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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y 25. 2024

무너지기 쉬운 것은

지금 밖에 부는 바람은 무너져본 적이 있을까?

자유롭게 하늘을 가르며 날아다니는 바람은 한 번이라도 무너져본 적이 있을까.


스스로 무너져내리기에 적합할 오늘날에

나는 하루하루 무너지기 직전까지 나를 몰아놓고 다시 돌아온다.


무너지기 쉽지 않다고 생각했던 내가 

역설적으로 무너지기 가장 쉬운 존재였다는 점을

반복되는 일상,

반복되는 침묵, 

반복되는 외로움, 

반복되는 자기혐오가 

발 밑의 구덩이를 쉽사리 만들어주고 싱긋 웃어주고 있었음을.


푸릇푸릇하던 청춘이었던 내가 

회색빛의 물감을 뒤집어쓰고 부품의 한 조각처럼 산다는 것은

남들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거라.


그래서 스스로를 속이고

스스로에게 달콤한 거짓말도 해보고

스스로에게 따끔한 채찍질도 해보았던 거다.


무너지기 쉬운 것은 언제든지 도처에 깔려있었다. 

파도 앞에 위태롭게 서있는 모래성처럼 

언제라도 씻겨나갈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에 

나를 옥죄고 목을 조르며 가쁜 숨만 내뱉게 만들었다. 


내 심신은 점차 무거워져 가는데, 

그로 인해 내 발에 부하되는 무게감이 더 실감 나게 된다.

내 발은 곧 수천 톤의 닻으로 변해버려 금방이라도 무너지기 직전이다.


무너져가는 도중에 힐끗 스쳐 지나가는, 

행복했던 나날들이 초점 없는 눈동자에 비추어 

반딧불의 단말마처럼 금방 사라져 가고 있을 때.


추억 속에 환하게 웃고 있던 내 모습을 

멀리서나마 훔쳐보고는 이윽고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리는 자여.

그대는 그 추억 속에서만이라도 행복해라. 


현재의 난 

그대가 모를 아픔과

외로움과 슬픔과

고통과 혐오를 모두 껴안고

무너져버릴 테니. 


그대만이라도 찬란했던 그 기억 속에서만이라도 행복하기를.

난 무너져 내리면 오히려 그 모습 눈에 담지 않을 수 있을 테니.


어쩌면 이조차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행복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그럴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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