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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선 Oct 18. 2023

나를 사랑 못하면 남도 사랑 못 하는 이유

관계 알고리즘 4: 자기 사랑이 먼저여야만 하는 5가지 이유

관계 알고리즘 1: 불안애착과 회피애착 둘 다 돼보고 느낀 점

관계 알고리즘 2: 아주 흔한 연애 특징

관계 알고리즘 3: 같은 사람이 자꾸 다른 가면을 쓰고 돌아온다.


예전에 자기 사랑을 배울 때, 한동안 굉장히 억울하고 화났던 적이 있다. 타인이 준 상처는, 타인에게 힐링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 왜 난 나 혼자 이렇게 힐링하려고 고군분투하는 거지? 영화에서 보이는 "너의 사랑이 내 모든 상처를 잊게 해"같은 사랑 도대체 어딨어??


나 자신을 더 사랑하는 걸 무의식이 저항하는 느낌.


외로움에 치를 떨며, 불안정한 환경과 자기혐오에 삶의 지속할 가치를 고뇌하던 16살의 내가 생각난다.

이 아이는 사랑이 간절했다. 혼자 웅크려 울 때마다 누군가가 날 부서지게 꽉 껴안아주는 걸 상상했다. 먼 훗날 언젠간 나를 사랑해 줄 누군가가 내 모든 걸 품어주기를.

그러면 비로소 이 아픔에서 구제되겠지?


그래서 상상했던 미래와 다르게 여전히 혼자서, 나만의 힘으로, 나를 사랑해 보려 노력하는 것에 굉장한 씁쓸함과 거부감을 느꼈었다.


하지만 자기 사랑 없이, 받는 사랑만으로 정말 치유가 가능할까?

나를 사랑하지 않는 상태에서, 타인과 사랑을 할 수 있을까?



1.

우선적으로 짚고 넘어갈 것은, 내가 아닌 모습으론 사랑을 받아도 채워지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나를 싫어했다. 사랑스럽지 않은 존재라고 여겼다. 그래서 온갖 연애스킬을 섭렵했고, 밀당을 했고, 외적인 모습에 집착해서 결국 바라온 “사랑”을 받아냈지만 전혀 사랑받는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남자들이 좋아하는 ___”에 현혹되어 한 행동들과 말투 - 나는 타인의 욕구를 투영하고 만들어낸 인형에 불과했다.


진짜 '나'를 향하지 않은 애정은, 받을수록 나 자신과의 괴리감만 폭등시켰고 자괴감만 키워나갔다. 받아도 받아도 공허했다. 나 스스로를 먼저 사랑해야 하는 제일 기본적인 이유는, 자기 사랑 없인 나로 사랑받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를 거부하면서는 절대 진짜 나를 타인에게 보여주지 못하는데 어떻게 타인이 "진짜 나"를 사랑해 줄까? 그들이 진실된 나를 알아볼 기회조차 없도록 날 꽁꽁 숨겼는데.


나를 사랑한다면, 거절당하는 것이 크게 두렵지 않다. 남의 뭐래도 난 나의 사랑스러움을 아니까. 하지만 그 기반이 없다면 거절에 대한 거부반응은 하늘을 치솟는다. 그래서 자연스레 피플플리징을 통해 나를 타인의 입맛에 맞춰 개조해 나간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받아낸 사랑은, 상대방이 진심이던 아니던 과는 무관하게, 내 마음을 충족시켜주지 않는다. 나를 향한 게 아니니까 믿음직스럽지도, 따듯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진심으로 내가 사랑받을 자격을 믿지 못하면, 상대가 아무리 정성을 들이부어도 받지 못한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2.

두 번째 이유는, 절대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타인을 더 사랑할 순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을 대하는 방식으로만 다른 사람을 대할 수 있다.


내가 나의 감정에 깊이 귀 기울이지 않고, 내가 나의 건강을 세심히 챙기지 않는 사람이면, 상대방의 감정을 깊이 공감해 주지도, 그들의 건강을 세심히 챙기는 방법도 모를 것이다. 나한테도 안 하는데, 어떻게 너한테 이런 걸 해야 한단 걸 알까? 누군가에겐 "당연한" 사랑의 표현들이 누군가의 삶엔 아예 부재한 것들일 수도 있다.

이건 내가 스스로 배우고 바꾸려 노력하기 전까진 주로 어릴 적 양육자에게 받은 사랑 (혹은 받지 못한 사랑)과 닮았다. 결국 나의 결핍을 초래한 기억들을 현재진행형으로 되풀이할 확률이 매우매우 높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린 내가 받고 싶어 했던 사랑이 뭔지 차근차근 알아내고 나한테 그 사랑을 줄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상대에게도 내 사랑을 줄 수 있으니까.


3.

자기 사랑 없는 상태에서 누군가가 나를 사랑해 준다면, 난 그 사람의 사랑이 필요해진다. 그리고 그 필요성은 결국엔 의존으로 변질된다(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것: 의존 참고).


난 내가 오래 꿈꿔온 구원자가 돌고 돌아 결국 나 자신이라서 슬펐다. 억울하고, 화가 났고, 때론 비참하게도 느껴졌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가 와서, 마법처럼 나를 완벽히 사랑해 준다고 쳐도,

그의 사랑이 내 상처를 치유하고 나의 불안을 잠재운다고 가정해도,

난 정말 그 관계 안에서 상대방이 언제 떠날지 두려워하지 않았을까?


안 그러기 어렵겠지. 난 그 사람이 점점 더 "필요"해졌을 걸 잘 안다.

그리고 이 마음은 언젠간 집착이 됐을 거다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것: 집착/결부 참고).


내 마음속 컵이 메마르고 갈증 난 상태에서, 내가 아직 나를 채울 줄 모르는 상태에서, 오직 상대방의 사랑만이 컵을 채우면, 내가 아는 건 오직 그것뿐이다.

어떻게 안 불안할 수 있을까? 행복해지면 행복해질수록, 이 꿈이 언제 끝날까 초조해질 텐데.


결국 난 상대의 행동 하나하나를 날 세워 지켜보고, 분석하고, 혹시 떠날 낌새가 보이진 않는지 걱정하는 마음이 내 가슴 한편에 언제나 있겠지. 이런 내 심리는 상대방을 옥죄고, 관계에 텐션을 불어넣을 것 있다. 그러다 보면 사랑에서 시작한 관계의 의미 역시 변질되겠지. 상대방은 자기 자신을 돌보는 것뿐만 아니라, 내 감정과 자존감까지 돌봐야 하는 부담감에, 우리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겠지.


자기 사랑을 먼저 (혹은 동시에) 배우는 건, 외부의 사랑에 절박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몸소 가르쳐주는 것이다. 타인에게서 받는 사랑, 내가 나에게 주는 사랑 - 당연히 형상이 다르지만 그만큼 내가 아는 사랑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건 정말 중요하다. 내가 살면서 느낄 수 있는 사랑의 감정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다채롭게 존재하는지 깨닫는 건 나의 매일매일에 새로운 의미와 숨을 불어 줄 것이다. 특정 사랑과 사람에만 목매며 집착하지 않도록.


아무리 관계가 굳건하더라도 타인의 행동과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은 우리의 통제밖이니까.

좋은 싫든 언제나 함께할 사람은 나 자신이니까, 우리가 혼자 치유하는 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단단해질 수 있는 길이라 감사하다.



4. 

다른 누군가가 나를 "구해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 삶을 살아본 사람은 오직 나뿐이라서, 진심으로 나의 모든 걸 품어줄 수 있는 건 오직 나뿐이다. 결국 내가 바라온 건 타인에게서 받아내는 것이 처음부터 불가능한 무언가였던 것이다.

사실 난 타인에게 받아들여지고 싶던 게 아니라, 나 자신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거 같다. 내 모든 것을 포용하는 사랑 - 내가 나에게 안 주니까 외부를 향해 갈구한 것뿐.


나는 이제 자기 혼자서도 온전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

나를 자신의 결핍을 채우는 대상이나 필요에 의해서 곁에 두는 게 아닌, 그냥 나란 사람 자체를 원하는 사랑이 받고 싶다.


그렇다면 나도 그런 사랑을 줄 줄 알아야 하니까 - 언젠가 좋은 인연이 찾아왔을 때 내가 그 마음을 거부감 없이 받고 또 충분히 줄 수 있도록, 나에게 내가 받고 싶은 사랑을 계속 줄 것이다.



5.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고, 길고 긴 시간 끝에 나비가 되어 번데기를 뜯고 나올 때

우리는 절대 도와주면 안 된다.

생물학자 찰스 코언은 긴 변태의 과정 끝에 구멍을 비집고 나오느라 애쓰는 나비가 안타까워 구멍을 넓혀 도와주었다. 하지만 너무 쉽게 세상에 나온 나비는 날지 못하고 힘없이 땅에 떨어져 뒹굴었다.


나비는 그 작은 구멍을 빠져나오면서 날개가 달련된다. 나비가 날 수 있으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이 과정을 도둑 당한 나비는 자신의 몸을 감당할 힘도, 날개의 근육도, 연습도 없어서 날아보지도 못한다.

그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나비 본인의 몫.



우리도 마찬가지다. 이건 외로운 과정이 아니야.

내가 나를 사랑하게 되는 건, 외부에서 받는 그 어떤 사랑과도 차원이 다른, 나만의 중심을 설립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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