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집
어느 평일처럼 잠에서 깨어 커튼 사이로 드리워진 햇빛을 광합성하며 새의 지저김을 듣다 문득, 오른쪽 귀가 작게 들려옴을 확인했습니다. 뭔가 웅웅하고 귀에서 울리는 거 같았어요. 이를 확인하려는 듯 오른쪽 귀를 막고 왼쪽 귀에 가젼간 손가락을 튕겨보았어요. 탁. 탁. 평소처럼 똑같은 파장과 울림으로 다가왔어요. 이번에는 반대쪽 귀를 막고 탁. 탁. 남자가 고개를 갸우뚱거렸어요. 확실히 그 소리가 3분의 1로 줄어들어 있었거든요.
대담한 건지, 미련한 건지 남자는 그 사실에 크게 놀라지 않았어요. 걱정이 안 됐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어릴 때부터 귀가 좋지 않아 크고 작은 수술을 받아왔고 주치의로부터 잘 관리하지 않으면 귀가 안 들리게 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어왔으니까요. 지금까지 그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그에게 커다란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었어요. 관리라고 해봐야 물이 귀에 들어가지 않게 조심하고,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아 검진을 받는 게 전부였으니까요. 아, 전조는 있었는지 몰라요. 얼마 전에 그녀와 통화를 하다 그녀가 꽤 진지한 목소리로,
라고 말했으니까요. 아마, 그녀의 근무표와 관련된 이야기였는데 그때 남자는 유니클로에서 세일하는 양말을 두 켤레 정도 고르고 있었어요. 귀와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었던 거죠. 그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어요. 인간이란 본디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듣고 싶은 말만 듣게 되어 있으니까요. 귀는 늘 양방향으로 활짝 오픈되어 있지만 정작 달팽이관을 지나 뇌로 전달되는 건 늘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구분가지 않는 한쪽에서만 들려온 소리였으니까요. 그는 그런 비슷한 소리를 어디서 많이 들어보기도 했어요.
나는 귀를 닫고 살아. 그러면 마음이 편해져.
라는 사람도 있었고,
그냥,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는 흘려버려.
혹은,
신이 왜 귀를 두 개 만든 줄 알아? 한쪽은 닫기 위해서야.
라고 하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그는 크게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완전히 오른쪽 귀가 들리지 않게 됐을 때도요. 프리랜서 개발자라 대부분 채팅으로 대화가 이뤄졌고, 혹여 비대면으로 회의가 진행될 때도 이어폰을 끼면 됐으니까요. 그가 가족 이외에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건 당연한 순리였는지 몰라요. 심지어 그녀에게도 알리지 않았어요. 오히려, 그녀가 잔소리를 할 때는 왼쪽을 향해있던 고개를 오른쪽으로 스리슬쩍 돌리기까지 했으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차에서 터지고 말았어요.
남자와 여자는 한 시간 이상의 장거리 데이트를 떠나는 날이었고 그는 왼쪽에 위치한 운전대에, 그녀는 오른쪽 조수석에 탑승해 있었어요. 이미 한쪽 귀는 완전히 들리지 않았고요. 평소 목소리 톤이 낮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고개를 삐딱하게 돌려 왼쪽 귀를 최대한 그녀 쪽에 가까이 다가가야만 했습니다. 도통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요. 자신도 모르게 오른쪽으로 기울다가 사고가 날뻔하기도 했어요.
이거 참, 불편한데.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정면을 주시한 채 액셀을 밟았어요. 빨리 도착하는 수밖에요. 그때, 그녀가 그의 오른쪽 귀에 작게 속삭였어요. 당연히 남자는 그녀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앞을 바라본 채 무심히 운전대를 잡고 있을 따름이었죠(방금 사고가 날 뻔한 것도 단단히 한몫했고요) 무슨 말인지 그녀의 볼이 붉그스름 해지고 시선은 창밖으로 향해있었어요. 창문을 내리기까지 했어요. 밖은 꽤나 추웠거든요. 남자가 아무 반응이 없자, 그녀가 미간을 찌푸리고는 그의 잠바를 끌어당겼어요. 남자는 여전히 정면을 응시한 채 대답했어요.
왜?
그는 운전에 집중해야 했기에 빨간 신호등을 발견하고서야 여자를 바라봤어요. 약간의 긴장한 얼굴로, 약간은 짜증 난 표정으로.
나, 방금 뭐라고 했는지 알아?
뭐라고 했는데?
그녀는 한동안 그의 얼굴을 무심히 바라보더니,
됐어. 운전이나 해.
여자가 뿌루퉁한 표정으로 바뀌었고 신호도 초록불로 바뀌는 바람에 남자는 다시 운전에 집중하기 시작했어요. 둘 다 앞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남자는 도로를 타고 여자는 외로움을 타기 시작했어요. 그녀가 다시 남자의 오른쪽 귀에 다가와 작게 속삭였어요. 그 정도 거리애서 얘기했다면 작은 새의 귀에도(도대체 새의 귀는 어떤 모양일까요? 귀를 가지고 있기나 한지도 모르겠지만) 또렷하게 전해지고도 남았을 거예요. 하지만 남자는 아무것도 듣지 못한 채 정면을 응시하고만 있었어요. 이제, 여자는 진심으로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야!
그녀가 남자의 옷을 확 끌어당겼어요. 남자도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나, 지금 운전 중인데 꼭 그래야겠어? 조금 있다 하면 안 돼?
여자는 서운했어요.
됐어. 가기나 해.
어느새 차 안에는 적막만이 흐르고 있었어요. 여자가 마지막이라는 듯 다시 한번 그의 오른쪽 귀에 슬쩍 다가와서는, 또 작게 속삭였어요. 여전히 남자는 듣지 못했고요. 둘은 휴게소에 도착했어요. 시동을 끄고는 남자는 안도한 표정으로 표정을 상냥 모드로 바꾸고는 그녀를 바라보며,
자기야, 미안. 방금 뭐라고 했었어? 운전에 집중하느라 못 들었어. 미안.
여자는 대답 대신,
오줌 마려. 화장실 갔다 올래.
하고는 차량을 이탈해 그의 시야에서 사라졌어요. 남자도 기지개를 켜고 몸을 스트레칭하며 몸의 긴장을 이완했어요. 장거리 운전에는 한쪽 귀만 들린다는 사실이 꽤나 불편했거든요. 그렇게 10분, 20분, 30분이 흘렀는데도 여자는 나타나지 않았어요. 전화를 걸어보아도 받지를 않아요. 남자는 어안이 벙벙했어요.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람... 어쩔 수 없이 남자는 혼자 여행지로 가, 혼자 차를 주차하고,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사진을 찍고, 혼자 돌아왔어요. 혼자 여행을 하는 와중에 그의 머릿속에는 줄곧 그녀가 떠올랐어요. 도대체 무슨 일인 거지. 하고요. 혼자 집에 돌아와서도 그녀와는 연락이 되지 않았어요. 그는 영문도 모른 채 차였던 거예요. 어느 날은 너무 답답해서 그녀의 회사를 찾아가,
잠깐, 얘기 좀 해.
라고 해도 여자는 할 얘기가 없다며 아니, 다 했다며 그를 장애물 마냥 지나쳤어요. 이미 다했다고? 남자는 차로 돌아와 블랙박스를 조작하기 시작했어요. 해당 날짜 영상과 시간을 어림 측정해 과거로 시간을 되돌렸어요. 블랙박스 영상 속에서 여자가 남자의 오른쪽 귀에 바짝 다가와 속삭이는 듯한 장면이 총 세 번 반복됐어요. 하지만 무슨 말인지는 잘 들리지 않자 남자는 블랙박스 스피커에 왼쪽 귀를 가져가 그녀의 목소리에 집중했어요.
첫 번째, 영상에서. 사랑해.
두 번째, 영상에서도. 사랑해.
마지막 영상에서는.
이번에도 못 들은 척한다면 우린 헤어지는 거야.
남자는 처음으로 자신의 들리지 않는 오른쪽 귀를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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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라이터스짐에서 관원을 모집 중입니다. 우리 같이 글근육을 키워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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