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서 만난 작고 귀엽고 슬픈 것들
카메라를 몸 일부처럼 매일 가지고 다니기 시작하면서,
연속적으로 잘 정리된 무언가를 찍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스페인에선
같은 액자에 들어간 다양한 미술작품들,
길거리 벽에 붙은 콘서트 홍보 포스터,
기념품 가게에 정리된 터키램프와 형형색색의 페브릭,
가게 외벽을 가득 메운 여행 엽서,
향신료가게 한쪽 벽을 채운 다채로운 양념 재료들
선물용으로 포장된 달달한 누가 (Nougat)
그런 것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고
카메라 화면 가득 그것들이 잘 나오도록
몇 걸음 뒤로 물러서서 셔터를 누른다.
그러곤 다가가 액자 하나하나 들여다보기도 하고
향기를 맡아보거나 시식용을 먹어보기도 하고
색을 감상하기도 하고 손으로 만져보기도 했다.
그때는 보고 느끼는 것이 강렬하여
굳이 메모하지 않아도 여기가 어딘지 이것이 무엇인지
똑똑히 기억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인화한 사진을 보니
이미 기억은 희미해져 버렸다.
땅콩 들어간 누가가 맛있었던 것 같고,
아니 하얀색이 맛있었던 거 같기도 하고,
아니 잠시만, 내가 하나하나 다 맛을 보긴 봤던가?
사진 속 줄지어 있는 무리 안에서 뭔가 잃어버린 거다.
인화한 사진을 손가락 두 개로 쭉 늘려 확대하고,
그 화면으로 들어가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
그러다 여의도에서 강남에서 광화문 같은데에서
지하철역에서 나와 주변 건물로 빠르게 사라지는
줄지어 걷던 직장인들이 생각났다.
오후 4시에서 5시 사이 똑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길을 건너고 학원버스 타는 모습이 생각났다.
한 줄로 이동하는 어떤 무리의 사람을 볼 때도
나는 사진을 찍었다.
모두 각자의 이야기와 성격이 있을 텐데
그것들을 숨기고 앞만 보고 따라가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귀엽기도 우습기도 슬프기도 했다.
'글 쓰고 사진 찍고 책을 읽고 가야금을 배우고 있는 로란'이 아니라
'역삼역으로 출근하는 한 무리의 직장인'이었던 옛날이 생각났다.
익명화가 되어버린 무리 속에서
이름을 찾아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었다.
여전히 어떤 누가가 맛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혹시 살 수 있을까 하고 검색했더니
그곳에서 만원이 안되었던 제품이
직구 배송료 포함 십만 원 가까이하는 것을 보고
창을 닫아버렸다.
하나하나 기억이 선명했던 것 같은데,
기념품 가게에서 맘에 드는 물건 하나 고르느라
오랫동안 고심했던 것 같은데,
나는 그것들의 이름을 지우고
사진이라는 평면 안에 욱여넣어버려
기억조차 희미해져 버렸다.
조금 슬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