

 그 노력을 통해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까지 동시에 해결을 하였습니다.

'현재'를 통해서 '과거'와 '미래'를 두 토끼를 모두 잡은 것이지요.

생각나는 대로 글을 쓰다 보니 전개가 뒤죽박죽입니다.

조금만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인생 초년에 '실패'와 '좌절'은 더 큰 '성장'을 위한 좋은 자양분임 

2. 재수를 하면서 공부도 하지만 인생을 되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임 

3.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순간은 '현재'가 유일함   

4. 노력하고 노력하고 살아왔던 삶의 축적의 결과가 현재의 '운'으로 돌아온다고 생각함

5. 그 과정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독서' '고독한 생각' 그리고 '글쓰기'

6. 내 인생의 진짜 시작은 '재수'였고 본인이 간절하게 희망하면 시켜주는 것을 추천함


그렇게 재수를 반대하던 아버지께서 그 이후로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식이 원하면 시켜주라고 하시는 것을 어머니 통해서 듣고서 제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사회초년생 때 맛보는 좌절은 분명 더 큰 성장을 가져다준다고 말씀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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