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바라보는 사회속 평등과 계급
1.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ㆍ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2.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
위의 내용은 대한민국헌법 제2장 - 국민의 권리와 의무 11조의 내용이다. 이런 법률 내용만 봐도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평등은 가장 우선적으로 지켜져야 할 가치로 인식된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사회인이 되기도 전에 우리는 평등이라는 가치는 이상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어린이를 거쳐 사춘기가 되면 타인을 인식하는 범위가 늘어나고, 자신과 타인의 여러 모습들을 비교하기 시작한다. 나보다 공부를 잘하는, 운동을 잘하는, 사교성이 좋은, 집안이 잘 사는, 싸움을 잘하는 부류들 그리고 반대로 못하는 부류들로 같은 반 친구들이 나뉘고 그안에서 학급의 계급이 정해진다. 그리고 그 계급 안에서 약자에 대한 공공연한 폭력은 당연해진다. '친구들끼리 사이좋게 지내야지.'라는 어른들의 말은, 그 계급이 만들어내는 폭력성을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외면하려 하는 비겁한 변명으로 들리기 시작한다. 이런 계급화가 이성적 판단이 어려운 청소년기에만 나타는 거라면 얼마나 좋을까? 어른, 사회인이 되어서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어른들 역시 청소년기의 학급과 같이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 권력, 유명세에 따라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명확한 계급이 생기며, 높은 계급에 있는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의 우러름을 받고, 그렇지 못할 경우 멸시를 담아 내려다보는 시선이 사회에 만연하다. 이런 현상은 아이러니하게도 앞서 강조되었던 법률에 의해 더 조장된다. 법률의 내용은 평등을 주장하지만, 우리는 모두가 안다. 그 법이라는 강제력을 수반하는 사회 규범조차 사회의 계급 앞에서는 강약약강이라는 것을. 사회 권력자가 저지르는 범죄에 적합한 형량이 주어지는 걸 목격한 적이 있는가? 경제를 살리겠다는 이유로 경제 사범을 사면해 주는 모습은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해진 모습 아닌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라는 문구가 참 뻔뻔해 보일 지경이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인간의 모든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라고 이야기했다. 정녕 우리는 같은 인간 안에서 나눠지는 계급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는 것일까. 결국 이상에서만 머물 평등이라면 우리는 왜 그것을 추구해야 되는가. 인간의 계급화가 어쩔 수 없는 생존 본능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인간을 이성적 동물이라 지칭하는 것을 그만두는 것이 맞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