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은 내게 늘 사치였다. 내가 다른 모두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들 역시 나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날 이해할 수 있는 존재는 오로지 나뿐. 내가 내 이야기를 듣고 스스로 공감과 위로를 해줘야 했으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었다. 오랜 기간 혼자였던 만큼 외로움에 강하리라 생각했지만, 완전히 고립되어 있다는 것은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깊은 공허함을 느끼게 한다. 그저 내 이야기를 누군가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서 내 이야기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다면 내 진심을 담은 글을 보고 공감의 힘을 얻었으면 한다.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나는 비정상이다. 객관적으로 비정상이다. 오래전부터 스스로 인지해 오기도 했지만, 정신의학과에서 정기적으로 진행한 여러 검사 결과로도 그렇다고 한다. 가볍게 이야기할 거리는 아니지만, 나는 경계선 성격장애, 양극성 정동장애, 스트레스성 공황 장애, 성인 ADHD 등을 진단받았다. 지난 10년간 매주 상담, 약물 치료를 받으며 여러 검사를 거듭할수록 내가 얼마나 고장 나 있는지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오랜 기간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치료받아 왔지만, 인간의 본성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듯하다. 나는 비정상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저 내가 선택한 정상이 모두의 비정상일 뿐이다. 정상 속에 스며들지 못하는 그 고립됨은 잔인하다.
그리고 그 잔인함이 드러나는 부분 중 하나는 정신적인 문제가 원인이라는 것인데 정신적인 문제는 증명하기도 설명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들의 아픔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신체적인 문제라면 MRI나 CT, X-Ray를 통해서 한눈에 알 수도 있고, 어려운 대수술일지언정 적어도 치료해야 할 부분 정도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또 명확한 치료법이 존재한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공감은 자연스레 얻어낼 수 있다. 반면에 정신 치료의 세계에서는 그런 첨단 장비 대신에 질문이라는 강력하지만, 단순한 장비로 찾아내야 한다. 모든 과거를 온전히 떠올릴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인간은 모든 것을 떠올릴 수가 없다. 마음의 상처란 기억은 사라지고 감정만 남거나 반대로 감정은 사라지고 기억만 남을 때도 많기 때문이다. 기억만 남게 되면 스스로 공감이 어렵고, 감정만 남게 되면 그 원인을 찾기가 어렵다.
신체적 문제를 갖고 있는 환자는 오로지 환자의 역할만 하면 된다. 반면에 정신적인 문제를 갖고 있는 환자는 환자의 역할 뿐만 아니라 변호사의 역할도 해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고 이해받기 어려운 만큼 자기방어의 설명은 빠질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나에 대해서 설명해야 할 게 많았기 때문에 "저는"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심지어 고백받는 순간에도 "저는"이라며 설명을 해야만 했다. 내가 겪는 문제들은 대부분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문제들이기 때문에 나는 늘 내 문제에 대해서 스스로 변호해야 했다. 상황을 마주할 때면 문제가 있을지 없을지 확신할 수 없다가, 이상한 반응이 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올 때가 되어서야 참아낸 뒤 그 반응을 집어삼켜야 했다. 만약 삼켜내지 못한다면 그때부터 변호 시작이다. 내가 왜 그랬었고 그렇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보통 다 들어주지 않는다, 사실 다 들어줄 이유도 없고. 설사 설명의 자리가 마련된다고 하더라도 쉽게 전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니, 애초에 설명이 중요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벌써 상대를 놀라게 했고 폐를 끼쳤기 때문이다. 이미 나는 정상에서 떨어졌다.
이런 상황이 쌓여가며 서로 공감 하나 없이 상처만 늘어나게 되었고 점점 고립되어 가다가 어느 순간 지치게 되었다. 탈진, 완전히 방전되었다. 나를 설명하기 위한 노력은 조금도 남지 않게 되었다. 가족에게도 더 이상 이해받는 것을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마음속에 벽돌을 하나씩 하나씩 쌓고 나를 지킬 수 있는 성을 만들어내어 그 속에 숨게 되었다. 내가 지은 성은 상처가 잘 나고 아픈 걸 두려워하는 나를 지켜주기도 했지만, 동시에 날 가두는 감옥이기도 했다. 그런 내 삶은 안전하긴 했지만, 너무 외로웠다. 안전함으로 외부로부터의 상처는 사라졌지만 외로움으로 속에서부터 곪아갔다. 이렇게 살다 보니 끝이 보여서 이제는 상처가 나고 아프더라도 모든 부분을 드러내고 자유로워지려 노력하기로 했다. 하, 나오려고 마음을 여러 번 먹었건만, 막상 나오려니 침을 얼마나 삼켰는지 모르겠다. 28년 중의 24년을 완전히 고립되어 홀로 지내다가 4년 전부터 사회에 조금씩 고개만 내밀고 있는 상태다.
물 밖에 나온 물고기가 호흡하지 못하고 펄떡대면 그건 물고기의 잘못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스스로 물고기라고 표현할 때도 있는데 나와 정상적인 사람의 사고반경과 행동반경이 다르며 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땅을 밟고 뛰어다니는 것을 나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바다로 들어와 주면 가끔은 서로 통할 때가 있지만, 그들이 다시 육지로 돌아갈 때면 나는 바다에 남은 채,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오해가 많다. 내겐 어려운 행동이지만 정상적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는 행동들이 아주 많다. 내가 그런 행동을 시도할 때는 많은 운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행운과 함께 온 힘을 다해서 한 번 해내면 '그것 봐, 노력하면 너도 할 수 있잖아.'라며 그 뒤로 그게 내 꾀병의 이유가 된다. '너만 바다를 좋아하는 줄 알아? 다들 바다를 좋아하지만 다 놀고 나면 꾹 참고 육지로 돌아가는 거야.' 날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인간인 줄 안다.
외출, 어렵다. 대부분의 경우 나를 드러낸다는 것은 굉장히 숨 막히는 상황으로 이어지게 만든다. 기본적으로 불안이 항상 기저에 깔려있으며 내가 노출된 상태에서는 이 불안이 극도로 심해지곤 한다. 가장 먼저 피로해지는 것은 눈, 눈으로 모든 상황을 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밖에서 그냥 앞을 보면 눈에 담기는 모든 사람과 하늘에 날아다니는 새와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들까지 전부 동시에 집중한다. 두리번거린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앞을 봤을 때 인간의 시야각에 들어온 모든 것을 동시에 추적하려 하기 때문에 눈이 피로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렇게 안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할 수 있는데, 이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도 그러고 싶지 않지만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운전, 무섭다. 오래전 면허증은 땄지만, 사고를 크게 낼 뻔한 적이 있어서 그 뒤로는 아예 그만두었다. 원인은 틱이다. 나는 아주 어려서부터 틱을 했고, 개수가 늘기도 줄기도 하는데 사라진 적은 없었으며 지금은 9종류의 틱 증세가 있다. 참으려면 대부분은 참을 수는 있을 정도라서 다행이지만, 안 하면 굉장히 불편하고 가끔은 참아내지 못한다. 혼자 있을 때는 눈치 볼 것 없이 미련하게 하는데 몸이 망가질 정도로 한다. 나는 자해성 성향이 있어서 하면 안 될 상황에서 특정한 틱이 강하게 끌린다. 예를 들어 밥을 먹거나 음료를 마시거나 양치할 때처럼 입 안에 뭔가를 물고 있을 때는 양쪽 손등 위를 번갈아 가며 아래에서 위로 '호' 입바람을 불거나 고개를 뒤로 완전히 젖힌 채, 짐승이 짖듯이 폐를 쥐어짜 내며 '헥' 강한 폐 바람을 내뿜기도 한다. 때문에 폐는 폐대로 아프고 입 안에 있던 것들은 입 밖으로 튀어나와서 치워야 한다. 먼지가 날리는 상황에서는 평소에 안 하던 공기를 최대한 들이마시는 틱을 참기가 어렵고 운전할 때처럼 시각이 중요할 때는 눈을 오랫동안 세게 깜빡이는 틱과 함께, 오른쪽 눈알과 고개를 오른쪽 끝까지 강하게 당겨 최대한 오른쪽 뒤를 보려고 하는 틱 때문에 경적도 듣고 사고가 날 뻔했다. 같은 이유로 대부분의 게임도 못한다. 중요한 순간에 틱 증상이 나와서 꼭 망친다. 이외에도 고개를 강하게 좌우로 흔들거나 턱 아래 근육을 강하게 수축시키는 틱 때문에 머리와 턱이 아프고 "쯧" 혀 차는 소리의 틱과 윙크하는 틱 때문에 주위의 사람에게 오해받은 적도 있다.
내가 써놓고 봐도 참 미련하다. 결국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정상적인 사람은 생각할 필요도 없을 그저 공기 같은 것들에 나는 진이 빠지곤 한다. 그런 공기조차 버텨내기 어려워하다 보니 스스로 물고기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책을 집필하고 글을 쓰려면 공감을 얻어야 한다는데, 걱정이다. 내 경험은 이런 것들이 주를 이룬다.
그럼에도 글을 쓰려는 이유는 문제의 뿌리를 찾기 위해서다. 오랜 기간 내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과 여러 시도가 있었다. 오랜 기간 동안 꾸준히 치료를 받아 온 이유와 같이, 결국 원인이 있다면 내 역사인 과거에 있을 것이고 그 과거를 나열하여 인과관계를 따지다 보면 해법에 접근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 지난 11년간 생각의 기록을 해왔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던 것처럼, 글을 쓰기 위해서 기억을 떠올리고 기록으로 남기면 이것이 나를 지탱시켜 줄 새로운 기둥이 되어줄 것이라 생각한다. 나를 위해서, 그리고 혹시라도 누군가에게 이 글이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나는 글을 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