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비동염

코로도 숨을 쉴 수 있었구나.

by ODD

내 생의 첫 상담 치료를 받았던 때로 돌아가 보면 10년 전 고등학생. 당시의 부모님과 나는 내 정신적 문제가 이제 막 시작되었다는 것을 상상도 못 했을 때였다. 그때만 하더라도 정신과 기록이 남을까 봐 상담 치료를 걱정했고, 건강에 안 좋을까 봐 약물 치료를 걱정했었다. 웃기는 일이다. 현재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45분의 상담 치료를 받고 매일 7알 혹은 11알의 알약을 삼킨다.



만성 두통이었던 고등학생의 나는 늘 두통을 느끼며 타이레놀을 입에 달고 살았다. 점점 내성이 생겨가면서 한 알, 두 알 복용량이 늘더니 나중에는 매일 교내 보건실에 들러 최대 용량인 8알씩 복용해야 했다. 그런 나는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을 하며 즐기는 순간에만 희열이 두통이 덮었기 때문에 늘 하고 싶은 것만 해야 했고, 그런 나를 보시며 부모님께서는 꾀병으로 알고 계셨었다.


"얘, 이상한데, 어디 문제 있는 거 아니야?"


그러다 내가 장애인이 아닌지, 내 뇌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의문을 품게 되셨고, 병원에 가서 MRI와 CT 촬영을 하게 되었다.


촬영 사진을 보니 내 코 뒷부분이 새까맣게 칠해져 있었다. 다행히 뇌의 문제는 없었지만, 문제는 코에 있었던 것이다. 평생 모르며 살아오다가 고등학생 1학년이 되어서야 만성 부비동염으로 내 코가 막힌 채 살아왔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는데, 이전까지 코가 뚫렸던 경험이 없던 나는 당연히 숨은 입으로만 쉬는 것으로 생각해 왔고, 인지를 못 한 채 지내왔던 것이다.


"아니, 이렇게 불편한 채로 어떻게 생활하셨어요?"


의사 선생님께 부비동염 진단을 받음과 동시에 그제서야 부모님과 나는 만성 부비동염에 대해서 제대로 알게 되었다. 사람의 코 안쪽에 부비동이라는 부위가 있는데, 그곳에 염증이 있으면 부비동염이라고 칭한다. 그 기간이 길고 심하면 만성. 간단하게 말해서 코가 24시간 막혀 있는 것이다. 원래 공기로 채워져 비워져 있어야 할 공간이 콧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코로 숨을 못 쉬는 것은 물론이고, 그 안에 썩은 채 방치 되어있는 누렇거나 어떨 때는 초록색의 콧물이 여름이건 겨울이건 쉴 새 없이 흘러나온다. 그 섞은 누린내가 항상 느껴지고 코에서 콧물이 넘치게 되면 입을 통해 가래로 나오곤 했다. 그 시절 내 왼쪽 주머니에 무조건 들어있던 필수품은 여러 장 끊어놓은 휴지였다.



이제 와서 돌이켜 보면 입으로만 숨을 쉬며 생활했다는 것은 굉장히 고된 일이었다. 밥을 먹을 때도 음식을 씹는 동시에 호흡을 해야 했고 평소에도 입으로만 호흡하다 보니 입 안이 항상 말랐으며, 특히 잘 때는 가래가 넘어가서 목이 막히거나 입과 목이 말라서 깨기 일쑤였다. 어린 성장기부터 이런 상태로 방치가 되면 지속해서 스트레스가 쌓이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내가 딱 그런 케이스였던 것 같다. 상상하기보단 실제로 해보는 것이 더 와닿을 것이다. 지금 당장 손으로 코를 완전히 막고 입으로만 숨을 쉬어보면 바로 알 수 있지 않을까.



아, 물론 나보다 훨씬 불편한 신체인, 상상도 못 할 많은 사람이 존재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내가 가장 힘들었다든지, 힘들었던 것들에 대한 동정을 받고 싶다든지, 이런 것들이 아닌 단순히 인과관계의 내 역사를 나열하는 중이다.



아무튼 부비동염이라는 문제를 인지한 후 수술을 받게 되었다. 선천적으로 내 코 안쪽 뼈가 휘어져 있는 것이 문제였기에, 인위적으로 뼈를 가공해야만 했다. 곧바로 정말 엄청 아픈 수술을 받게 되었다. 의사 선생님께서 "심장이 빨리 뛸 거예요, 놀라지 마세요." 하며 체중을 강하게 실은 상태에서 어떤 도구로 내 코 뼈를 강하게 누르면 뼈가 틀어지는 뿌드득 소리와 함께 진짜로 심장이 엄청나게 빨리 뛰었었다. 마취를 했지만 너무 아팠다.



뼈를 가공하는 단계가 끝나면 솜으로 코 안쪽을 완벽하게 채우는데, '어, 잠깐만, 어, 더 들어간다고?' 싶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솜을 구겨 넣는다. 코 안쪽이 터질 것 같은 상태가 되면 다 채워졌다는 뜻이고 그 상태로 며칠을 지내야 하는데 이것 또한 고역이었다. 차라리 콧물로 막혀있던 상태가 몇 배는 더 나은 것 같았다. 그렇게 통증으로 잠도 못 자고 반송장이 된 상태에서 코 안쪽이 다 아물 때쯤, 병원으로 돌아가서 드디어 모든 솜을 빼냈고 엄청난 양의 피로 떡진 솜을 볼 수 있었다.



솜을 다 빼내면 마지막으로 그동안 쌓였던 콧물을 풀어내는데 화장지로 감당이 되지 않아 간호사 선생님께서 종이컵으로 받쳐주셨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종이컵의 절반은 채워졌던 것 같다. 이제 다 끝났다. "와!" 말도 안 되게 시원했다. 웃음이 절로 나오며 생애 처음으로 코로 공기를 흡입했는데, 코 안쪽이 너무 시려워서 아팠지만 동시에 너무나 상쾌했었다.



그렇게 한동안 나아지나 싶었는데, 망할, 내 몸이 휘어져 있는 뼈가 정상이라고 기억해서 그런 것인지, 일 년이 좀 되지 않는 시간이 흐르자 끔찍하게도 재발했다. 그래서 엄청나게 아픈 재수술을 해야 했고 그 뒤로 또 한 번, 그렇게 살면서 총 3번의 수술을 하게 되었다.



다행히 지금은 코가 잘 뚫려있지만 지금도 따로 의식하지 않으면 대부분의 호흡은 입으로 하게 된다. 재수술이 두려워 관리를 잘하고 있어서 그런지 재발하지도 않고 있다. 신체적인 문제는 끝났지만, 정신적인 문제는 남아있었다. 만성 부비동염을 일찍 치료하지 못해서 정신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크게 받은 것은 나도 부모님도 의사 선생님도 동의한다. 그런데 이미 지나간 일이니, 땅을 치고 후회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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