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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표식

by 희수공원

준하는 예민했고 동후는 그를 바라보며 견디고 있는 것 같았다. 대학 3학년 겨울 내내 그래 보였다.


갈브레이스의 불확실성의 시대가 거의 끝나갈 무렵 희서는 추운 바람을 온몸으로 받으며 학생 회관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건물 옆 창문으로 얼핏 비치는 준하를 봤다. 팔을 양쪽으로 벌리고 손만 까닥거리며 누군가와 얘기하는 듯 보였다. 팔 벌리고 얘기할 땐 너무 거만해 보여서 희서의 속이 꼬이곤 했다. 온 세상을 포용할 것처럼 팔 벌리고 있는 준하의 모습이 딱하기만 했다. 너 두렵지? 불안하지?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아우 추워!'


문을 벌컥 열었다. 준하 옆 가까이 팔을 꼬고 벽에 기대어 문을 향해 서 있는 동후와 눈이 마주쳤다. 동후가 당황한 듯 준하로부터 옆으로 한 발짝 물러섰다.


"본질이 변하는 건 불가능해. 네가 어떤 힘으로든 스스로든 리더가 된 적이 있다는 건 중요한 거지. 여긴 내 구역이니까 너희가 나를 향해 서 있는 거잖아. 너희들은 끌려올 수밖에 없는 거야. 흥미롭지?"


희서가 동후대신 대답했다.


"아니, 재미없어! 그렇게 대장질을 하고 싶어 죽겠니? 팔을 그렇게 벌리고 있으면 온 세상이 네 것처럼 느껴지나 본데, 사실은 그게 열등감이거든. 아주 재수 없지!"


희서는 눈을 피하며 적당한 거리에 앉아 '불확실성의 시대'를 꺼냈다. 몇 번이나 읽어서 표지 귀 부분이 낡은 게 마음에 들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리더가 되어야 하는 거야, 그렇게 나를 따르라며 덜거덕거리며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니고 말이야. 동후의 눈을 피하고 있었다. 너는 왜 항상 준하 옆에서만 서성이는 거야? 희서는 무심한 듯 모른척으로 일관했다.


동아리 독서토론 때를 빼고는 동후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 기억이 났다. 그의 감정이 몇 가지의 색깔이었는지 소리로 다가온 적이 없었다. 이상하게도 동후는 희서에게서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있는 듯한 느린 움직임으로 기억될 뿐이었다.


지금은 이렇게 선명하게 희서 옆에 있는데 왜 그녀는 항상 그가 준하의 그림자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희서는 어쩌면 동후가 희서 앞에 오롯이 서서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봐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준하가 없었던 6년이라는 시간이 한 덩어리로 다가와 희서의 숨을 조이는 것 같다. 데자뷔 같은 이런 느낌이 불안을 끊임없이 쌓으며 물결처럼 퍼지고 있었다. 아마 동후도 그럴 거라는 막연한 공포, 둘은 똑같이 느끼면서도 서로 등을 대고 서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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