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람을 찾는 것이 더 쉽다는 것을 알았어요. 인간은 원래 나쁜 기억을 더 오래 가지고 산다오. 오래 기억해야만 그 나쁜 상황을 다시 되풀이하지 않으니까요.’
아버지의 잘 짜인 연극은 희서가 기겁하고 구토했던 그 다방의 쌍화차 노른자 때부터 시작된 것 같았다. 딸의 성장기가 아닌 죽은 엄마에게 하는 딸을 길들이기 위한 연극 효과 보고서 같은 건가. 거의 10년 동안 써 내려간 한 편의 소설을 읽고 있었다. 사춘기 이후 희서의 10년을 뒤틀어버린 잔인한 기록이었다.
빨간 입술의 천박스러운 의도도, 교태스러운 목소리도, 다가와 아버지를 스쳐가던 긴 손가락의 움직임도, 은밀하게 신호하던 하이힐도, 지난 10년의 구석구석에 또렷이 박혀 있었다. 그 입술을 지나가던 아버지의 손가락도, 같이 톤을 맞추던 웃음도, 말도, 눈짓도, 몸짓도, 모두 희서의 기억에 더러운 이물감으로 남아 있었다.
아버지의 연극은 끝났다. 아무리 지우려 해도 없어지지 않는 얼룩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그냥 두었어도 될 희서의 성장하는 여성성을 무의식 속에 밟고 서게 한 아버지였다. 본능의 한쪽 극단을 마주했던 충격이 희서를 의도적인 중성의 삶으로 몰아갔다는 것을 아버지는 알았을까. 아버지에게 결코 감사할 수 없었다.
희서의 지난 10년이 성에 대한 가치관을 스스로 세울 기회를 잃어버린 슬픈 불감증의 시대로 정의된 순간이었다. 그녀의 자아를 철저히 불신한 아버지였다. 자연스럽게 성숙할 기회를 박탈해 간 아버지였다.
어쨌거나 이제는 세상에 없는 아버지를 정리해야 했다. 희서는 그저 그녀가 갈 길을 가면 되는 것이다. 똑바로 앞을 보려 애쓰고 있었다. 그게 연극이었다 해도 뒤틀렸던 아버지의 이미지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다이어리의 마지막 몇 페이지는 지난 몇 년간 아버지와 같이 했던 그 여자 어른에 대한 기록이었다.
‘이 사람을 더 일찍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생각을 해본다오. 당신처럼 나에게 진심으로 웃어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을 만나면서 나는 내가 희서에게 잘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었어요.’
다이어리를 덮으며, 아버지의 늦은 후회도 조용히 아버지를 정리하고 있을 이 여자 어른도 희서에겐 그저 냉정하게 치워버려야 할 시간이었다. 아버지가 남긴 것들도 희서의 그 어떤 흔적도 모두 깨끗이 지우고 미국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신 돌아오지 않을 거야.
‘띠링 띠링’
전화벨이 울렸다. 아버지 장례식 이후에도 꾸준히 연락하고 찾아와 희서를 위로하고 손 잡아주곤 하던 친구 미주였다.
“로비 카페야, 잠깐 내려와. 차 한잔 마시자.”
“그냥 네가 방으로 오면 되지, 왜?”
“동행이 있어서…”