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왔다 갔다 하긴 하지만
본 글을 읽기 전에 불안애착유형에 관한 전 글이 있습니다.
Outside-in orientation을 가진 불안형은 언제나 caretaker(보살핌을 주는 사람), 혹은 people-pleaser 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타인을 우선적으로 살피고 그들이 원하는 걸 만족시킨 후에야 나를 챙기는 게 자동화 돼있어요. 내가 뭘 원하는지, 내가 필요한 건 무엇인지 자각조차 안되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이렇게 남을 먼저 챙기는 건 우리에게 거짓된 소속감 - 함께 연결돼 있다는 환상을 빚어냅니다. 봐, 내가 널 얼마나 잘 챙기는지. 우린 친밀해. 우린 각별해. 불안정한 양육자와 유대감을 유지하려 노력하며 내가 뒷전이 돼버린 어린 우리는 커서도 이게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있어요.
안정형으로 가려면 관계 안에서 내 생각방식과 행동패턴을 인지해야 합니다. 내가 주는 걸 상대가 똑같이 안 준다고 아파하는 게 아니라 - 내가 먼저 나에게 주세요. 상대를 주의 깊고 세심히 살피는 관심, 상대가 기분이 안 좋으면 해소해 주려는 노력 - 이 모든 걸 나한테 먼저 해주는 거예요. 내 기분이 어떤지 세세하게 경청해 주고, 내가 피곤하고 속상한 날엔 내가 좋아하는 걸 먼저 하면서 날 위로해 주세요. 그다음에, 내가 날 행복하게 해주고 나서, 상대방을 살펴도 늦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한숨, 말투, 톤, 눈빛 같은 비언어적 단서를 읽어내야 했던 불안애착유형은 사람을 잘 읽고 눈치가 빠른 어른이 되었을 거예요. 하지만 조금 더 안정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연습하려면 모든 것에 의미 부여하는 습관을 멈춰야 합니다. 사사로운 뉘앙스를 나와 연관 짓는 게 아니라 이 사람 역시 자기 자신만의 삶, 결핍, 상황이 있단 걸 이해해야 해요. 아무리 내가 옆에서 챙겨주고 싶거나, 상대에게 영향을 끼치고 싶어도 그건 어릴 적 양육자를 챙기려 했던 노력의 연장선이며, 상대방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 - 건강하지 못한 바운더리입니다.
혹여나 정말 내가 의도치 않게 상대를 상처 주었을지라도, 무엇이 속상했는지 소통하는 건 상대방의 책임입니다. 굳이 상대의 모든 행동을 과대해석하지 마세요.
불안애착유형을 가진 사람들의 포커스는 대체적으로 외부에 맞춰져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관계나 사람, 혹은 상황을 마주하면 극심한 불안을 느껴요. 아무 정보 없이 우린 경우에 따라 맞춰갈 방법도, 혹시 모를 상처에 대비할 방법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새로운 것들을 대하는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불안을 잠재우는 나만의 방법을 찾아내야 합니다.
심리상담에선 불안장애를 겪는 사람들에게 내 오감에 각각 집중하는 명상방법이나 변증법적 행동치료 같은 정서조절 방법을 알려줍니다.
이 모든 것이 목표하는 바는 나에게로 포커스를 돌려놓는 것입니다.
나의 심리상태가 외부상황에 좌지우지될 때 그 중심을 나로 집중하는 방법들이에요.
상대가 날 싫어하면 어쩌지? 가 아닌 나는 이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상대의 생각을 읽으려는 게 아닌 난 현재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가? 어떤 생각이 드는가?가 먼저 와야해요.
타인과의 유대감을 바라는 건 누구에게나 당연한 본능이지만 불안형의 과거는 '나'라는 주체 없이, 외부에 휩쓸려가며 안정적인 관계를 가질 타인을 찾아 방황하게 해요. 하지만 타인과의 관계는 아무리 돈독해도 절대적인 지지의 기반이 못됨으로 이젠 나와의 기반을 쌓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 불안을 잠재우는 방법은, 어떤 방식으로든, 나 자신에게로 관심을 되돌리는 방법들이어야 합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하는 것은:
1. 나와의 대화 (상위자아/이너차일드로 이분하기)
2. 명상인데 생각을 비우는 명상이 아니라 내가 느끼는 감정들이 뭔지 하나하나 자각하는 명상. 현재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나 (a) 어떤 감정들이 내 몸 (b) 어디에 (c) 어떤 식으로 느껴지는지 정리하기.
3. 논리적으로 내 불안을 풀어주기 (참고)
4. 셀프 레이키 (이미지 힐링)
5. 내가 날 사랑한다 몇 번이고 일깨워주며 안아주기 (진짜 안아줌!)
불안애착유형은 밀당, 헤어짐을 협박하기나 질투유발 같은 방식으로 관계에서 '갑'이 되려는 노력을 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행동뒤엔 그저 사랑받고 싶었고 안전하다고 느끼고 싶었던 어린아이의 절박함밖에 없어요.
한때 전 연애칼럼을 노트필기까지 해가며 정독했습니다. 이렇게 할 정도로 관계에 목매는 제자신이 자괴감들 정도로 싫었지만 멈출 수 없었어요. 버림받는 게 너무 무서웠거든요. 우린 이런 방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하고, 무엇보다 이런 행동의 결과로 얻어낸 사랑은 사랑이 아닐 확률이 높습니다. 난 진실된 나의 모습으로 사랑받을 가치가 있단 걸 되새겨주는 게 중요합니다.
불안애착유형에서 시작하는 모든 파괴적인 패턴들의 중심엔 사랑을 두려워하지만 간절히 원하는 어린 내가 있던걸 알아주세요. 내가 나를 챙기는 법을 못 배워서, 건강한 바운더리를 못 배우고, 내가 사랑 받는 존재라는 확신 없이 자라서 결과적으로 남들도 잘 못 사랑한걸 너그러이 이해해 주되, 인정하세요 - 나도 누군갈 상처 줬단 걸. 불안과 결핍 심정경향은 언제나 우리가 '피해자'고 '을'이라는 서술에 가둡니다. 이 서술에 갇힐수록 더 상처받는 건 결국 우리 자신이에요. 나는 사랑받지 못한다는 아픈 (그리고 틀린) 믿음을 점점 더 나에게 쐐기 박는 자멸적인 순환에서 빠져나오려면 누군갈 해할 수 있는 나의 파급력 또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누군가가 나를 아프게 한 만큼, 나 역시 의도하지 않았어도 다른 누군가를 아프게 했으니, 우리는 언제나 상처받고 버림받는 약한 존재가 아니었어요. 사랑에서 우리는 모두 동등하단걸 받아들여주세요.
우리의 불안애착유형은 결국 어떤 관계에서 받은 상처의 결과이다 보니 아무리 내가 혼자 노력한다한들 상대가 계속해서 익숙한 상처를 준다면 이 아픈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요. 나를 지속적으로 트리거하는 회피형 습관을 보이고, 함께 노력하자 했는데도 자신을 알아갈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아직 그 사람의 치유의 시간이 아닌 것뿐이에요. 이때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려 내려야 하는 결정은 떠나는 것입니다. '나를 아프게 하는 관계를 억지로 붙잡는 것보단 내 마음의 평화가 더 중요해'라는 마음을 먹어야 해요. 이게 말은 쉽지 불안형에게 관계를 끊어내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압니다. 하지만 매일매일 내가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순간들이 쌓여, 언젠간 나를 위한 결정을 내릴 용기를 만들어요. 내 넘치는 사랑의 목적지가 확실하니 (나), 내 소중한 사랑을 오용하지 않게 됩니다.
우린 잘못된 것도, 아픈 것도, 틀린 것도 아닙니다. 그냥, 이런 패턴이 필요했던 시절이 있었고, 이제는 적합하지 않기에 새로운 걸 배워가는 것 뿐이에요. 이번엔 내가 타인을 사랑하는 만큼 나를 사랑하는 연습을 하는 거예요! 하지만 이 마음은 나에게 뭔가 문제가 있고 그걸 "고쳐내야"한단 마음으론 달성되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세심하고 다정하게 챙겨줄 줄 아는 건 정말 사랑스러운 자질입니다. 배려심도 많고, 작은 것 하나하나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우린, 좋은 동반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이에요.
이 모든 걸 억누르지 말고 알아주세요.
이렇게 멋진 나를 이젠 나도 경험할 차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