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간 이루어지는 가혹한 시험 Piscine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을 샀다.
집을 sous-louer(내가 집을 임대하는 동안, 잠시 집이 비는 경우 다른사람에게 재임대)하려고 날짜를 맞춰 티켓을 구매하였는데, 막판에 여학생이 취소하였다.
어쩔 수 없이 파리의 스튜디오는 한달 반 동안 비게 되었고 나는 시험 이틀후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6시간. 이렇게 긴 시간동안 인도의 뉴델리 공항에서 대기하게 된 것이었다.
인도 뉴델리 공항의 재밌는 점은 요가실이 있다는 것이었다. 오전에 뉴델리 공항에 떨어졌을 때, 공용 요가 매트를 깔고 당당하게 잠을 청했다. 너무 피곤해서 눈치볼 새도 없이 그저 곯아떨어졌다.
나는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은지 3년이 넘었지만 프랑스 사람들은 인스타를 카톡처럼 매우 애용하기 때문에 프랑스에 와서 깔았더랬다. 요가실에서 낮잠을 잔 후엔, 할일 없이 공항에서 커피를 홀짝이며 시험이 끝나고 형식적인듯 또는 애정어린듯한 DM들을 같이 시험 본 piscineux, piscineuse끼리 주고 받았고 한국의 친구와 가족들에게도 연락을 했다.
오랜만에 컴퓨터를 벗어나 카페에서 멍때리니 어느덧 6시간이 지나있었다. 비행기 시간까지 약 5시간 정도가 더 남았고 나는 몸을 풀러 요가실로 들어갔다. 인도에서 이제 막 요가 여행을 마친듯한 히피 복장을 한 백인 여자 아이가 길게 머리를 양갈래로 땋은 채 커다란 호흡을 내쉬며 요가를 하고 있었다. 나도 요가 경력 8년차, 혼자서 몸을 풀며 요가를 시작했다.
한 30분정도의 요가를 마쳤을까, 또 다시 피곤함에 드러누워 이어폰을 끼고 유투브를 보고 있었다. 그 때,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남자 두명이 요가실 앞에서 머뭇거렸다. 프랑스어로 말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나는 유투브를 보느라 정신 없었다. 둘이서 약간의 실랑이를 벌이더니 요가실로 들어왔다. 내가 누워있는 곳 근처로 와서 요가매트를 가지고 갔다.
남자 둘이서 요가를 하겠다고 매트를 들고 간게 웃기기도 했고, 한 사람이 유독 목소리가 커서 나도 모르게 쳐다보게되었다. 되게 귀엽고 밝은 여행자같았다. 그 중 한 남자가 옷을 갈아입으려고 하는데 내가 있어서 인지 불편한듯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눈을 손으로 가리자 그 남자가 웃으며 Thank you!를 외쳤다. 옷을 갈아 입었다며 내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요가를 하고 있었니, 요가 알려줄 수 있니. 내가 요가 선생님처럼 두명에게 요가를 가르쳐주었다.
불어를 사용했지만 프랑스인인지, 다른 나라 사람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초반엔 영어로 대화했다. 이후에 알고보니 파리에서 온 남자였다. 태국을 여행하는 사촌에게 합류하기 위해 인도 경유를 하게 되었고 나는 한국으로 가는 기간에 인도를 경유하게 되었다.
그 남자의 이름은 트리스탄. 트리스탄과 함께 있던 남자는 안토니. 둘은 친구 사이가 아니라 나처럼 공항에서 만난 사이였다. 셋이서 수다 떨고 공항을 돌아다니느라 지루한 경유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 나는 사랑에 빠지고 싶지 않은 시기에 이 남자를 만난 것이 약간 분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을 잘 가다듬으려고 했다. 내가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내 옆에서 같이 기다려주며 같이 수다떨면서 장난을 쳤다.
자기는 이제 맥도날드를 먹으러 갈거고 맥도날드를 먹는 사진을 찍어보내줄테니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알려달라는 남자.
그렇게 트리스탄의 3주간의 태국 여행, 나의 한국에서 한달반간의 방학기간 동안 우리는 계속해서 인스타그램 연락을 주고 받았다. 프랑스로 돌아오기 위해 나는 또 인도 공항에서 경유를 해야했다. 요가실에가서 잠을 자려고 했는데 G20정상회의 때문인지 요가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 풍경을 보는데 그저 서글퍼졌다. 마치 내가 소중히 아끼던 추억이 없어진 것 같기도 했고 이것이 인생인 것 같기도 했다. 이런 생각을 하며 다음날이 되어 눈을 떴다. 생리를 시작하였고 내가 유독 감성적이던 그날의 이유를 알게된채 다음날 파리에 도착했다.
파리에 돌아와서 집을 정리하고, 석사수업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며, 트리스탄에게 만나고 싶다는 연락을 했다. 가볍게 커피 한잔 마시기로 했는데 전시회를 가자고 했다. 같이 전시회를 갔고 데이트를 하며 나는 그가 더 좋아졌다. 태국의 어떤 섬에 있을 때 나를 생각하며 샀다던 작은 거북이 마그넷을 주었다. 그렇게 그가 더 알고싶어졌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그 다음 날 전화 통화를 하니 조심스럽게 전하는 트리스탄의 말들. 나는 6년간 연애를 하였고 그 연애가 끝난지 이제 3개월 밖에 안되었어. 그러한 기간동안 너를 만났고 자기 머릿속에 다시 연애나 관계로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현재는 없어. 잘 끝났고 잘 헤어졌지만 마음에 무언가 남아있는 게 있어. 그런데 나는 널 만났고 너에게 마음이 갔기 때문에 계속 연락을 했던 거야. 인도에서 만난 것이 그저 우연이었는지 아닌지 모르지만 우리는 서로가 있던 각자의 나라에서도 계속해서 연락을 했지. 너는 지금 내가 당장 너에게 yes or no를 말해주기를 말해주는게 좋겠지? 어떻게 생각해 ?
나는 그의 인스타그램을 보고 장기간의 연애와 헤어진지 얼마 안된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말그대로 3개월 밖에 안된지는 몰랐었다. 또한, 나는 아무것도 모른채 마음을 키워왔기 때문에 약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웃으며 그냥 친구로 지내자고 말하긴 했지만 전화를 끊고 나니 실망감과 서러움이 밀려왔다. 전화를 끊고 15분이 지나자 그가 이모티콘을 하나 보내왔고 갑자기 열이 받는 나는 그에게 문자로 쏘아부였다. 나 사실 이해가 안되는데 너는 결국 너의 기분이 더 나아지기 위해 나한테 연락을 했던 것 같아. 너와 연락하면 내가 불편할 것 같아. 이해해주길 바래.
그가 문자를 읽고 몇시간 후에 답장을 했다. 미안해 그럼 내가 너한테 관심있었던 게 잘못이네. 널 상처주려던게 아니었어. 너한테 말을 더 하지 말았어야 했나봐. 연락을 안하는게 너를 위해서라면 안할게. 당연히 이해하지.
프랑스 친구들, 한국 친구들 모두에게 이 일을 말했었다. 모두가 내게 조금 더 연락하며 서로 알아가보라고 했다. 트리스탄을 이해한다고. 그러나 뭐, 결정은 내가 하는 거니까. 나는 현재 나를 굳이 어떤 복잡한 상황속에 넣고 싶지 않았다. 인도로 경유하여 돌아올 땐, 그 요가실이 없어졌던 것처럼, 그래, 우리가 뉴델리에서 만난 것은 그저 우연이었나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