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사에게 2월이란
1월에는 새해가 시작되고, 3월에는 새 학년이 시작된다. 그 사이에 있는 2월. 2월은 초등교사인 나에게 불안을 견디는 계절이다. 아직은 방학이나 방학 같지 않은 불편한 마음이 시작된다 싶을 때 달력을 보면 여지없이 2월이었다. 그때부터 생각은 이미 출근 중이다. 희망하는 업무와 학년 지망서를 제출했지만 올해 학교 사정을 고려해 나에게 어떤 학년과 업무, 아이들이 맡겨지게 될지 벌써부터 잠이 오질 않는다. 새 학년을 앞두고, 관외나 관내 이동을 하게 될 경우는 더 큰 난관이 앞에 놓인다. 그 학교에서 모두가 기피하는 힘든 학년과 업무를 맡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학교도 낯설고 모두 모르는 얼굴들 뿐인데 업무까지 힘들다면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의 길이 열리게 된다. 설령 작년과 같은 학교에 남아 있더라도 누군가는 반드시 힘든 업무를 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매번 도맡아 할 수도 없으니 조용히 숨죽여 눈치를 보게 된다. 이럴 때, 묵직한 양가감정이 나를 괴롭힌다. 힘든 업무를 나서서 하겠다고 할 용기나 깜냥이 없는 스스로를 비겁하다고 자책하는 마음, 그리고 올해는 제발 순한 아이들과 함께 조금은 조용한 행복을 맞이하고 싶다는 바람이 서로 계속 부대낀다.
2월에 전교직원 출근일을 기준으로 대망의 업무발표와 학년이 배정되면 3월이 되기 전까지 빠르게 업무 인수인계를 하고, 새로운 업무에 대한 계획서를 작성하고, 배정받은 학년과 학급의 교육과정 작성부터 연간 수업 시간표, 교실 환경정리까지 그야말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모든 일을 척척 해내야 한다. 작년에 사용한 교실 짐정리와 청소, 이사를 시작으로 새로 옮긴 교실 환경 꾸미기는 해도 해도 끝이 없는 도돌이표인데 그 사이 교육과정 운영 계획과 업무까지 어느 것 하나라도 제대로 준비되지 않으면 3월을 시작할 수가 없다. 매년 새로운 업무를 돌아가며 맡게 되다 보니 경력이 아무리 쌓여도 업무능력치는 늘 바닥부터 새롭게 끌어올려야 하고, 어떤 아이와 학부모를 만나느냐에 따라 1년의 삶이 크게 달라지니 어느 것 하나 잘 해낼 수 있다고 호언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모든 것을 능숙하게, 그것도 아주 잘 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학교라는 세계에서 내가 가장 큰 구멍이 될 테니까.
초등교사에게 2월은 그런 시간이다. 아주 긴 마라톤을 앞두고 몸과 마음을 가다듬으며 최상의 준비를 갖추는 시간. 3월이 시작되면 그야말로 한 템포 쉬어갈 틈도 없이 모든 것이 휘몰아친다. 아직 아이들 이름과 얼굴도 매칭이 안되는데 각 부서마다 제출해야 할 것과 행정 업무도 많고, 수업 틈틈이 쏟아지는 공문과 메시지를 처리하며 학급 세우기의 기반도 튼실히 해야 한다. 3월은 교사에게도 아이들에게도 가장 중요한 시기이다. 저마다 다른 아이들의 특성(학부모 포함)을 파악하고 학급 운영의 기초를 세우기 위한 골든 타임이기 때문이다. 3월이 무너지면 1년이 내내 괴롭다. 작년 3월을 떠올려 보면, 커피 한잔이 마시고 싶어서 포트에 물을 끓이면 아이들이 싸워서 말리다 물이 식어버리고, 다시 물을 끓이다 업무 독촉에 일 처리를 하느라 물이 식어버리고, 다시 학부모 전화를 받다 하루종일 물만 끓이고 커피는 입에도 대지 못한 날이 허다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처음 만난 아이들과 합을 맞추어 학급 경영의 뿌리를 다지고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다 보면 1,2월에 비축해 둔 체력은 순식간에 휘발되어 사라진다. 3월과 동시에 얼마나 폭풍 같은 날들이 이어질지 알기에 2월은 그 엄청난 대장정을 준비하며 마음을 다잡고 또 다잡는 시간이다.
학생시절 졸업을 하고 입학을 앞둔 시기, 임용시험을 치르고 합격과 불합격의 기로에 있던 시기, 전근을 앞두고 새 학교 배정을 기다리던 시기. 나에게 2월은 늘 무언가 끝나고 새롭게 시작되는 중간 어디쯤에 끼어있는 애매한 시간이었다. 마치 연극이 시작되기 전 캄캄한 커튼 뒤에 숨을 죽여 기다리듯, 마라톤의 출발음을 기다리며 뛰어갈 준비자세 하고 있는 시간 같았다. 출발선 앞에서 기다리는 마음은 늘 시작하는 순간보다 더 긴장되고 초조했다. 안개의 숲 어딘가에 있는 불안한 생각들이 나를 눌렀다. 모두에게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는데 내 삶은 아직 시작되지 않은 것 같은 시간. 2월은 나에게 그랬다. 모든 것이 선명하지 않고 흐릿했다. 겨울이라고 하기엔 조금 따뜻하고 봄이 시작된다고 하기엔 손끝이 시린 계절 같은 마음이었다. 출발과 동시에 모든 것이 끝날 때까지 쉼 없이 뛰어야 한다는 걸 알기에 더 불안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2월의 불안을 견디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마음을 붙잡고 나아가는 일이라는 걸. 교사에게 가장 잔인한 3월을 준비하며 건강과 멘탈을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간이라는 걸. 2월이 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몸이 먼저 반응을 한다. 하기 싫은 운동을 시작하고, 누구보다 호들갑스럽게 건강을 챙긴다. 학급경영과 수업 지도에 관련된 연수들도 다시 한번 정리하고 '나는 잘할 수 있다, 괜찮다'를 하루에 수십 번씩 되뇌며 마음을 무장한다. 아이들에게만큼은 3월이 즐거운 시작이 될 수 있도록 시멘트의 차가운 공기가 가득한 교실을 조금 더 따뜻한 온기로 채워주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마음과 노력을 담는다. 교사에게 3월은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1년 중 가장 고단한 계절이다. 그리고 그 시작을 앞둔 2월은 앞으로 가장 애써야 할 시간을 앞에 둔 내가 괜찮은지 점검하고 돌봐주는 시간이다. 긴 레이스에 체력이 방전되지 않도록, 무엇보다 마음이 주저앉아 포기하지 않도록 나를 다독이는 시간이다. 용기도 챙겨 넣고, 희망도 두둑이 넣고, 달리기 전 넘어지지 않기 위해 운동화 끈을 단단히 묶듯 마음을 단단히 붙잡고 잠시 숨을 고른다.
어떤 시작은 불안을 동력으로 움직인다.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나의 작은 불안들은 촘촘한 준비로 이어진다. 그렇게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계절, 2월의 불안을 견디고 나면 3월과 함께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된다. 올 한 해는 어떤 아이들을 만나게 될까. 아이들 인생의 한 페이지에 무엇을 남겨줄 수 있는 시간이 될까. 걱정과 기대가 반씩 섞여있는 마음으로 3월을 기다린다. 2월의 불안한 시간을 지나 마주하게 되는 3월은 누구보다 열심히 사랑하는 계절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도, 내게도, 사랑이 채워지는 시간들이 되었으면. 불안을 견뎌낸 마음이 새로운 시작과 함께 하루만큼씩 사랑에 닿아가는 날들이 될 수 있기를. 그래서 결국은 사랑이 이 모든 불안의 결말이 돼주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