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존재를 부정당한 애정결핍
분명 잠시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에 둘러싸였었는데, 혼자 있는 순간 깊은 외로움이 밀려올때 있으세요?
어렸을 때부터 엄마의 100% 사랑은 내 마음의 75%밖에 안 채운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평생 어느 관계에서도 언제나 내가 더 사랑할 운명이라고 믿었어요. 엄마와의 관계에서도 그런데, 생판 남이야 오죽하겠나요.
이게 사무치게 외로웠습니다.
속에서부터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아릿한 공허함을 제발 누군가가 채워주길 꿈꿨습니다.
여러모로 외부와 단절된 채 자랐던 전, 제 외로움이 그저 사람의 부재라고 믿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흘러, 나를 정말 사랑하고 아껴주는 친구와 가족관계를 찾고, 서로 진심을 쏟은 장기연애를 가져도, 이상하게 그 외로움은 더욱더 아려올 뿐,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아니, 사실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아질수록, 혼자 있는 것이 점점 더 견디기 힘들어졌어요. 웃으며 친구와 통화를 끊는 순간부터 불안과 초조함이 엄습할 정도로, 퇴근하고 혼자 사는 집에 들어가기 두려워질 정도로.
언제부턴가 혼자 있으면 공황발작이 왔었어요. 집에 가만히 있다 보면 벽은 점점 나를 조여왔고, 허허벌판에 혼자 뚝 떨어져 있는 듯한 외로움은 역설적이게도 폐쇄공포증처럼 숨막히게 갑갑했어요.
드디어 그토록 꿈꿔온 내편들이 생겼는데, 왜 난 더 외로워져갈까요.
만성적으로 외로움을 느낀다면 높은 확률로 내가 나를 외면중일수도 있습니다.
언제나 부족하다고 느낀 내 마음의 25%는 나만이 줄 수 있는 거였어요. 계속 타인에게 갈구할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바란 건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단순히 듣고 위로해 주는 게 아니라, 그 시간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알아줄 사람이더라고요. 어렸을 때 힘든 순간 온전히 혼자였던 기억은, 내 고유의 아픔을 공유해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믿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걸 해줄 수 있는 타인은 존재하지 않아요. 아무리 사랑한다 하더라도 절대 그 사람이 될 수는 없잖아요. 애초에 외부에서 받아내기 불가능한 욕구였습니다.
아이러니하지요. 외로움이라면 당연히 주위에 아무도 없이 혼자라서 슬픈 것이라고 믿었지만, 사실은 그 반대였습니다. 아무리 주변에 사람이 들끓어도, 아무리 많은 사랑을 받아도, 내가 날 버려둔다면 끝도 없이 외롭고 고독해요. 진짜 너무 신기한 게 내가 나의 친구가 되어주고, 내가 필요한 걸 주기 시작하니까 너무 빨리 멀쩡해졌습니다. 평생을 끈질기게 따라다닌 외로움이란 감정이 당황스러울 정도로 금방 사라졌어요.
근본적인 답을 나에게서 찾지 않고 외부에서 찾는 것은 나의 바운더리를 완전히 망가뜨립니다. 상대방과의 교류만을 위해 남들의 행복, 감정과 편안을 나보다 우선시하는 피플플리저가 돼요.
하지만 애초부터 내 외로움의 근원은 타인의 부재가 아니기에, 피플플리징을 하면 할수록 나의 외로움은 극대화됩니다. 날 버리면 버릴수록 더 공허해지고, 점점 더 타인이 절실해집니다. 원하는 걸 가져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걸 모른 채.
+이건 보통 불안애착유형의 바운더리가 망가지는 과정입니다.
사실 더 이전에는 오히려 혼자 있는 걸 좋아했어요. 외롭긴 해도 타인과 있는 게 너무 기 빨려서 언제나 사람들을 피해 나만의 동굴로 들어갔습니다. 제가 회피애착유형을 더 강하게 띄울 때였어요. 하지만 이것 역시 피플플리징의 결과였습니다. 남의 시선과 니즈에 지나치게 맞추려다 보니 모든 교류가 너무 힘든 거였어요. 불안형의 바운더리는 너무 약하다 못해 존재자체가 희미하다면, 회피형의 바운더리는 지나치게 강합니다. 방어를 목적으로요.
다음글에서 건강한 바운더리를 가지는 법과 그걸 관계에 적용하는 방법을 다룹니다: 모든 관계에서 존중받고 사랑받는 사람 특징 5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