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은 열정적이셨고 엄하셨다. 두 분 모두 교사이셨던 만큼 나는 교육을 비롯하여 사회적 규범과 일반적인 통념에 대해서 깊이 배울 수 있었다. 덕분에 지금 내 일부분이 그나마 정상적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문제는 내가 받았던 교육의 내용은 정상적이었지만 그 과격했던 전달 방식은 나를 엇나가게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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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비정상적인 부분은 내 작품이에요.
내 정상적인 부분은 아빠의 작품이에요.
엄마는 두 작품에 영향을 줬어요.
내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의 우리 가정은 딱히 큰 불화가 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화목하지도 않았다. 위에 언급한 엄하다는 것은 대부분 어머니를 뜻한다. 아니, 전부 어머니를 뜻한다. 어머니, 나는 이 단어에 대해서 양가감정을 느낀다. 양가감정, 어느 대상에 있어서 완전히 정반대인 서로 다른 감정을 느낀다는 뜻이다. 내 유년기 이후부터 성인기 이전까지의 어머니와 성인기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어머니는 다른 사람이다, 치사하다. 내 분노의 대상은 과거의 어머니다. 현재의 어머니는 훌륭하신 부모님이다, 치사하다. 이미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시며 내게 잘못했다고 말씀해 주셨다, 치사하다. 이제 그냥 삼킬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리고 이 분노는 삼키기에 뜨거웠고 삼키고 나서도 속에서 식을 줄 모른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고 어머니의 매를 물리적으로 막을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자 행복했고 어머니께서 늙어 매가 약해지자 기뻤던 나였다. 이 분노도 이제 그만 여기서 멈춰야겠다. 매번 그래왔듯.
나 역시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않았고 공부는 하나도 하지 않았으며 PC방에서 살다시피 지내어 어머니께 많은 잘못을 저질렀지만 그렇다고 어머니의 잘못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과거 어머니의 잘못을 잊지 않고 잊지 못한다. 하지만 부모에 대해서 부정과 불만을 느끼는 사람은 나뿐만은 아니었다. 어머니 또한 어머니의 아버지에 대해서 나보다도 더 큰 어려움을 지닌 채 살아오셨다. 그럼에도 내가 여쭤보기 전까지는 한 마디의 불평조차 하지 않으셨다. 우리 어머니는 정말로 강하고 굳센 사람이다. 어머니께서 자라오신 역사와 환경을 알고 나니 어머니의 엄함이 이해됐고 결국 나는 용서했다, 나는 결국 용서했다.
어머니에 대한 더 자세한 험담은 하고 싶지 않으니 그저 어머니는 아주 엄하셨다고만 표현하겠다. 어머니는 매를 자주 드셨고 나보다 더 젊고 강한 어머니께 더 일찍 오랫동안 맞으며 자란 우리 형이 있다. 나보다 30배는 더 많이 맞으며 교육받은 형은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으로 진학한 후 엘리트가 되었다. 그래서 내게도 같은 교육 방식으로 접근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형과 달리 구제 불능이었고 어머니와 나의 마찰만 심해질 뿐이었다. 늘 이유는 공부 하나였다. 부모님은 내가 공부를 안 해서, 나는 내게 공부를 강요해서. 우리 형은 자기관리가 철저하고 야망이 크며 똑똑하고 강한 올바름이다. 그와 동시에 어머니의 교육방식이 옳다는 증거가 되었다. 그 증거로 인해서 내게 문제가 있다면 그건 어머니가 아닌 내 탓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게 되었다.
형, 내게 있어서 우리 형은 횃불 같은 존재다. 6년이라는 거리의 앞에 앞장서서 길을 헤쳐 나가면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미래를 생각해 볼 수 있게 된다. 생각보다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편이라고 느낀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형은 대학생이 되었고 서울특별시에 자취를 하기 위해 경기도를 떠났다. 생각보다 같이 있을 만한 시간은 없었고 요즘이 되어서야 간간이 만나는 정도가 되었다. 늘 형을 따라잡고 싶었지만, 단 한번도 가까이 간 적조차 없었다. 내가 가끔 우스갯소리로 외모 빼고 이길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질투하거나 열등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전혀. 형은 늘 롤모델이며 자랑스러운 형제다.
아버지, 내게 아버지란 한 번에 정리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존재다. 아버지는 나와 상담 선생님을 제외하고 나를 가장 잘 이해하는 타인이다. 하나 아쉬운 것이 있다면 이렇게 되기까지 너무나도 많은 노력과 시간이 소모되었다는 것인데, 아버지께서는 쓰러져 가는 나를 부축해 주시기 위해서 내가 있는 허름한 곳까지 먼 길을 찾아오시느라 너무 많은 고생을 하셨다. 그럼에도 최근 1년 전까지는 아버지조차 나를 이해하실 수 없으리라 생각했었다. 아버지께서는 늘 인내하시며 나를 믿고 기다려 주셨지만,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자면 그 믿음과 기다림이 방임으로 볼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교육방식이 유일한 정답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라는 구제 불능을 대하는 방식의 최선이 아닌 차악으로써.
나는 오랜 기간 외로움이라는 개념을 인지하지 못했다. 마치 코로 숨을 쉬어 본 적이 없어서 코로 숨을 쉴 수 있다는 개념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처럼 처음부터 늘 혼자였기 때문에 비교할 수 있는 대조군이 없었다. 나는 늘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외로웠던 것이었고 최근이 되어서야 곪아 썩어버린 상처가 아프게 흘러내린다. 우리 부모님은 어느 시절을 꼽아도 부족함이 없는 상위 등급의 부모님이었다고 생각된다. 가족여행을 해외로 떠나기도 했고 바다나 산에도 데려가셨으며 딱히 어머니와 아버지끼리의 부부싸움도 없는, 별달리 문제랄 것이 없는, 어쩌면 이상적인 가족의 형태였다.
하지만 내게 중요했던 것은 그런 가족의 형태보다도 나에 대한 공감이었던 것 같다. 초등학생인 내가 왜 공부를 하기 싫어하는지 묻지 않으셨다. 중학생인 내가 왜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지 묻지 않으셨다. 고등학생인 내가 왜 PC방에서 살듯이 지내는지 묻지 않으셨다. 성인이 되어서도 내 생각과 이야기를 꺼내 놓으려 하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듣기 싫으니 상담 선생님께 말씀드리라고 하셨다. 사실 그게 옳았던 것 같다. 내가 꺼낸 이야기가 정상에서 벗어날수록 어머니는 바로잡으려 화를 내셨고 나를 혼내는 어머니를 말리시기 위해 아버지가 중재하려 하면 어머니는 끼어들지 말라며 부모님의 싸움으로 번졌다. 수없이 그래왔다. 그렇게 내 속 이야기는 상담 선생님께만 전달되었고 오랜 기간 동안 내 가장 깊은 유대는 정신의학과랑만 연결되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나는 평탄한 가정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정신적으로 고립되어 성장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어머니의 통제와 압박, 아버지의 믿음이자 방임, 형의 부재와 증거, 내 비정상적인 사고와 행동, 정신의학과에 대한 유대이자 의존. 누구 하나 탓할 수는 없지만 그저 상황이 그러했다. 아니, 내 탓이다. 나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모든 상황을 정리할 수 있는 단 한 마디 '나만 잘하면 되는데.'. 사실 나만 잘하면 모든 문제는 사라졌을 것 같다. 그 '잘'을 못했던 내가 혐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