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주신 어르신
수업을 끝내고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데
부스럭 소리가 크게 나면서 나와 약간의 거리를 두고 어르신 한 분이 앉으셨다.
종량제 봉투에 반찬거리를 잔뜩 담아 힘겹게 바닥에 내려놓으신다.
체구도 작은 분이 들고 있는 시장 봉투를 보니 친정엄마가 생각났다.
우리가 집에 간다는 소리만 하면 그날부터 장을 보느라 일주일이 짧다 하신다.
어르신의 묵직한 봉투를 보는 내 마 마음이 짠했다.
버스가 다가온다.
버스가 서야 하는 자리가 실선으로 그어져 있기 때문에 그 자리에 서기만 하면 되는데,
어르신은 두 봉투를 들고 버스선 앞에 서서 기다리는 나를 봉투로 치면서 앞으로 나가
버스가 멈추기도 전에 자리를 잡으시고 서둘러 올라가셨다.
버스가 드디어 움직이고 열심히 달린다.
곧 내릴 정류장이 다가와 손님이 많아 맨 뒷자리에 앉았다가
하차문 바로 앞자리로 옮겨 카드를 찍고 내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르신도 나와 같은 정류장에서 내리시나 보다.
전 정류장에서 하차하고 출발하자마자 하차문으로 오시더니
시장 봉투가 넘어질까 안절부절못하면서 카드를 찍고 벨을 누르신다.
문제는 손잡이를 잡을 손이 없다.
손잡이에서 손을 뗐다가 잡았다가 봉투를 쳐다봤다가 손잡이를 봤다가
너무나 아슬아슬하다.
기사분도 거울을 통해 보시면서 최대한 속도를 줄이신다.
이때 참았어야 했는데.
계속 할머니의 불안한 자세를 보던 나는
나도 모르게 어르신의 손목을 살짝 건들어 나에게 시선을 맞추길 기다렸다가
"어르신, 제가 봉투 하나 들어드릴게요. 손잡이 잡으세요."
라고 말을 하자마자
"됐어요."
하시고는 손잡이를 과감히 버리시고는 봉투를 움켜쥐신다.
내가 봉투를 탐내는 사람으로 보였나.
그 속에 가득 찬 재료 있어도 요리 못해서 필요 없는데.
드디어 하차문이 열리고 문 앞에 서 계셨던 어르신이 먼저 내리시고 다음으로 나,
어르신은 내리자마자 나를 한 번 돌아보고는 두 봉투를 더 강하게 움켜쥐고는
어찌나 빨리 걸음을 재촉하시는지.
난 이제껏 남의 것 욕심낸 적 없는데
부러워는 하지만 그게 내 거였으면 하고 생각해 본 적도 없는데
너무 억울하다.
이젠 정말 돕지도 말아야 하나 보다.
눈 딱 감고 살자! 고 마음먹었다.
그날의 민망함을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았다.
둘째와 병원 다녀오는 길 에스컬레이터가 점검이라
모두가 계단을 이용해야 하는 날
어르신께서 바퀴가 달린 장바구니를 끌며
덜컹덜컹 계단을 내려가신다.
어르신도 뒤에서 걸어올 사람들이 신경 쓰이는지
한쪽으로 최대한 붙어 내려가지만
바퀴 달린 장바구니는 제 멋대로 움직여 마음만큼 되지 않는다.
괜찮을까?
민망한 상황이 생기면 어쩌지?
잠시 고민이 되었지만
이번이 마지막이다 하는 생각으로 조심스레 다가갔다.
"어르신 제가 뒤를 들어 드려도 될까요?"
"에고, 고마워요."
어르신이 앞에서 들고 내가 뒤에서 들고
우리는 좁은 계단 한쪽을 사용하며
마지막 계단까지 내려왔다.
"고마워요. 복 받을 거예요."
어르신은 땀으로 범벅된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복된 인사를 건네주신다.
"감사합니다. 조심히 다녀가세요."
나도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휴~ 다행이다.
뒤를 돌아 둘째를 찾다가 깜짝 놀랐다.
둘째 소녀 뒤로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걸음에 맞춰
어느 누구 하나 지나치지 않고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와~
친절은 이런 것이구나.
직접 손을 내민 나보다
우리를 위해 전철 시간이 임박했음에도
불편함을 감수하며 뒤를 따라준 이들의 보이지 않는 마음
나는 둘째와 손을 잡으며 곁을 지나는 사람들을 향해 살짝 목례하며
그들의 친절에 답을 건넨다.
감동이었다.
친절은 이런 것이다!
오지랖으로 망설였던 마음
어르신의 환한 웃음으로 말끔히 지워낼 수 있었다.
어르신으로 나의 오지랖은
원상복귀되었다.
조용히 다가가 도움주며
난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